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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고민 해결… 10대부터 어르신까지 맞춤 '책 처방전' 드립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2. 11. 14:41

책으로 고민 해결… 10대부터 어르신까지 맞춤 '책 처방전' 드립니다

 

[우리 동네 이런 서점] [4] 파주 사적인서점

입력 2025.02.11. 01:24업데이트 2025.02.11. 08:07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가 ‘올해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당신에게’ ‘삶의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싶은 당신에게’ 같은 문구가 적힌 ‘블라인드 북’을 들어 보였다. 책 표지를 가려 ‘자가 책 처방’을 할 수 있게 했다. 책 처방사와 1대1 상담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서가. /박성원 기자

속으로만 끙끙 앓던 고민을 털어놨을 때 책을 처방한다. 정지혜(37) ‘사적인서점’ 대표가 처음 이런 서점을 열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사뭇 진지하게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너 액받이 무녀 되는 거 아니야?’라며. 그러나 ‘쏟아지는 하소연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우려가 무색하게, 책 처방은 그의 천직(天職)이 됐다. “10대부터 70대, 초파리 연구원, 인천공항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 수녀님까지…. 다양한 분을 만나며 느끼는 즐거움이 커요.” 2016년 10월 서점 문을 열고 지금까지 1700여 명이 정 대표에게 책 처방을 받았다.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컴플레인(불만)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정 대표는 출판사 편집자로 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책을 만드는 일보다 ‘전하는 일’에 매료됐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홍대 ‘땡스북스’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아쉬웠던 점은 손님과의 직접적인 교감. “책 계산을 하러 오시면, 이 책 재밌게 읽으시면 다음엔 저 책 읽어보시면 좋은데…. 이런 이야기를 너무 해 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서점을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사적인서점’이다.

‘책 처방’을 콘셉트로 내세운 서점인 만큼 일·관계·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 많다. /박성원 기자
지하에 있는 서점이지만, 유리 통창으로 볕이 드는 구조다. /박성원 기자
서점에서 구매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박성원 기자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도 약간 외진 곳에 있는 이 서점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긴 어렵다. 마음먹고 찾아야 하는, 아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년이면 10년을 바라보는 ‘사적인서점’은 책방 투어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선 이미 이름났다. 정 대표를 ‘책 주치의’로 삼은 내담자도 상당하다. 책 처방 손님 40%가 재방문객이다. 49회째 책 처방 상담을 받는 ‘충성 단골’도 있다. 부부에게 번갈아 책 상담을 해준 적도 있다. 2023년 7월에 파주로 이사하며 “별장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집이나 회사에서 답답하고 힘들 때 제3의 공간에서 바람도 쐬고, 책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파주에 자리 잡기 전엔 서울 번화가를 전전했다. 시작은 서울 홍대와 신촌 사이, 창전동의 5평짜리 서점이었다. 평소엔 100%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토요일만 일반 서점처럼 손님이 자유로이 드나들도록 했다. 코로나 시기였던 2020~2021년부터 동생 정지수(32)씨가 합류했고, 교보문고 잠실점 안에서 숍인숍(매장 안 매장)을 운영했다. “대형 서점 안에 독립 서점이 들어가는 파격적인 시도여서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역시 ‘사적인서점’은 우리만의 독립된 공간이 있는 게 좋겠더라고요.” 이후 서울 성산동에 문을 열었지만, 높은 임차료가 문제였다. “서울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차에 파주에서 서점을 운영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서점 맨 안쪽에 위치한 상담실에 '책 처방사' 정지혜 대표가 앉아있다. /박성원 기자

 

네모 반듯한 회색 벽돌 건물 지하에 약 20평쯤 되는 공간. 서점 맨 안쪽에는 우드톤 가구로 아늑하게 꾸며진 상담실이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책 처방은 어떻게 이뤄질까? 홈페이지에서 ‘기본 책 처방(1회 2시간 7만원)’을 예약하면서 신청서에 평소 독서량, 독서 취향, 책 처방사에게 바라는 점 등을 써내도록 한다. 예약 당일엔 서점 안쪽에서 책 처방사와 1~2시간 이야기를 나눈 다음 즉석에서 책 세 권을 추천받는다. 이 중 한 권을 고를 수 있고, 나머지 책도 원하면 구매할 수 있다.

고민을 듣고 곧장 책을 추천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정 대표는 “3~4년쯤 지나고 나니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며 “한 책을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스무 번쯤 읽는다”고 했다. 나중에 검토하기 편하게끔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 또는 메모를 남긴다. 이렇게 흔적이 잔뜩 남은 책을 특이하게도 서가에 진열한다. ‘사적인서점’을 찾는 재미 중 하나다. 타인의 독서를 엿보는 데서 묘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정 대표는 “밑줄 친 책을 팔아달라는 손님도 있었다”며 웃었다. 그간 책 처방사로 일하면서 어떻게 책을 고르고, 처방하는지 영업 비밀을 낱낱이 공개한 에세이 ‘꼭 맞는 책’도 이달 출간했다.

어떤 사람이 책 처방을 할까. 정지혜 대표는 자신을 "호기심이 많고,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제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걸 다른 사람이랑 나눠야 훨씬 더 재미있어지거든요!" /박성원 기자

 

‘사적인서점’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서점 주인과 손님 사이에 사적인 교감이 이뤄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함께 서점을 운영하는 자매의 사적인 취향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저희가 여기 있는 게 너무 좋고, 여기서 책 읽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게 중요해요. 저희가 행복해야 여기 오시는 손님들도 그 느낌을 전달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덕업일치(좋아하는 것과 일이 일치)’를 이룬 자의 여유와 만족감이 은은히 밀려온다. 정화(淨化)되는 느낌이다. 책 처방 없이도 산뜻한 마음으로 서점을 나설 수 있다.

[사적인서점의 PICK!]

책 처방사가 자주 처방하는 책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엔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라는 대사가 있다.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이 나를 괴롭힐 때, 글로 풀어내길 조언하며 추천하는 책.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일본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인생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70대 남녀가 매일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연애가 아니라, 밤의 고독을 나눌 이가 필요했을 뿐. 그러나 이웃들은 수군댄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 행복을 놓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