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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편지] 일본의 高僧이 즐겨 찾으며 노래했던 천년고찰의 거대한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 20. 13:37

[나무편지] 일본의 高僧이 즐겨 찾으며 노래했던 천년고찰의 거대한 나무

  ★ 1,270번째 《나무편지》 ★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일본 시코쿠 지역의 나무 답사 이야기를 마무리하렵니다. 지난 해 12월 초의 답사에서 가장 풍요롭게 만난 나무는 녹나무였습니다. 역시 일본의 남부지역을 대표할 만한 나무인 걸 단박에 알 수 있던 답사였습니다. 그야말로 ‘발길에 채이는’ 나무가 녹나무였는데요, 그 중의 한 그루인 도쿠시마 가모마을에 국가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녹나무는 이미 보여드렸습니다. 사진으로 미처 다 표현하지는 못했어도 정말 훌륭한 나무였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아름다운 녹나무를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두 그루의 녹나무를 보여드리며, 12월 답사 이야기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본 카가와 현(香川?, かがわけん)의 천년고찰, 젠쓰지(善通寺, ぜんつうじ) 사원의 녹나무입니다. 젠쓰지 사원이 이 지역의 중심인 까닭에 도시의 이름을 아예 젠쓰지 시(市)로 정한 도시의 거찰입니다. 이 사원은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 젠쓰지파의 총본산이며, 젠쓰지 종파가 창건된 사원이어서 ‘탄생사원’이라고까지 불립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소개한 사원 호쇼잉도 이 진언종파에 속한다는 말씀은 이미 드렸습니다. 젠쓰지 사원이 처음 세워진 건 서기 807년입니다. 사원은 매우 규모가 큰데요. 동쪽의 동원(東院)과 서원(西院)으로 나누어서, 동원은 젠쓰지 종파 창건지로, 서원은 진언종의 창시자인 승려 구카이(空海, くうかい、774 ~ 835)의 탄생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구카이는 나중에 홍법대사(弘法大師, こうぼうだいし)로 일컬어지는 고승입니다.

   젠쓰지 사원이 사세를 본격적으로 확장한 건 가마쿠라(鎌倉)시대에 천황의 적극적 후원을 받으면서부터였고, 창건 후 400년이 지난 1249년에 동원과 서원의 형태가 완성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동원과 서원이 별개의 사원이었다가 메이지 원년에 하나의 사원으로 통합했다고 합니다. 이 사원은 무엇보다 사원의 창건 승려인 홍법대사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으며, 또 사원의 여러 전각들이 홍법대사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절집의 규모가 방대할 뿐 아니라, 오래된 사원답게 갖가지 종교적 상징이 있는데, 짧은 답사와 구글링만으로는 그 실체를 미처 다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사원을 찾은 건 두 그루의 훌륭한 녹나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들입니다. 위에서부터 다섯 장의 사진은 두 그루 가운데에 사원 경내의 남쪽에 난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자리에 서 있는 〈녹나무(1)〉이고, 그 아래의 다섯 장의 사진은 다른 한 그루의 〈녹나무(2)〉입니다. 나무 뒤에 붙인 숫자는 두 그루가 같은 녹나무여서, 《나무편지》를 보시면서 헷갈리실까봐 임시로 붙인 번호일 뿐이고요. 실제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두 그루가 규모에서 차이가 커서 실제 현장에서는 금세 구분이 되지만, 사진으로는 분명하게 구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굳이 한 가지 구별점을 말씀드리자면 〈녹나무(1)〉은 줄기가 미끈한데, 〈녹나무(2)〉는 줄기 아랫부분에서부터 비틀리고 썩어 문드러진 구멍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이 두 그루의 나무가 이 답사에서 가장 먼저 찾아본 ‘큰 나무’였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처음 전해드린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술도가 앞마당의 녹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만으로도 원산지 일본 남부 지역에 버티고 서 있는 녹나무의 위용이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날 오후 해가 뉘엿뉘엿할 즈음에 이곳 젠쓰지 사원을 찾아 마주친 녹나무는 규모부터 엄청났습니다. 이 두 그루의 나무는 1971년 4월에 일본 다카마츠 현 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입니다. 답사 첫 날부터 큰 나무에 대한 감동이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 날 답사를 함께 하셨던 한 분께서는 아예 “이리 큰 나무를 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도 괜찮겠다”고까지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녹나무(1)〉의 나무높이는 39.96미터나 됩니다. 무려 40미터인 겁니다. 별다른 말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또 2.3미터 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는 10미터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나무는 우리나라의 모든 나무 종류를 통틀어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무높이가 42미터에 이르기는 합니다만, 나뭇가지 펼침폭을 비롯한 나무의 전체 규모로는 이만한 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 본 큰 나무입니다. 이번 답사의 첫걸음에서 이만큼 큰 나무를 만났다는 게 벅차고 즐거웠습니다. 물론 이 답사 일정에서는 이보다 더 큰 녹나무를 그 뒤에 만났지요.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쇼도시마 가모마을 녹나무〉가 그런 나무인 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앞에서 간단히 짚어본 겐쓰지 사원은 규모도 크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국보급의 문화재가 숱하게 많은 사원이고, 우리나라의 절집에서 흔히 보던 풍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풍경도 눈에 띄었지만, 그런 걸 살펴볼 겨를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저 한 그루의 큰 녹나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나무에 담긴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나무는 서로 다른 표정으로 마음 깊은 곳을 파고 들어오는 게 여간 감동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나무 앞에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당집’ 같은 게 놓여있어서, 이 나무 앞에서 우리의 ‘당제’와 비슷한 제를 올리는 모양이라고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큰 나무에, 그야말로 ‘도취’해 있다가 숨 좀 돌리려다 보니, 맞은 편에 또 한 그루의 큰 녹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높이 40미터의 큰 나무에 취해있는 상황에서 발길이 잘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녹나무(2)〉는 〈녹나무(1)〉에 비해 나무높이도 훨씬 낮고, 나뭇가지 펼침이나 풍성함이 앞의 나무에 비해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그랬지요. 하지만 그 나무 역시 작은 나무가 아닙니다. 이 〈녹나무(2)〉는 나무높이가 29.99미터에 이릅니다. 그리고 나무 줄기는 나무 앞에 세워둔 표지판에 ‘1.5미터 높이에서 잰 값이 11미터’라고 돼 있습니다. 높이는 좀 낮지만, 줄기는 좀더 굵은 거죠. 사진을 보시면 왜 그런지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앞의 나무에 비하면 특히 나무높이가 훨씬 작은 건 맞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거대한 나무라고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녹나무(2)〉는 한눈에도 오래 살아온 나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줄기 곳곳에 썩어 문드러진 공동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땅에서부터 솟아오른 줄기가 음전하게 비틀리며 솟아오른 게 매우 신비롭습니다. 이 나무는 젠쓰지 사원의 창건자인 홍법대사가 무척 좋아했던 나무여서, 그의 시(詩)에 이 나무를 표현하기도 했답니다. 서기 835년에 입적한 홍법대사가 좋아하고 즐겨 찾던 나무였다면 그때 이미 적어도 100년은 된 나무였을 테고,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못 해도 1,300년은 넘은 나무라고 보는 게 맞지 싶네요. 나무의 생김새를 보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한 기세입니다. 긴 세월 살아오는 동안 늙고 병들었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 오히려 그의 연륜의 증거로 여겨집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짐승이나 나무도 자기에게 가장 알맞춤한 환경이 있는 법이겠지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녹나무는 일본의 기후에 딱 맞춤한 모양입니다. 흔하디 흔하게 보이는 나무 종류가 녹나무이기도 했고, 녹나무 가운데에 가장 큰 나무 몇 그루에 감탄했던 답사였습니다. 특히 젠쓰지 사원의 녹나무는 오래된 사원의 묘한(우리나라 절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여느 큰 나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훌륭한 나무입니다. 다시 찾아볼 기회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겠지만, 사진으로라도 오래오래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지난 12월의 나무 답사에서 찾아본 나무 가운데 《나무편지》를 통해 보여드리는 나무는 오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본의 녹나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녹나무가 떠올라서, 지금 우리나라의 녹나무들을 되짚어 보고 있는데요. 짬 되는 대로 우리나라의 녹나무 이야기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대한(大寒)입니다. 소한 대한 다 지나고, 다음 차례는 ‘입춘(立春)’입니다. 새 봄을 더 풍요롭게 맞이하기 위해 지금 우리 곁의 나무들을 한번 더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1월 20일 아침에 1,270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