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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은행나무 숲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0. 9. 00:57

 

2천 그루 은행나무… '비밀의 숲'이 다가오다

  • 입력 : 2010.10.14 08:32

25년 만에 첫 개방… 홍천 '은행나무 숲'
25년 길러 80그루 결실… "손자 땐 많이 열리겠죠 허허"

10월 중순, 서울 광화문 은행나무는 여전히 짙은 초록이었다. 단풍은 나무의 잎이 그 해의 활동을 마감하면서 시작되는 현상. 문득 체념이 일었다. 속도와 효율의 거대도시 서울이 이렇게 이른 휴식에 관대할까. 그때였다. 강원도 홍천 산골짜기에 있는 2000그루 은행나무숲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리고 하나 더. 묘목을 심은 지난 1985년부터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일반 개방을 하지 않았던 이 비밀의 숲이, 무료로 빗장 열 결심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까지.

안개가 자욱했던 지난 월요일, 새벽 댓바람에 자동차를 몰아 강원도로 달렸다. 은행나무 숲의 위치는 강원도 홍천군의 동쪽 끝.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686-4번지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고, 결국 인근 식당 주인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세계 최강의 인터넷 국가에서, 2010년의 최첨단 인공지능은 차로 5분 거리에 떨어진 숲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첫 번째 울타리를 돌자, 숲은 느닷없이 다가왔다. 다른 수종(樹種)은 단 한 그루도 끼워주지 않은, 5m 간격으로 완벽하게 오와 열을 맞춘 은행나무 2000그루가 중국 진시황제의 토용(土俑)처럼 도열해 있었다.

5m 간격으로 오와 열을 맞춘 2000그루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강원도 홍천의 동쪽 끝 산자락. 25년간 문을 꼭꼭 닫아걸었던 비밀의 숲이 처음으로 빗장을 연다. 샛노란 서정(抒情)은 이번 주말 절정을 이룰 것이다.

문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연두와 노랑이 이 황홀한 선분의 양쪽 두 끝점이라면, 그 사이 어느 지점에는 분명히 자기 자리를 갖고 있을 2000가지 색의 파노라마. 저기, 그 파노라마 한복판에서 한 사내가 느리게 움직이며 은행을 털어 줍고 있다. 이 은행나무 숲의 주인. 25년 전 4~5년생 은행나무 2000주를 심은 유기춘(67)씨다. 잠실 야구장 크기 가까운 1만3000평(4만2975㎡) 땅에는 이제 서른 살 남짓 된 건장한 녀석들이 주인의 명(命)을 기다리고 있었다. .

사실, 유씨가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계기는 극히 개인적이었다. 25년 전,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아내는 백약이 무효였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남편은 오대산 자락 광물을 품은 광천수인 삼봉약수의 효험을 들었다. 장기복용의 결과는 성공적. 게다가 덤도 있었다. 아내는 식욕을 되찾았고, 남편은 강원도 내린천 자락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된 것. 마흔두 살이던 1985년, 서울내기 중년 사내는 1만3000평의 강원도 땅을 사들였고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하나 심었다. 기본적으로 한 가마에 80만원을 호가하는 은행 열매 농사가 목적이었지만,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사랑하던 어린 시절 순정도 있다. 왜, 어른 열서너 명이 두 팔을 한껏 벌려야 겨우 잴 수 있다는, 밑동 둘레 14m의 1300년 된 천연기념물 말이다.

은행나무숲 유기춘씨.
마흔둘 중년은 이제 25년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이 됐다. 예상보다 한참 늦고 양도 빈약하지만, 재작년부터 은행도 꽤 열리기 시작했다. 올해 과실을 맺은 은행나무는 80주 정도. 들인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한참 아쉬운 숫자지만, 그는 "은행나무라는 게 공손수(公孫樹) 아니냐, 우리 손자 세대에는 점점 더 많이 열리겠지"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사람이 희망이 있으니까 행복하더라"고 덧붙이면서.

이제 그의 어려운 결심을 전할 차례다. 황금빛 은행나무를 쓰다듬으며, 초로의 사내는 "이 황홀한 색을 혼자 즐긴다는 게 왠지 미안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주말매거진+2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이 25년간 키운 자식들을 무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단풍이 절정을 이룰 14일부터 31일까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특별한 조건도 없다. 오히려 듣는 사람이 걱정이 됐다. 이런 순진한 호의(好意)가 훼손의 아수라장이 되어 되돌아온 사례를 여럿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은 우리 국민 개개인의 양식을 믿는다고 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는 현대문명을 "너무 많은 소음, 너무 적은 리듬, 전혀 없는 멜로디"라는 구절로 요약한 적이 있다. 홍천의 은행나무숲을 한 시간 동안 걸으며, 이 숲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리듬과 멜로디를 상기시키는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아름다운 음악을 훼손 없이 들을 수 있기를. 숲 주인의 어려운 결심과 선의를,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함께 지켜 주기를.

>>> 여행수첩

가는 길(서울 기준)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연장선에 있는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와 양양 방면 56번 국도를 타는 게 지름길. 안 막히면 서울서 2시간 30분쯤 걸린다. 동홍천 나들목에서는 대략 1시간 20분쯤 거리. 서석면 지나 창촌삼거리에서 양양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18㎞ 정도 달리면 된다. 은행나무 숲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숲 주인 유씨가 별도의 표지판을 설치한 바 없고, 내비게이션도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기 때문. 서울 사는 주인이 평상시 숲 열쇠를 맡겨 놓는 인근 식당 '오대산 내고향'(홍천군 내면 광원리 676-1)에 문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직접 찾아오려면 식당에서 다시 창촌삼거리 방면으로 1㎞ 정도 돌아온 뒤, '두빛나래 펜션'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한 후 500m 정도 들어오면 숲 입구가 있다.

먹을거리와 묵을 곳

오대산내고향(033-435-7787)의 촌두부구이(6000원)를 추천한다. 직접 키운 콩으로 만든 두부가 일품이다. 두부전골(7000원·2인 이상)을 시키면 나오는 반찬 중에서는 곰취 장아찌를 꼭 맛볼 것. 봄에 뜯은 곰취를 간장에 절인 뒤 이 집만의 양념으로 버무린 장아찌가 곰삭은 맛을 자랑한다. 산채비빔밥(6000원)은 시키면 금방 나오지만, 산채정식(1만원)은 미리 예약해야 가능하다. 강원도 옥수수로 직접 담근 할머니옥수수술(5000원)도 별미. 민박도 한다. 주중 3만~4만원, 주말 5만원. (033)435-7787. 은행나무 숲 인근 두빛나래펜션(010-9275-3491)은 7만원 균일.

은행나무숲

2000그루 은행나무 숲은 기막힌 절경이지만, 이 사유림을 무료로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알아둘 내용은 이 숲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공원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화장실·휴지통 등 일반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없다. 각각의 볼일이 필요한 분들은, 다른 곳에서 해결할 것. 한쪽 귀퉁이의 아담한 집은 주인 유씨의 개인 소유다. 주인이 서울에 있을 때는 잠겨 있다.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이번 특별 개방은 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차는 숲 앞 공터에 10여대 가능. 만약 숲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다면, 오대산내고향에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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