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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8> 대관령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7. 4. 17:50

 

대관령서 커피 팔다 쫓겨난 그녀 “돌아와 일하다 보니 표창장 줍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03 00:02 수정 2021.07.03 11:33

“35년 됐네요. 내 나이 스물아홉, 대관령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8> 대관령
산불 감시역 인정 받은 60대 행상
“식당 일 준다 했지만 대관령 못 떠”

러시아서 귀화한 바이애슬론 국대
“자전거로 고개 넘으며 올림픽 훈련”

강릉 단오제 열기 지피는 성황사
불교-민간신앙, 해안-내륙 하나 돼

 

지난달 9일 만난 김기연(가명·64)씨는 고향 대구를 떠나 강원도 횡계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리고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중 하나인 이곳에서 행상을 시작했다. “개업은 1986년 4월 5일이었다”고 그는 뚜렷이 기억한다.

2021년 6월 10일 대관령면 삼양목장. 이곳은 평일에도 셔틀버스를 증편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김홍준 기자

 

이 '옛 영동고속도로'가 고속국도 50호선의 타이틀로 복작이었을 때다. 하루 수천 대의 차들이 높이 832m 대관령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과객은 대관령휴게소에서 고단한 멀미와 공연한 허기를 달래고 갔다.


김씨는 다시 날짜를 정확히 따졌다. “2001년 11월 28일이었지요. 이 도로 앞에 '옛'이 붙은 날이죠. 저기, 4차로 보이죠?” 김씨가 손끝으로 가리켰다. 횡계 나들목~강릉 분기점 21.7㎞가 새로 깔렸고, 대관령 구간은 지방도로 456호선으로 ‘강등’ 된다.

선자령과 능경봉 사이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대관령 표지석. 김홍준 기자

 

영동고속도로는 옛 평해로와 겹친다. 평해로는 한성에서 울진의 평해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신경준이 집필한 『도로고(道路考·1770년)』에 따르면, 평해로는 한성에서 현재의 망우리를 지나 구리~양평~원주~대관령~강릉~삼척~울진을 잇는다. 『증보문헌비고(1903~1908)』에서는 조선 후기 주요 도로 9개 중 ‘제3로’를 이곳으로 가리킨다. 관동대로라 부르기도 한다.


차는 고갯마루에서 강릉 성산면으로 쏟아질 정도니, 오래전 사람들이 대관령을 대굴령이라고 불렀다. 비탈이 심해 ‘대굴대굴 구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굽이가 아흔아홉번 치지 않건만, 그렇게 부르는 이유도 험난함을 비유하기 위함이다.

지난 6월 9일 차량이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중 한 곳을 돌며 강릉에서 고갯마루로 향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긴장한 차들이 브레이크를 사정없이 밟는다. 그 쏟아지는 긴장의 초입에 김씨의 좌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마음을 잠시 내려놓으며, 쓰레기도 내려놓고 가는 사람이 많단다. “어휴, 제가 갖고 내려가시라고 말해요. 대부분이 수긍하고 도로 가져갑디다.”


35년간 두 번째 장사 트럭이라니, 행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차가 고정돼 있으니 좌전이라 할 수도 있다. 트럭은 장갑차처럼 취약 부위를 무장했다. "누군가 배터리, 연료통을 통째로 빼가더군요. 손도 못 대게 방어막을 쳤습니다.” 차량의 사이드미러에는 ‘산불조심’ 깃발이 달려있다. “산불 감시원 역할도 해요. 산림청에서 표창장도 주더군요. 여기는 일터이자 제가 지켜야 할 곳이죠.”

옛 영동고속도로에서 35년간 행상을 하고 있는 상인의 트럭에 걸린 '산불조심' 표지기. 김홍준 기자

 

그가 35년을 계속 이곳에 있던 건 아니다. 메뚜기처럼 자리를 옮겨야 했다. “민원이 있었지요. 왜 여기서 장사 하느냐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쪽에서 제기한 겁니다. 아예 장사를 못 하게 길을 막았고 재판에 나가기도 했어요. 대관령박물관 앞으로 내려가서 장사해야 했어요. 사유지인지라, 당시 홍귀숙 박물관장님이 편의를 봐줬지요. 관장님도, 경찰분들도 행상 관두면 음식점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했죠. 거절했습니다. 여기 대관령에 계속 있고 싶다고 했어요. 전 딴 데 못 가요.”



공교롭게도 이곳이 '옛 영동고속도로'가 되면서 민원이 사라졌단다. 한 라이더가 비탈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대관령.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내 이름은 케이트, 바이애슬론 선수입니다.”

단단한 체구의 여성이 고갯마루에서 자전거 페달을 멈췄다. 헬멧을 벗으니 금발이 치렁치렁하다. 이 여성, 어디서 본 기억이 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갔습니다.” 케이트로 자신을 소개한 이는 예카테리나 세르게예브나 아바쿠모바(31).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러시아에서 특별귀화해 한국 여자선수론 바이애슬론 역대 최고인 16위에 올랐다. 현재 그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도 훈련지인 평창에서 강릉으로, 강릉에서 다시 평창으로 넘나들었다.

대관령 정상에서 바라본 평창군 횡계 방향. 오른쪽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는 현역 바이애슬론 국가대표 예카테리나 세르게예브나 아바쿠모바로, 체력 훈련을 위해 평창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을 찍은 뒤 다시 평창으로 넘어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11일 강원 평창군 횡계로, 대관령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횡계는 황태 덕장을 거두면 옥수수를 심는다. 김홍준 기자

 

“힘들긴 하지만 할 만해요. 갑니다~.” 그러고는 속도와 정확성을 가리는 바이애슬론 선수가 돼, 이 ‘큰 고개’를 내리달렸다.


‘큰 고개’인 대관령은 영동·영서·관동이라는 이름을 낳았다.『증보문헌비고』는 ‘한지(漢志)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고 한 곳이다…옛날에 관방(關防·국경을 지키는 요새) 두고 목책을 설치했는데, 강릉의 여러 고을을 관동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적는다.

대관령에 관한 ‘오보’도 있다. 강원도 관찰사 고형산(1453~1528)이 대관령 길을 넓혔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 청군이 이 길을 이용해 한양으로 진격해 인조는 노여움에 고형산을 부관참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정룡 강릉대 교수는 『대관령 문화사』를 통해 병자호란 침입로로 사용된 주장 혹은 전설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이상훈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도 “청군은 의주로를 이용했는데, 평해로 진격설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북방 민족이 이곳에 난입한 적이 있기는 하다. 1217년, 충북 제천 박달재에서 고려의 김취려 장군에게 대패한 거란군은 이곳으로 쫓겨왔다. ‘적이 크게 무너져 노약한 남녀와 병기·치중(輜重·군수물자)을 낭자하게 버리고 달아났다. 적이 이로 말미암아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모두 동쪽으로 달아나므로 … 10일 만에 진군하니 적은 이미 대관령을 넘어간 후였다(고려사절요, 고종 4년 7월).’


# “전국 모든 무당이 오죠. 이유? 네이버에 물어보면 돼요.”

누군가의 고(苦)를 감(甘)으로, 해(害)를 익(益)으로 바꾸려는 치성의 몸부림. 굿판이 끝났다. 무속인의 말은, 잔뜩 벼린 작두 같았다. 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였다. 3칸짜리 성황사는 범일국사(810~889)를, 좀 더 안쪽의 1칸짜리 산신당은 김유신 장군을 모신다. 범일국사에 대한 대접이 더 융숭한 모양새다.

옛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대관령휴게소 뒤편에는 대관령국사성황사가 있다. 그 뒤로 산신당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강릉 단오제는 지난 6월 10일 시작한 뒤 6월 17일에 막을 내렸다. 사진은 6월 10일의 강릉 청포교. 김홍준 기자

 

강릉 출신인 범일국사는 영동의 수호신이 됐다. 음력 5월 5일, 그러니까 지난 14일은 단오절. 올해 강릉 단오제가 이곳 성황사에서 열기를 지폈다. 지난달 26일 성황사에서 범일국사를 모셔 강릉 홍제동의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서 정씨 처녀와 합사했다. 같은 날 범일국사의 고향인 구정면 학산마을 서낭당으로 자리를 옮겨 서낭제를 올렸다. 단오제의 주인공이 범일국사인 셈이다. 올해 강릉 단오제는 온라인으로만 열던 작년과 달리 오프라인 전시도 곁들였다. 마지막 날인 17일, 범일국사는 성황사로 다시 모셔졌다.

범일국사는 구산선문 중 하나인 강릉 굴산사를 창건했다(삼국유사). 또 다른 기록(조당집)은, 범일국사가 이곳에서 수련했다고 한다. 굴산사는 지금 터만 남았다. 반경 300m에 이른 거대한 사찰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미스터리다.

굴산사지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얼굴이 없다. 석불을 찾은 최복순(55·강릉)씨는 “기도를 드리는데, 범일국사가 문득 기도에 들어온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로 범일국사는 강릉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작은 길 하나 건너면 5.4m 높이의 굴산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민간신앙과 불교의 합일. 나와 남을 따지지 않음이 단오제의 미덕이다.

지난 6월 9일 강릉의 굴산사지 불상에 합장하는 불자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강릉에 있는 굴산사지 당간지주. 김홍준 기자

 

# “대관령 구름 코스에는 정말 구름만 보이네요.”

성황사에서 옛 영동고속도를 건너면 ‘대관령 숲길’ 4개 코스 중 한 곳인 '구름 코스' 능경봉(1123m)이 있다. 50대 등산객은 “구름 구경 실컷 했다”고 말했다. ‘옛길 코스’에는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 대관령 옛길은 숲모퉁이의 연속이다. 모퉁이를 돌면 다른 세상을 만나는 듯하다.

지난 6월 10일 대관령 옆 능경봉에서 바라본 제운산. 대관령을 오가는 옛 영동고속도로는 제운산 왼편 너머에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9일 대관령 옛길에서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걷는 가족. 김홍준 기자

 

반젱이(반정) 표지석 건너편 터에는 40여 년 전까지 초가 주막이 있었다. 따져보니 강릉 바우길까지, 대관령 이쪽과 저쪽에는 걸을 곳 천지다.


반젱이 위쪽의 한 굽이. 김기연씨가 퇴근 준비를 한다. 이 여성은 왜 큰 도시를 떠나 횡계에 터전을 마련하고 대관령에 좌전을 폈을까. 삶의 굴곡을 펴기 위함이라고만 했다. 그의 시선은 대관령 터널로 들어가는 쭉 펴진 새 영동고속도로로 향했다.

길은 결국 만나 하나가 된다. 바다와 산, 해안과 내륙이 만나 하나되는 곳. 여기는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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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