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정의
김수이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시의 자유로움은, 시가 수호해야 할 질서에 대한 상상과 예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독창성과 새로움, 오래됨 등의 이름으로 관철되는 미완의, 미상의 법칙들. 언어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시의 기율들은 시인의 몸과 마음을 거쳐 다시 시의 텍스트로 흘러든다. 이 과정에는 시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시의 장에 자신의 말을 펼쳐놓기 위해 예우를 다하는 시인의 정중함이 깃들어 있다. 시에 대한 경의를 잊지 않으려는 시 쓰기, 헤아릴 수 없는 시의 법칙을 자신의 방식대로 전유하는 일을 내심 두려워하는 시 쓰기, 시가 예견하는 법칙이 삶의 질서와 복잡한 동형 - 이형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는 시 쓰기. 아마도 이는 시 쓰기가 발생하는 순간의 풍경이자, 시 쓰기가 애초에 윤리적인 행위로서 발현되는 순간의 풍경일 것이다.
시가 아니고서는 어떤 언어로도 말할 수 없을 때, ‘시’는 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시적 명령을 수행할 결의와 실천의 장으로서 도래한다. 시가 열어놓은 자유와 소명은 같은 무게와 가능성으로 다가와 선택이 아닌 공존의 형태로 실현된다. 모든 것을 허용하는 듯하나 끝내 승인해야 할 것만을 승인하겠다는 시의 정언명령에 시인이 응답해 나갈 때, 그는 ‘부름 받은 자’로서 세계와 마주하며 세계를 노래할 권리를 비로소 위임받을 수 있다. 시인은 무심히, 무상으로 세계를 노래할 수 없다. 시인은 세계를 노래할 권리를 세계에 계속 요청해야 하며, 끊임없는 수고를 통해 그것을 필사적으로 획득해야 한다. 미완의, 미상의 시의 법칙들이 스러지고 출현하는 것은 이 자립의 과정에서다. 그러는 동안 시인은 반복과 실패의 운명을 살아낸다. ‘시’를 쓰기 위해 시를 쓰고, ‘시인’이 되기 위해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반복과 실패, 자신의 안에서인지 밖에서인지 알 수 없는 부름을 들었기에 시인이 된 이들은 모두 같은 생의 과업을 안고 있다.
비고
이 글은 괵효환의 시집 『슬픔의 뼈대』 (문학과 지성 시인선 411, 2014.01)의 해설 「북방의 길, 회향 回向의 시간」」 서두 부분이다. 시의 탄생과정과, 시를 읊을 수밖에 없는 시인의 권리와 책무, 시인의 시와 시인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의미를 꼼꼼하게 살피는 분석이 예리하다. 시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료라 생각되어 임의로 「시의 정의」 라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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