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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듬해인 1946년 간송(澗松) 전형필은 자신이 보관해 왔던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을 세상에 공개했다. 해례본을 통해 한글의 독창적인 제작 원리와 철학 체계가 알려지면서 ‘고대 문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오랜 왜곡이 바로잡혔다. 김종택 한글학회장은 “해례본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글의 가치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10월 9일 한글날도 책의 서문에 적힌 출판일인 1446년 음력 9월 10일을 기준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간송이 해례본을 사들인 1940년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42년엔 조선어학회 33인이 투옥됐으며 이 중 몇몇은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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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광섭이 1969년 발표한 시 ‘저녁에’와 이듬해 화가 김환기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그린 답화(答畵)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81년에는 듀엣 ‘유심초’가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지리적으로 보면 성북동은 한양도성의 북쪽 성곽과 북악산으로 삼면이 둘러싸인 ‘도시의 섬’이다. 유일하게 트인 동남쪽으로도 20여 분을 걸어나가야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 다다른다. 서울에서는 드문 ‘지하철 오지’인 셈이다. 그래서 지금의 성북동도 1940년대처럼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운다”(화가 김환기), “장 볼 만한 시장이나 수퍼가 없고”(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 “언덕길이 많아 불편한”(주민 박종운) 성북동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성북동에 이사온 지 15년째인 장석남 시인은 “한양도성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성북동의 풍광은 다른 곳에선 느낄 수 없는 감상을 자아낸다”고 했다. 미술사학자 김용준도 48년 발표한 『근원수필』에서 “기실은 진실로, 진실로 그저 늙은 감나무 몇 그루를 사랑한 때문”이라고 성북동에서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60년대 교분을 다진 시인 이산(怡山) 김광섭과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는 대표적인 예다. 이산이 어스름 저녁 하늘을 그린 ‘저녁에’를 짓자 이에 수화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한 그림을 발표했다. 한국미술대상전 제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한국 추상미술의 놀라운 성취다.
문인들의 스토리도 넘친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길상사(吉祥寺·펜화)엔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러브스토리가 있다. 만해 한용운이 총독부 방향을 바라보기 싫어 지은 북향집 ‘심우장’ 툇마루에선 나라를 잃은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수연산방은 이태준의 외손녀가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석남 시인은 “학생들을 성북동에 데리고 오면 이렇게 가치 있는 볼거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며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공간과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더 좋은 공부”라고 했다. 성북동의 유산과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김명석 교수는 “제대로 발굴되지 않은 곳도 많고, 박태원·윤이상 집터엔 비석 하나 없다”고 아쉬워한다. 서울시는 ‘윤중식 가옥’과 ‘박경리 가옥’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아직 매입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둘러볼까=성북동은 언덕과 언덕으로 이어져 있다. 달동네인 북정마을에 있는 심우장이나 2만㎡ 대지의 길상사를 둘러보는 건 웬만한 체력으로도 쉽지 않다. 대중교통으로는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걸어가거나 6번 출구의 시내버스 1111번, 2112번, 길상사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본지가 제안한 A코스에 관심이 있다면 시내버스를, B코스를 보고 싶다면 길상사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성북동에는 유명한 한정식집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성북초등학교 건너편에 40년째 서 있는 ‘쌍다리 돼지불백’의 7000원짜리 불고기백반은 줄 서서 먹는 명물이다.
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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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42건 … 투어버스 만들면 21세기 속 한양·경성 관광
[중앙일보] 입력 2014.10.09 01:12 / 수정 2014.10.09 01:18시 "전통 의식주 클러스터로 육성"
본지 순환버스 3가지 코스 제안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 내외를 초청해 점심을 한 장소는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이었다. 가옥부터 가구, 옷, 음식까지 우리의 전통 의식주를 한 공간에 담아낸 그곳은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꼽힌다. 국가 정상뿐 아니라 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 스타의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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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성북구가 성북동을 ‘전통 의식주 클러스터’로 육성키로 하고 예산 확보에 나선 건 이곳이 가진 문화적 저력 때문이다. 성북동엔 국가지정 문화재 32건과 시(市)지정문화재 10건이 모여 있다. 삼청각·길상사 등 서울시 미래유산도 적지 않다. 성북동은 세종대왕 때부터 조선왕비가 뽕잎을 따고 길쌈을 재현한 선잠단지가 있던 곳이고(의), 사찰과 삼청각 등 음식관광자원이 풍부하며(식), 성락원과 한옥단지가 집중돼 있다(주).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은 “실크박물관을 통해 전통을 보존하고, 그 옆 공방에서 옷을 만들고, 성북동의 인프라인 갤러리를 통해 판로가 형성됨으로써 이곳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일본 교토가 바로 이런 식으로 전통 산업을 성공시킨 도시인데, 성북동도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연결하고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성북동의 부족한 숙박시설과 불편한 교통도 해결해야 한다. 정 관장은 “프랑스 부티크 호텔과 스페인 파라도르는 그 자체가 전통유산이고 관광지이면서 숙박시설”이라며 “한옥 숙박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이 없는 이곳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투어버스 노선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본지는 ▶지하철 한성대입구역에서 심우장 방향으로 가는 A코스 ▶길상사 방향으로 가는 B코스 ▶성북동 전체를 둘러보는 이들을 위해 순환노선인 C코스, 세 가지 노선을 제안한다(그래픽 참조).
강인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