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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묵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8. 19:09

강원 동해시의 산동네 논골담마을에서 만난 벽화. 머리 위로 전선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처마와 처마가 잇닿은 골목의 담벼락에다 ‘논골상회’ 구멍가게를 그려놓았다. 논골담의 벽화는 가난했던 시절의 누추하고 고단했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했던 골목의 풍경을 담고 있다.


강원 동해시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산동네의 골목에 한때 봄의 기별이 담긴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그림으로 덧씌워져 지워져버린 벽화 속 몇 줄의 글귀는 ‘묵호의 봄’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려줬습니다.

“시린 손 불며 삶을 그물질 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신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가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마침 찬바람에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날이었습니다. 아직 날은 차고, 길은 얼어붙었으며 포구의 노동은 여전히 고됐습니다. 시내의 찬물내기 공원에 이르게 피어난다는 복수초는 소식이 멀었고, 연신 밀려드는 어달해변의 파도도 아직 겨울의 것이었습니다.

여기 묵호의 산동네 논골담마을은 가난으로 밀려 올라온 이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봄볕을 느낄 수 없어도, 이 골목은 지금 벽화로 담아놓은 오래전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만으로도 따스합니다. 전선이 어지러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골목길을 오르내리던 가난한 이들에게 봄은 얼마나 소중한 계절이었을까요. 오래 기다려본 이들일수록 해마다 봄의 기별을 먼저 느꼈겠지요.

동해시는 어찌 보면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추암해변의 촛대바위가 제법 명성을 누리고 있긴 해도 이웃 강릉과 삼척에다 대면 외지사람들에게 존재감마저 희미합니다. 그럼에도 봄의 기별을 찾아 그곳에 간 것은, 봄의 다른 이름인 ‘희망’을 기다리던 시절의 추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을 추억하는 공간에서 만나고자 했던 건 거기 사는 이들의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추한 산동네 논골담마을의 가파른 골목에서, 이른 봄나물 몇 줌을 내놓은 북평오일장의 좌판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제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병아리의 솜털 같은 희망을 조심스럽게 쥐어보는 것입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가늘게 뛰는 심장의 박동처럼 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아직은 매서운 추위가 물러나지 않고 있지만, 입춘이 코앞이니 봄도 이제 머잖았습니다.

강원 동해시의 묵호항에서 어달항을 지나 대진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고깃배가 갈매기들을 이끌고 지나고 있다. 묵호는 바다의 푸른색이 짙어 마치 검은색처럼 보인다 해서 ‘먹 묵(墨)’에 ‘호수 호(湖)’자를 이름으로 삼았다.



# 세 가지 의미로 읽히는 이름… 동해

동해(東海)의 명칭은 자주 헷갈린다. 동해라는 이름이 세 가지로 독해되는 까닭이다. 먼저 동쪽에 바다를 둔 세계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 통칭되는 동쪽 바다로서의 ‘동해’가 있다. 두 번째는 수천 년 전부터 한자 ‘東海(동해)’로 표기돼 온 동북아시아 특정 바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세계 지도에 표기되는 ‘EAST SEA’란 명칭이 바로 이런 경우다. 나머지 하나는 시 단위의 지방자치단체의 명칭인 ‘동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동해란 세 번째의 이름이다.

강릉과 삼척 사이에 끼어있는 동해시는 지난 1980년 탄생한 도시다. 강릉의 묵호읍과 삼척의 북평읍의 인구 증가로 한데 묶여 시가 된 것이다. 시 승격 당시 기대는 컸다. 무연탄 수송과 어업이 번성하던 묵호항과 태백 일대의 지하 자원을 바탕으로 임해공업단지 조성의 꿈을 꾸고 있던 북평읍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동해라는 이름도 동해를 대표하는 도시로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더해져 붙여졌던 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 동해는 관광지와 리조트로 상전벽해가 된 동해안 일대의 다른 도시보다 오히려 더 오래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일찌감치 관광도시가 된 속초와 강릉에 비한다면 동해는 누추한 쪽에 가깝다. 도심 한복판이야 대형 마트와 세련된 상점들로 휘황하지만 그 면적이 손바닥만큼 작다. 대신 묵호항 뒤편의 비탈진 언덕길이 등대까지 이어지는 산동네의 풍경은 오래전 옛 항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닷새마다 열리는 북평장의 풍경도 그렇다. 낡고 누추하지만, 옛 항구와 바닷가 마을을 추억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해는 ‘동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7번 국도가 고가도로가 돼서 빠르게 흘러가기 전의 동해안의 추억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다른 동해안 중북부의 도시 중에서도 동해가 추억 속의 ‘동해다움’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소주 한잔의 바다가 있는 곳… 묵호항

동해의 중심은 예나 지금이나 묵호항이다. 지금은 쇠락하고 말았지만 묵호항은 한때 밤새 불이 꺼지지 않고 흥청거리던 항구였다. 그러나 어업의 쇠퇴로 하나둘 주민들이 떠나고, 불빛도 하나둘 꺼져가고 있다. 쇠락한 항구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건 관광객들과 생선 좌판을 펼치고 앉은 억세지만 잔정 많은 아주머니들, 그리고 이른 아침 포구에 부려놓는 오징어다. 올겨울 앞바다에 돌아온 오징어떼로 묵호항은 어느 때보다 흥청거린다. 오징어의 풍어로 묵호항은 이른 아침부터 펄떡거린다.

묵호항의 명물이라면 단연 묵호항에서 등대로 이어지는 ‘논골담길’이다. 동해시문화원이 주도해 ‘묵호의 재발견’이란 취지로 비탈진 논골마을과 어달리 일대의 산동네 담벼락마다 벽화를 그려 넣었다. 전국 각지에 벽화마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벽화공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곳의 벽화는 다른 곳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묵호항이 열린 건 일제강점기 말엽인 1941년. 험한 뱃일이나 모진 허드렛일을 마다치 않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묵호항으로 모여들었다. 무연탄과 시멘트, 그리고 고기잡이에 생계를 위탁하기 위해 묵호로 들어온 가난한 이들은 항구 가까운 비탈진 언덕배기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이 바로 여기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렸던 논골담 마을이다. 논골담 마을에 얼기설기 판자를 잇고 덧대 겨우 거처를 마련한 이들이 거기서 매운 해풍의 겨울을 났다. 사내들은 배를 타고 나가거나 그물에서 생선을 걸러내거나, 지게질로 고된 삶을 이어갔고, 아낙네들은 젖은 명태나 오징어를 대야에 싣고 산동네를 올라와 빨랫줄에 이들 생선을 내걸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가장이 탄 고깃배의 귀환을 기다렸다.

벽화에 그려진 건 삶이 진득진득 묻어나던 당시 묵호의 모습이다.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었다던 시절 논골담의 언덕배기 마을 주민들의 삶은 고단했지만, 돌이켜보면 가난과 상처를 이웃들과 기꺼이 나누던 따스한 풍경이 있던 시절이었다. 산동네의 노란 전구가 별처럼 펼쳐진 묵호의 밤바다를 푸르게 비추는 등대, 빨랫줄에서 말라가는 오징어, 그물을 손질하며 포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지게꾼…. 전깃줄 어지러운 골목 아래 옹색한 구멍가게와 필름이 끊길 때마다 휘파람을 휘휘 불어대던 오래전 묵호 극장의 모습도 거기 그려져 있다. 담벼락에 드문드문 씌어진 옛 묵호항을 추억하는 글귀가 마치 한 줄의 시처럼 뭉클하다.

처마와 처마가 잇닿은 논골담의 가파른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3개의 골목길은 적막하다. 벽화 속에 등장하는 치열한 삶의 소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적막한 골목이 환기해내는 건 아련한 추억이다. 꼭 여기 묵호나 바닷가 마을이 고향이 아니라도 좋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을 건너온 중년 이상의 이들에게는 이 누추한 집들 사이로 이어진 비탈진 골목에서 아릿하고 따스했던 오래전의 추억과 딱 마주치게 된다.

묵호등대로 오르는 논골담길의 담벼락에 그려진 지게꾼의 모습. 석탄운반과 시멘트공장, 묵호항 부두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산동네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다.


# 진파랑 물든 골목따라 바다로 내려서는 길

논골담길 끝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1963년부터 묵호의 바다를 바추던 등대다. 지금도 어둠이 내린 바다를 밝힌다. 해양문화공간으로 꾸며진 등대 뒤쪽에는 바다 풍경을 창 가득 담고 있는 카페와 펜션들이 있다. 젊은이들은 등대의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야외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를 앞에 두고 바다를 바라본다. 비탈진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지붕 너머의 바다가 파란색이 저리도 짙을 수 없다.

묵호 등대를 넘어 바다로 내려서는 짧은 골목 길에서는 내내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여기서 만나는 건 도처에 넘실거리는 파랑이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손바닥 만한 마당을 가진 집들이 모두 담벼락에도, 가파른 골목의 계단에도 파랑으로 흠뻑 적셔졌다. ‘먹 묵(墨)’에 ‘호수 호(湖)’. 묵호가 이름으로 삼은 푸르다 못해 검은빛으로 빛나는 바다와 진파랑과 옅은파랑의 담이 한데 어우러진다.

묵호시장 쪽 포구에는 갖가지 수산물을 좌판 위에 펼쳐놓은 회센터가 있다. 말이 ‘센터’이지 천막으로 지붕을 이은 소박한 시장이다. 제철의 방어, 물가자미도 있고 실한 해삼이나 멍게도 있지만, 이즈음 좌판마다 올라 있는 건 대게와 홍게, 그리고 오징어다. 시장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강릉이나 속초보다 가격이 헐하다. 특히 오징어는 갓 잡아내 펄떡펄떡 뛰는 것들이 1만 원에 10마리다. 대게도 속초, 강릉이나 울진 등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싸다.

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쪽에서 손님들이 산 생선이며 오징어를 회로 썰어내는 아주머니들이었다. 10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시장에 나와 오전 8시부터 찬 바닥에 자리를 잡고 종일 회를 썰었다. 오징어는 한 마리에 300원, 생선은 1000원. 찬물에 손을 담그고 생선을 썰어내는 모습만으로도 엄동의 추위 속에서 그 고된 노동의 힘겨움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런 고된 일상까지 마음이 미처 가지 않았던 건 펄펄 뛰는 생선을 잡아 순식간에 가지런하게 썰어내는 놀라운 손놀림 때문이었다. 다들 여러 자루의 칼을 옆에 두고 생선의 종류와 썰어내는 방식에 맞춰 칼을 바꿔 잡았는데, 한 아주머니가 자랑스럽게 칼 한 자루를 꺼내 보여줬다. 얼마나 칼질을 했던지 회를 뜨는 부위의 날만 닳아 원래 칼날의 5분의 1 정도만 남아있었다. 낡은 칼은 고된 노동을 상징하는 훈장과도 같았다.

# 유순하고 평화로운 시장… 북평 오일장

동해의 한 축이 묵호항이라면 다른 한 축은 북평이다. 북평은 오일장으로 이름이 났다. 3, 8일에 장이 서는데 북평을 찾아간 날 마침 장이 섰다. 이른 새벽 허름한 골목길에 차일이 하나 둘 쳐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일대 골목마다 난전으로 가득 찼다. 아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동해의 북평장은 전국의 오일장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장날이면 시장의 점포와 노점을 합쳐 800여 개에 이른다. 시장 일대의 골목과 대로변은 물론이고 차로까지 노점이 밀려 나올 정도다.

북평장에는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꾸밈도, 호객이나 생존의 악다구니도 없다. 시장은 유순하고 평화롭다. 장사로 생계를 삼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제 손으로 심고 거두거나 잡은 것들을 가져다 파는 노점이 적잖은 까닭이다. 자리를 비운 옆 좌판에 손님이 다가오면 제 것 놔두고 남의 것을 팔아주기도 하고, 점심시간이면 모닥불 앞에 모여 가져온 찬밥에다 좌판 위의 푸성귀를 넣고 고추장에 썩썩 비벼서 나눠 먹기도 한다. 도로 앞에 달걀 몇 줄을 펼쳐놓은 할머니와 때이른 냉이를 몇 줌 캐다가 좌판에 올려놓은 할머니는 장사보다는 합세해 며느리 흉을 보는 데 더 열을 올리기도 했다.

북평장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파는 물품에 따라 시장이 명확하게 구획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과일은 과일대로, 채소는 채소대로, 생선은 생선대로 모여 있어야 편리할 법한데 그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느슨하게 이곳저곳에 섞여 있다. 그래서 원하는 물건을 사려면 적잖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장 구경을 하며 상인과 손님이, 손님과 손님이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흥정을 시작했다. 하기야 이런 오일장에 와서 살 것만 딱 사고 돌아가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이 또 있을까. 이걸 두고 극복해야 할 ‘전통시장의 비효율’이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북평시장에서는 이런 비효율이 오히려 강점이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게 번듯한 상점보다 작은 노점의 물건이 먼저 팔린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노점을 펴고 다 판 이들은 상인에서 소비자가 돼서 다른 이의 좌판에서 다시 물건을 샀다. 이런 순환구조로 북평시장에서는 작고 소박한 노점의 물건까지도 공평하게 팔려나가는 것이다. 근래 들어 이런 시장 분위기에 반한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시장 한쪽에는 국밥거리도 생겨나고, 주막도 문을 열었다.

동해에는 여기 말고도 애국가 배경화면의 일출 장면으로 이름난 추암해변이 있고,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절집, 감추사도 있다. 한섬 해변에서 천곡항을 지나 고불개 해안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해변 소나무 숲길은 또 어떤까. 묵호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어달해변의 까막바위를 끼고 대진항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추암해변을 빼면 ‘꼭 가보라’고 소매를 잡아 끌 만큼 눈이 번쩍 뜨이는 풍경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소박하고 분위기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묵호항의 논골담길과 북평 오일장이 그렇듯 말이다.


◇묵호항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강릉갈림목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망상나들목으로 나간다. 신림조합중앙회 동부목재센터 앞 삼거리에서 동해·묵호 방면으로 우회전해 7번 국도를 타고 사문삼거리를 지나 발한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묵호항이다.

벽화마을인 논골담길은 묵호항 뒤편에 있다. 북평장은 동해항 인근에 있으며 내비게이션에 북평 하나로마트를 입력하고 찾아가면 시장 한복판이다. 북평장에는 주차장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장날이면 주차가 어렵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동해시에는 숙소가 잘 구비돼 있다. 동해시 중심가인 천곡중앙사거리 주변에 제법 시설을 잘 갖춘 호텔들이 많다. 현진관광호텔(033-539-2000)이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이다. 인근에 대주호텔과 코스모스호텔도 있다. 모텔도 시설이 괜찮은 편이다. 피카소모텔(033-533-2500)은 숙박객들에게 허술하긴 하지만 조식도 내놓는다.

동해시에는 의외로 맛집들이 많다. 묵호항에서 어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변의 ‘부담 없는 횟집’(033-534-2234)을 추천한다. 상호 그대로 부담없는 가격에 푸짐한 회를 내놓는다. 곁들이 음식이 좀 적은 편이긴 하지만, 2인 기준 4만 원이면 방어·광어·우럭 등을 썰어놓은 푸짐한 모듬회에다 매운탕까지 나온다. 천곡동의 ‘한우설렁탕’(033-532-1589)은 현지 주민들은 물론 외지 사람들에게도 이름난 맛집이다. 고기를 넉넉하게 넣어주는데다 국물 맛도 좋다. 다만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아 저녁시간에 가면 허탕을 치기 십상이다. 일요일도 휴무다.

유정청국장(033-533-7222)의 청국장정식이나 대보삼계탕(033-531-5500)의 순댓국도 만족도가 높다. 제과점 ‘보뇌르’(033-534-1237)는 동네빵집이라면 섭섭할 정도로 수준급의 빵을 내놓는다. 케이크류가 특히 일품인데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이다.

동해=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6년 2월 3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