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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시인협회 문학상 2015

나호열 자선시 5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 7. 14:26

나호열 자선시 5편

 

 

공하고 놀다

 

 

상상 임신 끝에 알을 낳았다

무정란의 공

부화되지 못한 채 주렁주렁 망태기에 담겨 있다가

태생의 탱탱함으로 이리저리 차이다가

별이 될 듯 하늘로 솟구치다가

울타리를 넘어 차에 치여 사정없이 찌그러진다

 

 

제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공

끝내 가죽만 남아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평생을 걸고 이 공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이 공의 주인은 누구인가!

 

 

 

 

구름의 집

 

 

한 때 집이었고

기둥이었던 폐기물 속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둔탁한 광물의 알 속에서

밤새 얼룩진 기도를 마친

순례자처럼

붉은 눈물의 태양을 향해 솟아오른다

누구는 스모그라 하고

누구는 먼지라고 호명하는

새들의 뒤를

몇 점 구름이 수호자가 되어

뒤따르고 있다

버려진 폐기물들은 다시 한 번

더 버려진다

 

 

구름의 집이라는 낭만의 집

그러나 구름은 집이 없다

몸통은 없고

날개만 퍼덕이는

하루살이처럼

 

 

 

불타는 詩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

동천 눈물 주머니를 꿰뚫었는지

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

시인들은 역으로 나가 시를 읊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

길고 길었다

 

 

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

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

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

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

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

매운 눈물이 된다

 

 

아, 불타는 시

 

 

스물 두 살

- 전태일

 

 

 

너도 걸었고 나도 걸었다

함께 스물 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티눈이 박이는 세월을 막지 못하였다.

어쩌랴 너는 스물 두 살에 멈추어 섰고

나는 쉰 하고도 여덟 해를 더 걸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평발이 된 맨발이다

나는 아직도 스물 두 살을 맴돌고 있고

너는 아직도 더 먼 거리를 걷고 있을 터

느닷없이 타오르던 한 송이 불꽃

하늘로 걸어 올라가 겨울 밤을 비추는 별이 된 너와

그 별을 추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걸어 걸어 스물 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같은 길을 걸었으나 한 번도 뜨겁게 마주치지는 못하였다

 

 

촉도 蜀道

 

 

경비원 한 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주던 낙지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주던

창동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 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 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

 

 

* 포에지 충남 제 12집 (2015)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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