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마지막 잎새'에서 얻는 식물 지식 몇 가지
[김민철의 꽃이야기]
<228회>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는 내용 소개가 필요할까 싶지만 간단히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난한 화가 존시는 폐렴에 걸려 삶의 희망을 잃고 창밖으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잎이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존시는 남은 담쟁이 잎을 셉니다.
<수는 이상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뭘 세고 있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인기척 없는 쓸쓸한 안마당과 20피트쯤 떨어진 이웃 벽돌집의 벽뿐이었다. 벽에는 밑줄기가 울퉁불퉁한 해묵은 담쟁이덩굴이 벽 중턱까지 기어올라 있었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담쟁이 잎들을 흔들어 대어 거의 뼈대만 남은 해골 같은 줄기가 낡은 벽돌에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 한 잎이 남은 밤, 북풍이 사납게 몰아쳤지만 다음 날도 그 잎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본 존시는 다시 삶의 의욕이 생겨 병이 낫지만 아래층에 사는 늙은 화가가 폐렴으로 죽습니다. 그 마지막 한 잎은 존시의 이야기를 들은 늙은 화가가 밤새 몰래 그려놓은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병원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어. 겨우 이틀을 앓다가 병이 나던 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 할아버지 방에 가보니까 벌써 신음하고 있더래. 구두를 신은 채 누워 있는데, 옷이 모두 젖어서 온몸이 얼음처럼 차갑더라는 거야. (중략) 창밖을 봐. 저기 벽에 붙은 담쟁이의 마지막 한 잎을. 바람이 부는데도 꼼짝도 안 하잖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니? 존시! 저게 바로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야. 마지막 잎이 떨어진 그날 밤, 할아버지가 벽에 그린 거야.>
도심을 걷다 보면 시멘트나 벽돌 담장을 타고 시원하게 자라는 담쟁이덩굴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자세히 보면 잎 모양에 따라 두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잎이 포도잎처럼 세 갈래로 얕게 갈라진 것이 많은데 이건 토종 담쟁이덩굴입니다. 하지만 담쟁이덩굴도 어린 잎들은 완전하게 세 장으로 갈라진 것도 있습니다.
반면 다섯 장의 작은 잎이 모여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미국에서 온 미국담쟁이덩굴입니다. 역시 도심 담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에 속하는 낙엽성 덩굴식물로,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에서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담을 잘 타서 이름이 담쟁이덩굴입니다. 도시 담장도 잘 올라가지만 원래 바위지대 등 야생에서도 흔히 자랍니다. 야산에서 지표를 덮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도 볼 수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이 담을 잘 타는 이유는 줄기에 흡착근(흡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개구리 앞발 또는 심전도 검사를 할 때 몸에 붙이는 둥근 물체 같이 생겼습니다. 가을에 익어 겨울까지 붙어 있는 검붉은 열매는 머루 송이처럼 생겨서 포도과 식물임을 실감하게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 배경은 과거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는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입니다. 그러니까 소설 속 담쟁이는 미국담쟁이덩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 삽화를 그릴 때 잎이 세 갈래로 얕게 갈라진 담쟁이덩굴이 아니라, 다섯 장의 작은 잎이 모인 미국담쟁이덩굴로 그리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담쟁이덩굴이나 미국담쟁이덩굴은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낙엽성입니다. 그런데 담쟁이덩굴 비슷한데 겨울에도 잎이 푸른 종류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는 아이비(ivy)입니다. 아이비는 ‘잉글리시 아이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벽을 타고 오르게 심거나 화분의 빈 공간을 채우는 데 많이 쓰는 덩굴식물입니다.
아이비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비슷하게 생긴 우리 토종 식물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송악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한국의 아이비’입니다. 요즘 공원에 송악을 많이 심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전북 고창 선운사 입구 절벽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송악입니다. 개울 건너 암벽에 줄기를 부챗살처럼 펴고 15m 정도 위로 올라간 모습이 정말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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