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화·봄맞이·보춘화, 이름으로 새 봄 알리는 꽃들
[김민철의 꽃이야기]
<232회>
3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꽃 소식은 뜸한 편입니다. 지난겨울 평균기온은 -1.8도로 지난해보다 2.5도 낮아져 개화가 늦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지난해 봄꽃 개화가 워낙 빨라서 그렇지 올해가 예년 수준으로 피는 것이라고 합니다. 5일이 경칩이니 머지않아 개화 소식이 본격적으로 들려올 것입니다.
◇영춘화, 봄을 맞이하는 꽃
꽃 중에 이름 자체가 봄을 맞이하는 또는 새봄을 알리는 꽃이 있습니다. 먼저 영춘화(迎春花)입니다. 꽃 이름은 일찍 피어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2월 말이면 피는 꽃인데, 지난 일요일 서울 경의선숲길에서 영춘화를 관찰해보니 이제 막 꽃망울이 터져 노란 꽃잎이 살짝 보이는 수준입니다. 활짝 핀 영춘화를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화 시기 예측은 ‘생물계절모형’을 사용하는데, ‘식물이 겨울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려면 일정 기간 이상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일정 수준의 따뜻한 날씨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각 식물마다 꽃이 피는 데 필요한 추운 정도와 따뜻한 정도가 다른데, 이를 수치화한 것이 냉각량(冷却量)과 가온량(加溫量)입니다. 냉각량은 꽃눈이 겨울잠에서 빠진 뒤 어느 정도 추위를 견뎌야(저온 요구량을 채워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지 수치화한 것입니다. 철모르고 꽃을 피웠다가 추위에 얼어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가온량’은 꽃이 피는 데 필요한 누적 온도를 계산한 것인데, 매일 일평균 온도에서 기준 온도(5도 안팎으로 식물에 따라 다름)를 뺀 값의 누적값입니다. 지난 2월 내내 한파가 가시지 않아 영춘화가 아직 필요한 가온량을 채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춘화는 개나리 비슷하게 노란 꽃이 피고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것도 똑같습니다. 자라는 모양이나 크기가 비슷해 멀리서 보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습니다. 하지만 개나리보다 보름쯤 먼저 피고, 꽃잎이 6개로 갈라지는 점이 다릅니다. 개나리는 4개로 갈라지는 꽃입니다. 어린 가지가 개나리는 갈색인데 영춘화는 녹색인 점도 다릅니다. 개나리는 우리 토종이지만 영춘화는 중국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들여와 심은 것입니다.
◇봄까치꽃은 이미 곳곳에 피어
3월 시골 논두렁이나 길가에서 긴 꽃줄기 끝에 자잘한 하얀 꽃 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꽃은 이름 자체가 봄맞이입니다.

앵초과의 두해살이풀로, 꽃줄기 끝에 4~10송이가량 꽃이 달립니다. 서울 화단이나 공터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꽃잎은 5개로 갈라지는데, 꽃 가운데 노란색 동그라미로 멋을 냈습니다.
3월 남부 지방에 있는 산이나 서해안에 가면 가는 잎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와 한 송이씩 피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춘란(春蘭)이라고 부르는 보춘화입니다. 꽃 이름 보춘화(報春花)는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영춘화, 봄맞이와 사실상 같은 뜻인 셈입니다.

보춘화는 언뜻 잎만 보면 도시 화단에 흔한 맥문동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꽃이 없고 잎만 있을 때는 저 식물이 보춘화인지 맥문동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잎 가장자리를 만져보세요. 보춘화 잎 가장자리에는 가는 톱니가 있어서 까칠까칠하지만 맥문동 잎은 톱니가 전혀 없어서 매끈합니다. 또 보춘화 잎은 옅은 초록색을 띠지만 맥문동 잎이 짙은 초록색인 점도 다릅니다. 그래서 사실 멀리서 봐도 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꽃 이름이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인 식물이 있습니다. 봄까치꽃으로,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것이 봄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와 같다는 뜻입니다. 이 꽃은 이미 냇가 등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 있습니다. 하늘색 꽃에 짙은 줄무늬가 있는 작은 꽃이 정말 앙증맞은 꽃입니다.

큰봄까치꽃은 빠르면 1월부터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피기 시작해 6월까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언덕 한편을 모두 점령하고 하늘색 꽃이 흔들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식물의 정식 국명(국가표준식물목록 추천명)은 큰개불알풀입니다. 어여쁜 꽃이지만 이름에 비속어가 들어 있어서 사람들이 부르는데 거북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1999년 이해인 수녀가 ‘봄까치꽃’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이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영춘화, 봄맞이, 보춘화, 큰봄까치꽃은 봄을 가장 일찍 알릴 만큼 추위에 강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개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꽃샘추위도 잘 넘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체력과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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