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가 월선이 그리울 때마다 우뚝우뚝 버드나무
[김민철의 꽃이야기]
<233회>
사람들이 봄이 온 것을 실감할 때는 언제일까.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면서 점차 연두빛이 뚜렷해질 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마침 요즘이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올라 연두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다.

20권짜리 대하소설 ‘토지’에는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작가가 1부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독자들도 가장 관심을 갖고 안타까워하는 ‘러브 라인’은 용이와 월선이 사이일 것이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사이지만 월선이가 무당딸이라는 이유로 결혼하지 못했다. 월선이는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고 다리도 저는 남자에게 시집갔고 용이는 강청댁과 혼인했다. 그런데 월선이가 잘살지 못하고 10여 년 만에 돌아와 읍내 삼거리에 주막을 차린다. 용이는 장날마다 읍내에 나가고 강청댁은 장날이 원수일 수밖에 없다.
읍내에서 오광대놀이 공연을 한 날, 용이와 월선이는 밤을 같이 보낸다. “어느 시 어느 때 니 생각 안 한 날이 없었다. 모두 다 내 죄다. 와 니는 원망이 없노!” 용이가 월선이에게 한 말이다.
둘 사이를 눈치챈 강청댁은 “이놈의 살림살이 탕탕 뽀사뿌리고 내가 머리 깎고 중이 되든가 해야지”라며 반발한다. 이런 강청댁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용이와 월선이는 ‘만나면 고통스럽고 헤어질 때는 더욱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버드나무 배치 분명
그런데 월선이가 평사리까지 찾아와 용이를 만나고 간 것을 안 강청댁은 삼십 리 밤길을 달려가 월선이에게 행패를 부린다. 이에 월선이는 아무 연락도 없이 떠났다. 이를 뒤늦게 안 용이는 산에 올라가 멍하니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다. 섬진강 둑길에는 키 큰 버드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용이는 입맛을 다셨으나 떠나지는 않고 키 큰 버드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는 둑길 쪽을 바라본다. (중략) 용이는 주질러앉은 채 아까부터 버드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는 쪽을 멍하니 바라본다. 풀지게를 지고 용이 앞을 지나가는 영팔은 곁눈으로 퀭하니 뚫린 것같이 허무한 용이의 눈을 본다.>
<용이는 가끔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 가면 그는 맥을 놓았다. 가랑잎을 긁어모아서 불을 지펴놓고 한없이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용이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사내자식이 떠난 계집을 왜 이렇게 잊지 못하는가 자신에게 화를 내보기도 했다. 마을에 강이 없고 길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랬더라면 나룻배에 월선이가 타 있을까, 길목을 월선이 우죽우죽 걸어올까 하는 생각도 일어나지는 않았을 걸, 나룻배와 큰 키 버드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는 길을 보면 항상 용이의 가슴을 떨렸고 그곳에서 월선이 모습을 찾지 못했을 때 용이는 제 눈이 멀었으면 생각하는 것이었다.>

용이가 월선이를 그리워할 때마다 ‘키 큰 버드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박경리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분명하다. 버드나무는 우리 고전에 주로 여인이 이별할 때 건네는 사랑의 징표로 자주 나오는 나무다. 조선 기생 홍랑이 최경창을 떠나보내며 쓴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가 대표적이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용이와 월선이 사이를 보여주는데 더없이 좋은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토지’에서 가장 애틋한 장면
월선은 간도에서 숙모와 국밥집을 차려 돈을 모아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그사이 강청댁은 평사리를 덮친 호열자(콜레라)로 허망하게 죽었다. 대신 임이네가 용이 아이를 낳고 같이 살고 있었다. 용이-월선이-강청댁에 이어 용이-월선이-임이네라는 새로운 삼각관계가 생긴 것이다. 이 관계는 세 사람이 서희 일행과 함께 간도에 가서도 이어져 많은 얘기거리를 만든다.
간도에서 용이와 월선이는 탐욕스러운 임이네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결국 월선이는 불치의 병에 걸려 용이의 품에 안겨 죽으면서 운명적 사랑을 마감하는데, ‘토지’에서 가장 애틋한 장면 중 하나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원주 토지문화관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이 축사에서 김 대통령은 월선이가 죽어가는 장면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했다. ‘슬프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는 말이었는데, 작가도 이 대목을 감회롭게 듣고 있었다’(책 ‘박경리 이야기’). 용이는 서희 일행과 함께 귀향해 평사리 최참판댁을 지키다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이후에는 용이와 임이네의 아들인 홍이, 홍이의 딸인 상의 등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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