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49
베틀 앞에 앉아 있는 여인
손바닥만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여윈 등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말없이 하루 종일 베틀이 움직이는 숨소리
가득차는 방
조심스럽게 허공을 휘저으며 찾는 햇살
그녀의 손길이 베틀 위에 걸리고
철커덕거리며 베틀이 돌아가는 동안
그녀는 살아 있다
태양옷을 지어 입으면 나는 이 방을 나갈 수 있을 거야
밤이 되면 베틀에는 한숨이 어리고
기도는 눈물로 가득 찼다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눈 먼 그녀만이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
베틀을 자꾸 낡아져 갔지만
아직도 태양옷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보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
베틀은 무위無爲의 움직임으로
여인의 생애를 끌고 간다
베틀 앞에 앉아 있는 여인
불 꺼진 부화장의 무정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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