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기기 백성호의 궁궁통통2
영성 대가 “삶은 고통? 신비다”…더러운 2평 감옥서 깨달은 것
카드 발행 일시2025.01.31
백성호의 궁궁통통2
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습니다.
#궁궁통1
중세 때
가톨릭 수도원은
세속의 때가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귀족의 자녀는
수도자가 될 때
수도원에
상당한 액수의
지참금을 냈고,
바깥에서 거느리던
하인들을 데리고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기독교 교회사를 통틀어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성의 대가로 꼽힌다. 중앙포토
그러니
청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습니다.
이때
세속의 때에 찌든
수도원을 개혁하고자
애썼던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십자가의 성 요한’입니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틀어
신학적 관점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영성적 관점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
뽑힐 정도입니다.
궁금하더군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영성의 대가로
만들었을까.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스페인의 고도(故都)인
톨레도에 가서
그의 자취를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궁궁통2
십자가의 성 요한은
8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붓다는
태어날 때 어머니를 잃었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친부(親父)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고,
무함마드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흔히
부모를
하늘과 땅에
비유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는
절대적 의지처입니다.
하늘과 땅이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하늘이나 땅을 상실한
이들은
커다란 ‘존재론적 결핍감’을
안고
자란 것 같습니다.
그런
결핍감이
더 큰 하늘과
더 큰 땅을
갈구하는
거대한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십자가의 성 요한도
그랬으리라 봅니다.
중세도시인 스페인 아빌라의 거리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 동상을 만났다. 그는 스페인 최고의 시인이자 신비주의 영성가 로 꼽힌다. 성 요한은 지독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내려놓으며 그리스도의 영성을 체험했다. 백성호 기자
그는
어릴 적부터
홀어머니를 도우며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살라망카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서
가톨릭 사제가 됐습니다.
그는
세속에 찌들어 타락한
수도원을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수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톨레도의 차디찬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궁궁통3
그가 갇힌 곳은
가르멜 수도원에 있는
쪽방 감옥이었습니다.
감방의 크기는
3m×2m였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넓이였습니다.
감방에는
널빤지로 만든 침대와
변기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톨릭 수도원의 개혁을 주창하다가 수도원장에 의해 오히려 감옥에 갇혀 옥고를 치렀다. 중앙포토
중세였으니
위생도 불결했고,
수감자인 그는
8개월간
한 번도 옷을 갈아입지
못했습니다.
숱하게
매질과 고문을 당하면서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개혁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그것도,
내부의 가톨릭 동료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성 요한은
두 평 남짓한
감옥을
자신의 광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겪는
숱한 고통과 절망을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인
‘자아 포기’를 체험했습니다.
당시
감옥을 지키던 간수는
그에게 몰래
펜을 건넸습니다.
성 요한은
그 펜으로
시(詩)를 썼습니다.
그 시들이
오늘날
‘영성의 교과서’로 불리는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영혼은
욕망으로 인해
맑음의 소리를 낸다.
마치
종을 외부에서
때리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육체의 갖가지 욕망이
타종하면
영혼은
고요의 소리를 낸다.
타종은
욕망이 영혼에 부딪혀
맛을 잃고
고요에 삼켜지는 현상이다.
그 고요 속에
온전히 깃들면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바람이
구름을 흐르게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질과 고문,
불결하기 짝이 없는
수도원의 감옥에서,
8개월간
옷도 갈아입지 못한
고통 속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고요에 잠겼습니다.
개혁을 반대하는 수도원장에 의해 수도원 감옥에 갇힌 십자가의 성 요한은 고통의 자신의 광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인 '자아 포기'를 체험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욕망이
자신의 맛을 잃고서
울리는
영혼의 종소리,
그러한
고요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말입니다.
#궁궁통4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멀지 않은
아빌라의 엥카르나시온 수녀원에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 남긴
자취가 하나
있었습니다.
성 요한은
이곳에서 5년간
영적 지도 신부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450년이나 된
수녀원 건물은
꽤 낡아 있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
밟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더군요.
그곳에
그림이 하나
전시돼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앵글이
무척 특이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십자가 예수의 그림은
주로
땅에서
올려다본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거꾸로였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직접 그린 예수의 그림. 하늘에서 내려다본 예수의 모습이다. 백성호 기자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성 요한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서 그린 작품이다. 중앙포토
하늘에서
내려다본
장면이었습니다.
아, 성 요한은
자신의 눈을 내려놓고
하늘의 눈,
신의 눈 속으로
녹아들길
끝없이 갈구했구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때렸습니다.
신비주의
영성의 대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줄기차게
강조했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아라.”
어찌 보면
붓다의 메시지와도
무척 닮았습니다.
성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느껴지는 감각에서
벗어나라.
물욕에 대한 맛을
끊는 것은
어둠 속에 있는 것이고
비어 있는 것이다.
그런 공허 속으로
하느님이 찬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에고의 욕망으로 인해 하느님 나라가 가려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을 때 피어나는 고요를 통해 하느님 나라가 찬다고 말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저는
엥카르나시온 수녀원을
나와서
아빌라 시내를
걸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고요를
줄곧 묵상했습니다.
그때
길에서 한 순례객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번 순례길에서
마주친
문장이 하나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이란
각자가 살아내야 할
신비이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십자가의 성 요한이
불렀던
영성의 노래와도
통했습니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고통의 바다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매일매일
맛보며
살아갈 만한
신비의 바다다.
이 한 마디!
“삶은
각자가 살아내야 할
신비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삶을
바다에 비유합니다.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입니다.
깨달음을
이루면
달라집니다.
고통의 바다는
사라집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신비의 나날이
펼쳐집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자각에서 시작된다. 그 자각은 내면의 고요에서 피어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러한 고요를 노래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중국의 운문 선사는
그렇게
신비를 맛보는
하루하루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日日又好日)”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하는
고요의 소리가
다름 아닌
신비의 소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삶은
고통의 바다인가요,
아니면
신비의 바다인가요.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0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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