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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시와 소설-무용가에게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7. 2. 14:52

 

 

시와 소설-무용가에게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

이 근 수(경희대 교수, 무용평론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민간에 전해지는 전설, 감동적인 음악이나 그림 등이 모두 무용작품의 창작에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문학작품만치 지속적으로 안무가들에게 춤의 소재를 제공해 온 예술분야도 흔치않을 것입니다. 물론 모던 발레나 현대무용 안무가들이 영감의 원천을 소설보다 시에서, 문학작품보다는 음악에서 찾고 있는 것이 오늘의 추세이긴 합니다. 그러나 소설보다 시가, 시보다는 음악이 갖고 있는 추상성이 이에 걸맞은 완벽한 몸동작과 테크닉, 일관된 주제와 무대와의 통일성을 동반하지 못할 때 나타나기 쉬운 애매함은 무대를 관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무대 위에서 추어지는 춤이 감동의 근원보다는 화려한 볼거리 정도로 떨어지고 말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사실도 인식해야할 것입니다.

 

서양무용의 역사에서 안무가들에게 많은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또 가장 흔하게 작품화되었던 작가를 꼽자면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성경다음으로 많이 인용된다고 하지요. 흔히 4대 비극으로 손꼽히는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 등은 말할 것 없고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한여름 밤의 꿈 등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져 주요 무용단의 공연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멕시코 출신으로 ‘마사 그라함’이나 ‘도리스 험프리’와 같이 미국 현대무용의 제1세대를 대표하는 무용가로서 알려진 ‘호세 리몬’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강렬한 감정과 그 장대한 표현방식에 모두 매료되어

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를 가장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셰익스피어

의 작품에서 발견한다. 음악을 통해서 바흐가 나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을 인간

성격과 작품 구성면에서 셰익스피어가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실제로 오셀로로 대표되는 인간의 질투를 ‘무어인의 파반느’란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추악한 야심을 대표하는 맥베스를 ‘배런 셉터(Barren Sceptre)'란 작품에서 표현해 보고자 했었지요.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무용가들과 음악가들을 움직이게 했던 작품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손꼽아야 할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940년 ‘레오니드 라브롭스키’의 안무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으로 볼쇼이발레단에 의해서 공연되기 전에도 1926년 디아길레프에 소속되어 있던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바슬라프 니진스키의 누이동생)에 의해서 발레루스를 위해서 안무된 적이 있습니다. 장 콕토가 대본을 쓰고 ‘막스 에른스트’, ‘미로’와 같은 유명 화가들이 무대장치와 의상을 디자인하고 ‘콘스탄트 램버트’가 음악을 맡았었지요. 그 후에도 이 작품은 영국 발레를 대표하는 4인방 즉 ‘존 크랭코’ ‘후레데릭 애쉬턴’ ‘안토니 튜더’와 ‘케네스 맥밀런’ 에 의해서 각기 다른 작품으로 안무되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안토니 튜더는 1943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를 위해서 그리고 애쉬턴은 1955년 '덴마크 로얄발레단'을 위해서, 그 뒤에 존 크랭코는 1958년 밀라노 ‘라 스카라좌무용단’과 1962년 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을 위해서 두 번 이 작품을 안무했었지요. 애쉬턴의 뒤를 이어 영국로얄발레를 맡았던 케네스 맥밀란도 예외없이 1965년 그의 첫 전막 발레로서 마고트 폰테인과 누레예프를 위하여 이 작품을 안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뉴욕의 갱 사회를 무대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인 ‘웨스트사이드스토리’도 셰익스피어의 소재와 ‘제롬 로빈스’의 영감이 새롭게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용가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알려진 프랑스 무용가인 ‘노베르(Jean Georges Noverre)’와 스탕달과의 교분으로 유명한 이태리출신 무용가인 ‘비가노(Salvatore Vigano)’를 무용계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러주는 것도 무용작품에 미쳐 온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기억하는 이유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문학작품은 셰익스피어와는 다른 방법으로 무용가들에게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덴마크 동화작가로만 알려진 안데르센이 무용과 얽혀 있는 이야기였지요. 그는 열네 살 나이에 직접 무용작품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동화집이 1835년에 처음 발간되었을 때 많은 안무가들이 동화 속에서 숱한 로맨틱 발레작품의 소재를 발견했던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지요. 마술이 걸려있는 구두를 산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로버트 헬프만‘과 ’레오나드 마씬‘이 함께 안무한 ‘분홍신(the Red Shoes)’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조지 발란신은 자녀들을 무용가로서 훈련시키기를 원하는 부모들에게 늘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 나는 먼저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힐 것을 권한다. 특히 안데르센의

동화를 꼭 읽게 하는 것이 좋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들은, 다른 동화

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반드시 어린이들만을 위해서 쓰인 것은

아니다. 좋은 동화란 항상 모든 지식 있는 어른들을 위해서도 쓰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작품만이 일방적으로 무용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서 작용해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춤 역시 오랫동안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작품 창작을 위한 에너지를 제공해 왔습니다. 가볍게는 춤에 대한 찬탄에서부터 시작하여 춤을 시와 소설의 소재로 삼고 때로는 무용가에 대한 뜨거운 연모로까지 발전하는 이야기들도 흔히 있었지요. T. S. 엘리엇, 예이츠, 바이런 , 릴케, 죤 메이스필드등 수많은 시인들이 춤을 노래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폴 발레리에게 있어서도 춤은 육체를 신비로 변화시키고 진리를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열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춤은 우리들의 육체가, 그를 옭아매고 있는 허무한 정신의 유희와 공허한 현실을 부정하고 놓여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였던 푸시킨도 러시아발레 초창기의 발레 광이었습니다. 그는 불란서 태생으로 ‘상띠 뻬떼르브르그’에 ‘임페리얼 발레스쿨’을 설립하고 러시아고전발레의 기초를 닦았던 ‘찰스 디들로(Charles Didelot)’의 춤에 매혹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춤에는 그 당시의 불란서 문학작품 모두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가 있다”고.

 

우리 무용작품에서 소설을 대본으로 한 작품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1993년 6월에 초연된 ‘박명숙’의 현대무용작품인 ‘혼자 눈뜨는 아침’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통속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러한 시도가 창작무용으로서는 흔치않았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경자’의 페미니즘소설을 박명숙이 새롭게 해석한 이러한 시도는 우리 현대 무용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마사 그라함’ 일변도의 심각성과 추상적인 메시지를 춤만으로 전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애매성을 치료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명숙 외에도 동서양의 고전 속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발견한 시도들은 많이 있습니다. 장선희의 ‘파우스트 2000’이나 푸루스트의 동명소설을 작품화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를 원작으로 한 박인자의 ‘달그림자(2001)’, 이상(李箱)의 시나 카프카의 소설을 흔히 소재로 삼는 홍승엽의 작품 들이 모두 이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철학이 학문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처럼 무용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라고 말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몸의 동작이 모든 삶의 근원’이라고 갈파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춤이 추상적인 몸놀림만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삶의 근원처럼 친근하게 관객들에게 다가 올 수 있기 위해서 시와 소설이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서 작용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와 산문 2011 여름호 게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