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질마재길… 신화와 문학이 깃든 30리
- 왼쪽엔 산이 서 있고 오른쪽엔 내가 흐른다. 전북 고창 질마재길 초입이다. 길을 걸으며 갈 길을 생각한다. 누렇게 몸을 바꾼 갈대가 서로 의지하며 흔들린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 (오른쪽 사진)/사진작가 김진석
'꽃무릇쉼터'라고 적힌 표지판 방향을 따라 걷는다. 왼쪽은 산(山), 오른쪽은 내(川)다. 한때 푸르렀을 갈대가 누렇게 몸을 바꾸고 서로 의지하며 냇가에 늘어서 있다. 나무 계단 이어진 산길로 접어든다. 꽤 가파른 오르막길이 500m 정도 이어진다. 땀이 난다. 두꺼운 겨울 재킷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마른 낙엽 쌓인 산길을 내려가자 탁 트인 호수가 나타났다. 연기제(堤)라는 저수지다. 왼쪽 호변(湖邊)을 따라 걷기로 한다. 평탄한 시멘트 포장도로다. 가쁜 숨이 금세 잦아든다. 제방 아래로 고인돌이 있는 마을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았다. 산에는 솔숲이 푸르다. 호변엔 가시덤불, 노란 수염을 늘어뜨린 갈대, 감나무 한 그루, 파릇파릇한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인기척을 느꼈을까. 수십 마리 새들이 수면을 스치며 떼 지어 날아올랐다.
호수 길 중간 연기사지(址) 푯말에서 소요사 입구 방향으로 간다. 연기사는 통일신라 또는 고려 때 선운사에 버금가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연기제가 생기면서 터만 있던 연기사는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소요사 입구까지 약 1㎞는 다시 가파른 산기슭 길이다. 조금 익숙해져서인지 먼저보다 힘들지 않다. 내리막이 나타나는 곳에 비석도 없는 무덤 봉분 두 개가 나타난다. 그 옆에는 휜 모양 그대로 나무를 잘라 만든 정자가 서 있다. 얕고 평평하게 땅 위로 몸을 드러낸 바위 위에 기둥을 세웠다. 잠시 앉아 땀을 식힌다.
흙담에 ‘철수♡영희’ 같은 낙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랑은 둘만이 간직할 때 더 깊어질 것을….
‘미당시문학관’에 들른다. 초등학교(봉암초교 선운분교) 건물을 개보수해 2001년 개관했다. 미당의 시집과 친필 편지 등을 비롯해 ‘자화상’ ‘국화 옆에서’ ‘푸르른 날’ 같은 대표 작품을 전시했다. 집필 공간이었던 서재도 재현했다. 미당의 생전 처신을 문제 삼는 이들도 많다. 전시실에는 일제 말기 그가 썼던 친일 성향 시와 산문도 함께 걸었다. 동료 시인들의 평가도 적어놓았다.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고 했다. 고은은 “서정주는 시의 정부(政府)”라고 평가했다. 전시물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우리 역사와 문학을 한동안 생각했다. 문학관 5층 옥상 전망대에 올랐다. 논밭이 낮게 이어진 마을과 서해 바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길은 다시 풍천으로 돌아온다.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원점(原點)으로 그저 회귀한 것은 아니다. 조금은 튼튼해진 다리 근육과 찬바람 쐰 머리는 처음보다 훨씬 단단하고 맑아졌다. 풍천에 있는 안내판에는 ‘질마재길 총길이 11.64㎞, 2시간50분 코스’라고 적혀 있는데 느린 걸음이었는지 5시간 가까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