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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을 견디는 노력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2. 27. 15:35

[철학 쪽지]

물음을 견디는 노력

국민일보 2024. 12. 28. 00:32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은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작가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소설을 쓰는데 그만큼의 인생과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의 연설내용 중 철학을 하는 나에게 꽂힌 문장은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는 문장이었다.

철학은 물음의 학, 즉 좋은 물음을 묻는 능력을 훈련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물음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물음을 묻기보다는 빠른 답을 얻고 싶어진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물음의 힘’에 대해 설명하면서 물은 적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부모님을 두고 싶은가? ▷1번 유형: 너한테 할 만큼 했는데 이만하면 좋은 엄마 아빠 아니냐? ▷2번 유형: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은 하지만 얼마나 너에게 좋은 부모인지는 늘 의문이야.’ 모든 학생들이 2번 유형의 부모님이 좋다고 답했다. 1번 유형은 좋게 말하면 확신이 있는 것이지만 부모로서 잘못 행동한 것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음을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만약에 여지껏 살아오면서 ‘그 말은 내가 ○○한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구나’ 혹은 ‘그런 의도로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었는데 남들 눈에는 그런 의도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네’ 하는 깨달음을 스스로 얻은 적이 없다면, 다음을 묻고 싶다. 그 이유는 늘 올바로 행동해서일까, 아니면 되돌이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오류를 줄이려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물음을 견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사는 사람이 이런 물음을 가지고 살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인간답게 살게 된다. 그것이 물음의 힘이다.

한강 작가는 질문을 견디다가 질문의 끝에 다다를 때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했다. 인생 역시 물음일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다. 물음일 수밖에 없는 것은 물음으로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물음을 견디다보면 그 물음을 견디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변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물음을 묻고 견뎌내는가는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짓는다. 인생에는 끊임없이 물으며 그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답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음일 수밖에 없는 것에 자신만의 답을 확고하게 정해놓고는 다른 사람에게 왜 자신의 답을 따르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은 폭력적이다. 불편한 물음을 도외시하면서 근거 없는 확신에 편리하게 안주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는 게 편하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유명한 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에서 ‘배부른 돼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인생에도 철학에도 물음을 견디는 노력이 필요하다. 철학자의 한마디를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물어야 할 물음을 제대로 물으며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불편한 물음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지는 않는지 말이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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