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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다산초당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3. 17. 20:12

 

다산초당

 

다산의 거처 문틈 사이로 茶香이 흘러나오는 듯

 

 

 

 

꽃샘추위 속 잠깐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던 얼마 전, 전남 강진의 산사(山寺)에서 하룻밤을 묵고 일찌감치 근처에 있는 백련사 동백숲(천연기념물 151호)을 찾았다. 이른 봄 남부지방에 들르면 빼놓지 않고 가보는 곳이다.

 

 

백련사를 지나 동백숲이 있는 만덕산의 작은 오솔길을 걸었다. 아직 새싹이 올라오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사철 푸른 동백나무의 커다란 잎이 유난히 싱그러워 보였다. 그 잎 사이를 비집고 핀 붉은 동백꽃들. 봄을 재촉하듯 햇살 아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인적 없는 이른 아침의 동백숲에선 동박새들만 요란스레 나를 반겼다. 숲을 빠져나오자 이내 차밭이 펼쳐졌다. 찻잎 가득한 산기슭. 그래서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다산(茶山)’이라 불렀던 산. 정약용의 여러 호(號) 중 하나가 바로 이 산의 이름에서 왔다.(그에겐 다산 외에 귀농, 탁옹, 자하도인 등의 호가 있었다.) 바로 여기에 그가 10년 남짓 유배생활을 한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

 

○ 차를 사랑한 실학자

 

조선시대, 그리고 귀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몇 있다. 정약용은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야심 찬 개혁가였지만, 막강한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갑자기 죽으면서 그의 득의시절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급기야 천주교인을 탄압한 신유박해(1801년)에 휘말려 유배형을 받았다. 18년이란 긴 유배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그의 개혁은 피어 보지도 못한 꽃이 되었다. 하지만 고난의 시절 동안 그는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6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해 자신의 뜻을 후세를 위한 ‘씨앗’으로 남겼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1808년 봄부터 1818년 가을까지 지낸 거처다. 그는 호를 다산으로 할 정도로 차를 아주 좋아했다. 죽을 때까지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찻잔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유배생활 동안 책을 쓰면서 차를 얼마나 많이 마셨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금도 다산이 찻물을 끓일 때 이용했다는, 초당 앞의 넓적한 바위가 오롯이 남아 그의 차 사랑을 떠올려 보게 한다. ○ 숲을 가르는 바람과 차 향기

 

초당에는 정약용의 초상이 세워져 있었다. 안경을 쓴, 온화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근처를 돌아본 후 툇마루에 걸터앉아 조용한 봄을 만끽했다. 약간 쌀쌀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오로지 이른 봄에만 느낄 수 있는 이 감상, 이 햇살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쏴아, 문득 숲을 가르는 바람. 바람은 거대한 물결이 되어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갔다. 눈을 감고 몸을 맡겨 봤다. 거대한 바람의 강물이 지나가는 한가운데 홀로 있는 섬. 그 느낌처럼 초가에서의 귀양생활은 막막하고 외로웠을까. 바람이 지나가자 고요는 한층 짙어졌다. 새 소리 하나 없는 아침. 그 많던 동박새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순간, 퐁. 작은 연못 위로 동백꽃 한 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목이 꺾이듯 통째로 떨어진 커다란 꽃의 파문이 산 속의 깊은 정적을 깼다.

 

문득 초당의 문이 열리고 정약용이 얼굴을 내밀어 연못을 바라본다. 그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다. 조금은 피곤한 기색, 조금은 수척한 모습이다. 긴 글을 쓰느라 지난밤을 지새웠는지도 모른다. 글쟁이들이 글에 심취했을 때는 잠도 자지 않고 아침 해를 맞는 것이 흔하지 않은가. 그는 붓을 내려놓고 머름(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해 문지방 아래에 대는 널조각)에 기대 한참 동안 숲의 봄빛을 바라본다. 나 역시 그가 보고 있는 풍경을 오랫동안 함께 바라본다. 끊어졌던 문맥을 이을 방도가 떠오른 걸까. 쿵, 열었던 문을 닫고 그가 사라진다. 초당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고요해진다. 이제 세상에는 그 고요를 깨뜨릴, 그의 글쓰기를 방해할 그 어떤 바람도, 그 어떤 낙화도 없을 것만 같다. 다산의 길고 긴 글쓰기를 멈출 수 있는 건 오로지 향긋한 차 한 잔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차향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향기는 오랫동안 내 마음을 가만히 움켜쥐고 있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다산이 거닐던 그곳… 강렬한 낙화에 숙연함이

 

붉은 빛의 동백

어느 노래 가사처럼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을 본 일이 있는가, 아니 그 ‘후드득 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송창식의 ‘선운사’는 동백꽃에 대한 노래다. 하지만 동백의 그 처연한 낙화(落花)를 제대로 느끼려면 선운사보단 강진 백련사로 가라. 고창 선운사에선 울타리로 동백숲을 에워싸 놓았다. 강진 백련사에선 직접 숲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 동백, 변치 않는 의리의 상징

 

동백은 중부 이남에서 자란다. 수도권에선 보기가 어렵다. 사계절 내내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늘 푸른 잎이 넓은 나무다. 그래서 과거 선비들 사이에서는 변치 않는 의리의 상징으로 사랑 받기도 했다.

 

보통 겨울에 꽃이 피지만, 중부지방에 가까운 곳에서는 늦은 봄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추운 계절에 꽃을 피우다 보니 암술과 수술의 중매는 곤충이 아닌 새가 맡는다. 이 새가 바로 동박새다. 동박새는 몸집이 작고 귀여우며 깃털이 아름다워 여러 전설에 등장한다.

 

그러나 동백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낙화다. 붉은빛의 커다란 꽃이 만개해 한창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때, 목이 부러지듯 툭 하고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이것은 꽃잎이 모두 붙어 있는 통꽃 구조이기 때문이다.

 

동백의 낙화는 잘 모르는 사람이 처음 보면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일본에서는 무사의 목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 ‘춘수락(椿首落·椿은 동백을 뜻함)’이라 표현하며 불길하게 여겼다. 반면 꽃이 완전히 시들기 전에 한꺼번에 떨어지기 때문에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나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 툭, 꽃이 떨어지는 소리

 

해남에서 일을 마친 후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강진으로 향했다. 국도를 달리다 지방도로 들어섰다. 간척으로 만든 논 너머 멀리 강진만(灣)이 보였다. 백련사로 가는 도로로 빠져 만덕산 초입의 경사길을 올라간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1년(839년)에 세워진 고찰이다. 고려 후기인 13세기에는 이곳에서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가 ‘백련결사(白蓮結社)’란 불교 정화운동을 조직했다. 뒤에 이 절에서만 여덟 명의 국사가 나왔고, 백련사는 대몽항쟁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백련사는 고려 말기 귀족적 성향에 물들며 끝내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는 모든 절집이 불탔다. 지금의 절은 그 후 새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과 백련사의 혜장선사가 교류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정조 사후 신유사화(辛酉士禍·1801년)에 연루돼 강진으로 귀양을 왔다. 그 후 18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백련사 동백숲 근처의 다산초당에서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부국강병과 민본주의를 꿈꾸며 실학체계의 기본을 구상하고 집필했다.

 

백련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따라 걸으면 이내 동백숲길로 접어든다. 아마 정약용도 이 길을 따라 객지생활의 벗이었던 혜장선사를 찾았을 것이다. 봄의 한 중간, 숲 한가운데 앉아 가만히 이름 모를 스님의 부도를 스케치북에 담았다. 어디선가 새의 지저귐이 들려 왔다. 이내 툭, 꽃이 떨어지는 소리. 조용한 숲 속에 나 말고 또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다. 동박새일까? 혹시 나 때문에 꽃 근처에 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투두둑, 여러 송이가 동시에 떨어졌다. 그 옛날 정약용도 근처 어딘가에 앉아 이 소리를 들었을까? 조용한 숲 속의 아침에는 그가 옆에 앉아 시 한수 읊어주는 것조차 이상하지 않을 듯한 묘연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해풍에 밀리는 조수는 산 밑 절벽에 부딪히고

읍내의 연기는 겹겹 산줄기에 깔려있네

둥그런 나물바구니 죽 끓이는 중 곁에 있고

볼품없는 책 상자는 나그네의 여장이라

어느 곳 청산인들 살면 못 살리

한림원 벼슬하던 꿈 이제는 아득해라

 

―정약용 ‘제보은산방(題寶恩山房)’ 중에서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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