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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백년 쯤 전 ……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심은 칠엽수 종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6. 15:52

[나무편지] 백년 쯤 전 ……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심은 칠엽수 종류

  ★ 1,248번째 《나무편지》 ★

   굳이 날짜까지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서울 나들이는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늘 혼자 다니는 답사 길이지만, 내게는 아주 귀한 ‘도반’이 있습니다. 제가 잘 몰랐던 큰 나무를 찾아 길머리를 잡고 안내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은 뜨겁고, 조금만 걸어도 나무 그늘이 간절해지는 지난 주 중에, 그를 만나러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낮술’을 겸한 점심을 즐겁고 고맙게 나눈 뒤에 찾아간 나무가 오늘 《나무편지》에 전해드리는 칠엽수 종류의 나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칠엽수 종류 가운데에 ‘가시칠엽수’라고 해야 합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전에는 ‘서양칠엽수’라고도 불렀던 나무입니다. 칠엽수의 여러 종류 가운데에 서양에서 들어온 나무라 해서 ‘서양칠엽수’라고 불렀는데,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가시칠엽수’를 추천명으로 정한 나무입니다. 칠엽수 종류의 나무들을 구별하기에 가장 뚜렷한 특징이 꽃 진 뒤에 맺는 열매의 껍질에 가시이거든요. 가시가 돋는 종류와 그렇지 않은 나무로 나누는 거죠. 이 나무는 가시가 돋는 나무라는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가시칠엽수’라고 부릅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가시칠엽수의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가 ‘마로니에’입니다. 프랑스 몽마르트르 공원에 무성하게 심어진 이 나무가 인상적이어서 그 지역 사람들이 부르는 프랑스어 이름이 마로니에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입니다. 예술 거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공원이어서, 마로니에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진 것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는 이 프랑스어 마로니에를 영어식으로 발음해서 ‘마로니에’라고 합니다만, 프랑스어로는 마로니에라고 발음되지 않습니다. 알파벳 R 발음이 묘하게 우리말의 리을보다 히읗에 가까운 발음이잖아요. 그러니까 프랑스 마로니에 공원에 가서 ‘마로니에’를 찾으면 알아들을 프랑스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칠엽수 종류 가운데에 가시칠엽수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는 ‘칠엽수’입니다. 이 칠엽수는 가시칠엽수를 서양칠엽수라고 부를 때에 그에 대비해 ‘일본칠엽수’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칠엽수는 일본에서 자라는 칠엽수 종류이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가져와 심기 시작한 나무입니다. 이 종류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칠엽수 종류의 주종이어서 그냥 ‘칠엽수’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로니에는 가시칠엽수이고, 일본에서 들어온 칠엽수는 마로니에와 다른 나무입니다. 물론 두 나무가 열매 껍질의 가시 외에는 구별이 잘 안 될 정도로 비슷하기는 하지만요.

   우리나라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칠엽수, 즉 마로니에가 아닌 칠엽수가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이라고 부르는 서울 대학로의 공원구역에도 마로니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로니에보다 칠엽수가 더 많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자라는 칠엽수를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 키우게 된 게 우리나라 칠엽수의 시작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물론 요즘은 곳곳에서 마로니에로 불러야 할 가시칠엽수가 많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정확한 통계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나라의 칠엽수는 일본인들이 1920년대 초반에 들여와 심으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는데, 그보다 먼저 들어온 칠엽수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나무편지》에 보여드리는 나무인데요. 이 나무는 서양에서 들어온 가시칠엽수, 즉 마로니에입니다. 이 나무는 1912년에 지금의 자리에 심어졌습니다. 그해가 바로 1852년에 태어난 고종이 회갑을 맞이한 해였지요. 그때 네덜란드 공사가 축하의 선물로 나무를 보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이 나무입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게 된 유일한 칠엽수 종류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네덜란드 지역에서 자라던 가시칠엽수, 프랑스 몽마르트 공원에서 자라는 마로니에와 같은 나무인 겁니다.

   서울 덕수궁의 석조전과 석조전 서관 사잇길을 따라 석조전 뒤편으로 돌아들어가면 두 그루의 잘 자란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 공사가 선물로 보낸 가시칠엽수입니다. 굳이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높지거니 솟아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저절로 보입니다. 한 그루는 덕수궁관리소 건물 앞으로 오르는 길가에 우뚝 서 있고, 다른 한 그루는 그 자리에서 남쪽으로 30미터쯤 떨어진 석조전 서관 건물 바로 뒤로 낸 평성문 가까이에 서 있습니다. 100년 조금 넘은, 그래서 아직은 젊디젊은 나무여서 기세등등하게 하늘로 쭉쭉 뻗어오른 나뭇가지의 품이 근사합니다. 오늘 《나무편지》에는 두 그루 가운데에 평성문 앞의 나무만 담아 띄웁니다. 사진으로 공연히 혼란 드릴까봐요.

   아직 ‘가을 바람’이라고 하기에는 이릅니다만, 그나마 선풍기 끄고 잠들 수 있는 날이 며칠 됐습니다. 지금 계신 그 곳의 바람은 어떤가요? 그 뜨겁고 오래 무더웠던 여름 날도 이렇게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이제 모두가 차분하게 결실을 채비해야 할 계절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9월 2일 아침에 1,248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