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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의 옛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0. 9. 00:54

 

문경의 옛길_山은 낮고 史는 깊더라…한국 최초의 도로 '하늘재'

  •  입력 : 2010.10.14 08:34

'토끼비리'에서 깡총깡총 뛰면 큰일납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로구나    - 진도 아리랑 中

경북 문경은 옛길의 도시다. 문헌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도로 하늘재가 여기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지났던 토끼비리도, 조선시대 영남 유림이 넘었던 문경새재도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이 옛길들은 영남 지역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도로였다. 북쪽에서 달려온 백두대간이 방향을 틀어 영남을 감싸는 시점인 문경에서, 중원을 향한 무인(武人)의 발은 하늘재를 밟았고 문인(文人)의 발은 문경새재를 밟았다. 아찔한 벼랑의 허리를 지나는 토끼비리는 그 고개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문경의 옛길 탐방에 나섰다면 빠질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문경시가 최근 복원한 고모산성이다. 산 정상을 두른 성벽의 모습도 위압적이거니와, 고모산성의 조망은 옛길들이 얼마나 중요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일깨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옛길 찾아 떠나는 문경 이야기.

문경시를 굽이쳐 흐르는 영강(왼쪽). 진남루에서 고모산성 남문을 향해 성벽이 오른다. 이 성벽의 곡선은 유려하되, 방어 요새라는 본래 목적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 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가장 오래된 길, 하늘재

하늘재의 가을은 맑다. 차로 닿는 문경 쪽의 하늘재 정상에서 출발, 나지막한 내리막 따라 이어지는 3.2㎞ 숲길은 청량하다. 낙엽송은 이제 가을에 걸맞은 색(色)을 취하려는 참이고 사이사이 전나무가 짙은 녹(綠)으로 방점을 찍는다. 이끼 낀 석축은 길의 오랜 세월을 알리고 멀거나 가까운 계곡소리가 가는 길을 동행한다.

하늘재는 낮다. 정상 552m.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의 경계에 자리한 포암산의 낮은 목을 넘는다. 짧고 낮지만, 이 고개가 품은 역사는 길고 높다. 하늘재는 문헌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 계획도로다. 삼국사기는 신라 아달라왕 3년 4월에 계립령을 열었다고 기록한다. 아달라왕 3년은 서기 156년이요, 계립령은 하늘재의 다른 이름이다. 하니 하늘재는 올해로 1854년 됐다. 문경새재가 개통되기 전까지 이 길은 영남과 경기 충청을 오가는 간선도로였다.

당시 간선도로는 무인(武人)의 길이었다. 아달라왕은 백두대간 너머 북진을 위해 이 길을 개척했다. 고구려 온달과 후삼국 궁예도 이 길을 밟았다. 신라가 개척했으되, 각기 다른 군사적 야심을 가진 이가 하늘재를 눈독 들였다.

물론 피비린내 나는 흔적은 이제 없다. 문경새재 개통으로 하늘재는 버려졌고 근대엔 이화령 터널 개통으로 다시 한 번 버려졌다. 두 차례의 버림으로 하늘재는 간선도로의 기능을 잃고 전쟁을 위한 연결의 기능을 잃었다. 다만 그 아름다운 숲길로 길의 형태만을 보존했다.

문경 쪽 하늘재 정상에서 시작한 길은 충주 미륵리사지에서 마감한다. 한때 고갯길 넘어온 길손을 맞았을 절은 없고 터만 남았다. 터 위에 우뚝 선 미륵리 석불입상은 두 손을 가슴에 맞댄 채 북쪽을 바라본다. 생각하니 하늘재가 잇는 문경 쪽 마을 이름은 관음리요, 충주 쪽 마을은 미륵리다. 관음은 자비와 소망의 보살이요 미륵은 미래세상을 구원하러 온다 했으니, 하늘재는 그 현세와 미래의 어느 사이다.

벼랑을 아슬하게 이은 토끼비리의 석회암 바위는 반질반질하다. 1000년 넘게 숱한 이들이 밟고 지난 흔적이다. 오른쪽은 고모산성 내 홀로 우뚝한 감나무. / 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이 길, 아찔하다. 위에선 날카롭게 돌출된 바위가, 아래에선 급한 경사의 산세가 길을 압박한다. 간혹 도토리 몇 알이 후드득 떨어져 바닥까지 곤두박질 칠 때마다 길 초입에서 본 문구가 떠올랐다. '전 구간 낙석주의.'

문경시가 목재 데크를 설치해 걷기 좋게 꾸며놨대도 토끼비리는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 영남대로 중 험난하기로 손꼽힌 이 길은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해 아슬아슬하게 나아간다. 1000년 넘게 길손의 무게를 견뎌낸 석회암 바위는 눈에 띄게 반질반질하다. 그만큼 매끈해 자꾸만 몸을 숙여 무게중심을 낮추게 된다.

아찔함과 달리 귀여운 이름은 고려 시대에서 비롯됐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에 쫓길 때 일이다. 오정산과 영강이 퇴로를 막아 갈 길이 없었다. 그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 따라 모습을 감췄다. 왕건은 그 토끼를 쫓아 퇴로를 찾았고, 후세는 이 길에 토끼비리란 이름을 붙였다.

토끼비리는 북쪽으로 문경새재나 하늘재로 나아간다. 이 길은 문경에서 경기·충청으로 향한 유일한 통로였다. 해서 하늘재를 개척한 신라는 북진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타국의 남진을 막는 방어 요새로 고모산성을 축조했다. 오랜 세월 버려졌다가 최근 문경시가 일부를 복원한 고모산성은 현재와 과거가 뒤죽박죽 엉킨 모습이다.

진남루를 들어서면 고모산성 남문을 향해 시원스레 뻗은 성벽이 기다린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 빈틈없이 이어지는 성벽의 곡선은, 유려하되 방어 요새라는 본래 목적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성벽 끝에서 만나는 남문에선 양쪽으로 또 다른 성벽이 과거의 성터를 감싼다. 그 위에 서면 왜 여기에 산성을 축조했는지를 실감한다. 높지 않음에도 문경의 사방을 조망한다. 북으로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낀 주흘산이 또렷하고 남으론 산맥과 조령천이 굽이친다. 경북 팔경 중 하나인 진남교반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도 여기다.

문경이 복원한 데는 여기까지이나 서문 방향으로 돌아 성벽 따라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서문을 지나면 이내 버려진 길이다. 길이라기보다 길의 흔적처럼 보인다. 넝쿨나무가 바닥을 뒤덮었고 이제 막 뿌리 내린 도토리나무가 지천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시간을 감당 못해 성벽은 여기저기 무너졌고, 13만1200㎡ 규모의 성 안은 병사 대신 밀림을 품었다. 넝쿨나무와 낙엽수, 야생화가 한데 얽힌 밀림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낙향, 혹은 금의환향의 길

하늘재와 토끼비리에 비한다면 문경새재는 넓다. 넓은 길은 흙으로 푹신해 신발을 벗고 걷기 좋다. 아찔함도 아련함도 없어 발걸음은 쉽게 경쾌해진다.

문경새재는 길다. 제1관문 주흘관에서 제3관문 조령관까지 약 6.5㎞다. 길손이 하룻밤 묵었을 조령원터와 주막, 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교구정이 주흘관∼주곡관 사이에 띄엄띄엄 서 있다. 고도를 높이며 경기·충청 방향으로 바싹 다가서는 조곡관∼조령관은 건물 없이 호젓하다. 멀리 산 능선이 이어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푸르다.

이 길을 걷는 현대인의 걸음은 유쾌하다. 하지민 과거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많이 묻어난 길이었다. 고갯길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노선 중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금의환향을 꿈꾸며 수많은 영남 유림이 고개를 넘었다. 그 꿈을 이룬 이는 소수였다. 안동 처사 유우잠은 새재 마루턱에서 "해마다 여름비, 해마다 과객 신세/필경엔 허망한 명성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라고 낙향 길을 묘사했고, 박득녕은 "해마다 올라오는 한양이었으나 금년처럼 우울하고 쓸쓸한 여행길은 없었다"라고 썼다.

지금의 문경새재에서 이 슬픔은 지연되다, 미뤄지다, 마지막 관문 조령관에서 가까스로 실감된다. 백두대간 줄기는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을 첩첩이 가로막는다. 고향도 한양도 보이지 않아 멀다. 이때 느껴지는 막막함은 고개 넘기의 고단함이다. 고단함이 묻어나는 슬픔은 쉽게 전염된다. 진도 아리랑은 노래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가/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로구나."

가는 길(서울 기준)

영동고속도로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새재 나들목으로 나온다. 문경새재 이정표 따라 10분쯤 가면 문경새재 도립공원이 나온다. 1관문 주흘관에서 3관문 조령관까지 걷는 데 2시간 소요. 승용차 주차료 2000원. 하늘재에 가려면 문경새재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월악산 방향으로 901번 지방도를 탄다. 갈평교를 지나자마자 하늘재·관음 방면으로 좌회전해 10분쯤 들어가면 된다. 3.2㎞ 숲길로 왕복 2시간. 고모산성과 토끼비리는 진남휴게소에 붙어 있다. 문경새재 나들목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진남역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있다. 명승으로 지정된 토끼비리 벼랑길은 약 500m 구간이다.

약돌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인 돼지고기구이가 유명하다. 약돌은 거정석(pegmatite)의 다른 말로 게르마늄·셀레늄 등 특수 성분을 함유한 화강암의 일종. 문경새재 입구에 있는 새재초곡관(054-571-2020)과 새재할머니집(054-571-5600)이 잘 알려졌다. 진남휴게소 부근에 있는 원조 진남매운탕(054-552-7777)에서는 영강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을 맛볼 수 있다. 2인 기준 3만5000원. 오미자와 사과 역시 문경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오미자주를 마실 수 있다. 또 문경새재 도립공원 일대에서 9일부터 31일까지 문경사과축제가 열린다.

문경읍내에 모텔이 많다.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tou r.gbmg.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문화관광과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인근의 펜션 새재스머프마을(054-572-3762·7만원부터)과 불정자연휴양림(054-552-9943·5만원부터)을 추천했다.

문경시 관광진흥과 (054) 550-6392

문경새재 도립공원 (054)57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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