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동백나무는 왜 눈물을 뚝뚝 흘릴까
[김민철의 꽃이야기]
<229회>
화자인 정선은 여수가 고향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두 딸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동생은 죽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그 트라우마로 고향을 단 한번도 다시 찾지 않았다. 월세를 반분(半分)할 룸메이트로 들어온 자흔은 여수가 고향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서울역에 도착한 여수발 통일호 안에서 강보에 쌓인 아기로 발견됐다. 태어난 곳이 여수일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트라우마 가진 여성이 보는 동백나무
정선은 어릴 적 기억 때문에 지독한 결벽증과 구토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자흔은 행동거지에 조심성이라곤 없고 자신의 몸조차 함부로 다루어 몸 여기저기가 멍투성이다. 두 사람이 지닌 공통점이라면 늘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엔 여수의 풍경이 곳곳에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오동도다. 자흔의 말로, 오동도 동백나무가 나오고 있다.
<여수항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보았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동백나무 나무껍질이 회갈색으로 인상적이긴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 소설이 두 여성 내면의 상처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니 동백나무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 같이 보였을 것 같다.
결국 두 계절이 지난 후, 화자의 결백증을 견디지 못한 자흔은 어느날 아침 사라진다. 정선은 ‘예리한 칼날이 겨드랑이로부터 젖가슴까지의 살갗을 한 꺼풀 한 꺼풀 저미어오는 것 같은 슬픔’을 느끼며 자흔을 찾아 여수행 열차에 오른다. 소설은 정선이 열차 안에서 자흔과 만남에서 결별까지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정선과 자흔은 여수에서 다시 만나 화해할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은 한강에 입문하기 좋은 소설로 알려져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버거운 독자라면 이 첫 소설집으로 한강 소설 읽기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소설집엔 표제작을 포함해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 등 6편의 단편이 실렸다.
얼마 전 스페인 출신으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공부 중인 롤라와 소피아 씨가 ‘여수의 사랑’ 배경지를 여행하는 EBS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런데 롤라와 소피아 씨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다’는 대목을 술술 외우고 있었다. 필자는 그때까지 이 소설집을 읽지 않아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다. 명색이 소설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소설집을 구해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요즘 막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
마침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는 즈음이다. 지금쯤 오동도에 들어서면 양지바른 곳 동백나무엔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을 것이다. 동백나무가 한겨울에 꽃이 피는 것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돕기 때문이다. 동박새는 동백꽃 꿀을 먹는 과정에서 이마에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나른다.
요즘 제주도나 남해안 지역에선 동백꽃 비슷하게 생겼는데 활짝 핀 꽃들도 볼 수 있는데 애기동백꽃이다. 동백꽃은 1월에 피기 시작해 2~3월에 만개하고 4월까지 피지만 애기동백꽃은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12월에서 1월이 절정이다. 1월 하순에 제주도에 가면 애기동백꽃이 많이 진 것을 볼 수 있다.
동백나무와 애기동백나무를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포인트는 꽃잎이 벌어진 정도를 보는 것이다. 동백나무꽃은 꽃잎이 벌어질듯 말듯 살짝 벌어진 정도인데 애기동백나무꽃은 활짝 벌어져 있다. 나중에 꽃잎이 떨어질 때도 동백꽃은 송이째 떨어지지만 애기동백꽃은 꽃잎이 하나씩 흩날린다. 애기동백나무는 일년생 가지와 잎 뒷면의 맥, 씨방에 털이 있는 점도 다르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일본에서 자생하는 나무지만, 애기동백나무는 일본 원산으로 도입한 재배식물이다.
동백나무는 절 주변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광양 옥련사지 등에서 동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절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은 것은 두껍고 늘 푸른 동백나무 잎이 불에 잘 붙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산불이 났을 때 방화수(防火樹) 역할을 하라고 절 주변에 심은 것이다. 산림청은 동백나무 외에도 아왜나무, 굴참나무, 황벽나무 등을 대표적인 내화수종으로 꼽고 있다. 특히 아왜나무는 1차로 두껍고 커다란 잎이 불을 막아주고 나무 몸통이 탈 때는 속에서 거품이 나와 방화수 역할을 하는 나무다. 남해안 일대를 여행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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