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2024/07/23 6

[55] 그래, 배를 저어야지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5] 그래, 배를 저어야지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입력 2023.03.24. 03:00   복수극, ‘더 글로리’가 인기다. 학창시절 처참하게 짓밟힌 주인공이 복수에 자신을 헌신해서 영광과 명예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렸다. 삶은 때로 잔인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준다.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누구라도 불운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에게는 그런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위기는 공포를 유발한다. 사람을 잡는 것도 살리는 것도 위기 자체가 아니라 공포를 느끼는 마음이다. 극단적인 공포심은 사람을 바꾼다. 정윤순 작가는 몇 해 전 큰 사고로 반 년간..

지렁이

지렁이 천형은 아니었다머리 함부로 내밀지 마라지조 없이 꼬리 흔들지 마라내가 내게 내린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뿔 달린 머리도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간의 채찍 같은 꼬리도바늘구멍 같은 몸속으로 아프게 밀어 넣었을 뿐지상을 오가는 더러운 발자국에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으려고 지하생활자가 된 것은 아니다주변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외톨이라고 불러도 좋겠다햇볕을 좇아 하늘을 향해 뻗어 가는 향일성의 빈 손 보다악착같이 흙을 물고 늘어지는 뿌리의 사유 옆에서거추장스러운 몇 겹의 옷을 부끄러워했을 뿐 제자리를 맴도는 세상에서빠르거나 느리거나 오십 보 백 보허물을 벗을 일도탈을 뒤집어쓰다 황급히 벗다 얼굴을 잃어버리는 일도 내게는 없으나온몸을 밀어 내며 나는 달려가고 있다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온몸을 꿈틀거리며 ..

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4강

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4강 ■ 상식을 뒤집어 보기 모르는 사람        김나영 그가 뒤통수를 내어준다나도 내 뒤통수를 깃털처럼 내어준다 뒷사람에게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이무덤덤하게 본척만척 서정과 서사가 끼어들지 않아서 깔끔하지서로 표정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평생을 함께하지 반복해서 노력하지 않아도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서로 헐렁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되지어떤 좌석에 앉아서 굵고 짧은 잠에 빠져들 때입을 벌리고 자도 보자마자 잊히니까평화롭지 정면이나 측면이나 측백나무처럼한결같지 동일하게 지루해도 숨통이 트이지 내 뒤통수와 모르는 사람의 뒤통수가내 등뺘와 모르는 사람의 등뼈가내 엉덩이와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가 물컹하게 겹친 적 있..

해피트리,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생기 주는 반려식물로

해피트리,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생기 주는 반려식물로 [김민철의 꽃이야기]김민철 기자입력 2024.07.23. 00:00업데이트 2024.07.23. 09:12   ‘마음에 없는 소리’는 김지연 첫 소설집의 표제작입니다. 작가 고향인 거제로 보이는 해안가 소도시를 배경으로, 할머니가 운영하다 휴업한 작은 식당을 이어받아 소고기뭇국과 멸추김밥을 메뉴로 개업하는 35세 여성 이야기입니다.◇”해피트리 잘 가꾸어야 식당도 안 망할 것”고향 또래들은 어느덧 번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찾아가는데 화자는 ‘아무 것도 안 하지는 않았는데 딱히 무얼 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시에서 지원해 주는 청년 사업의 커트라인에 딱 걸리는 나이 만 35세지만 생일이 보름 정도 지나 지원금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