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나뭇가지를 24미터 펼친 ‘향나무 가운데 가장 큰 향나무’
★ 1,269번째 《나무편지》 ★
시간이 참 느리게 흘러갑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하루 빨리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인 탓이겠지요. 다시 또 나무 이야기 전해드려야 하는 월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지난 주에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어려우셨지요. 다행히 주말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풀렸습니다. 예보가 정확히 맞지는 않겠지만, 45일 기상예보를 살펴보니, 올 겨울에는 지난 주보다 더 추운 날은 없어 보입니다. 우리 곁의 시간이 머뭇대고는 있지만, 세월은 분명 겨울 지나 봄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곧 설 지나고 우리 곁에도 모두 함께 환하게 웃으며 맞이할 봄이 찾아오겠지요.
오늘 《나무편지》의 제목에는 ‘향나무 가운데 가장 큰 향나무’라고 썼는데요. 이게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제목에까지 ‘일본’을 표시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지난 《나무편지》에 소개한 ‘쇼도시마’라는 작은 섬의 호쇼잉(?生院)이라는 절집 향나무가 오늘 전해드릴 나무입니다. 이 향나무는 나무높이가 20.9미터이며, 가슴높이줄기둘레는 16.9미터인 큰 나무로, 나무나이는 1천6백 년 정도로 추정된 나무입니다. 무려 1천6백 년입니다. 이 향나무의 나무나이는 일본의 임학자(林學者)이며 ‘일본 공원의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혼다 세이로쿠(本多?六, 1866 ~1952)가 측정했다고 합니다. 혼다 세이로쿠는 일본 최초로 임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로, 나중에 동경대 농과대 교수를 지내기도 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생경하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무척 유명한 임학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혼다 박사가 살아있던 때에 이 향나무의 나무나이를 측량한 것을 완벽한 값으로 믿기에는 조금 모자란 점이 있겠지요. 하지만,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 1천6백 년이라는 세월이 충분히 믿어집니다. 일본 시코쿠 답사 때에 만난 나무들 이야기를 전해드리면서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에는 그냥 ‘천연기념물’이 있고, 그 앞에 특별히 ‘특별’자를 붙여서 ‘특별천연기념물’이라고 불리는 30건의 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나무는 1922년 10월 12일에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입니다. 일본에 현재 존재하는 향나무 가운데에는 규모에서 가장 큰 나무인 건 물론이고, 나무나이에서도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합니다.
나무가 서 있는 호쇼잉이라는 절집은 그리 크다 할 수 없는 아담한 절집입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올리브나무와 소철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했던 쇼도시마(小豆島) 서쪽에 있는 절집입니다. 메이지(明治)시대(1868 ~ 1912) 때까지만 해도 호쇼잉 주변은 숲이었다고 합니다. 이 숲에는 주로 자생하는 향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그 숲의 향나무가 그리 큰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합니다. 특별천연기념물인 이 향나무는 1천6백 년 전인 고흔(古墳)시대에 일본 제15대 천황이었던 오진(?神, 재위 270 ~ 310) 천황이 쇼도시마를 찾았을 때에 손수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앞의 혼다 교수가 이 나무의 나이를 1천6백 년으로 추정한 근거가 되었지 싶습니다.
지장보살을 모시는 고찰 호쇼잉은 오진이 쇼도시마를 찾아와 향나무를 심은 훨씬 뒤인 덴페이(天平) 연간(729~749)에 창건된 절집으로 ‘진언종(眞言宗)’이라는 종파의 절집입니다. 진언종에도 여러 종파가 있는 모양인데, 우리 불교와 사정이 달라서 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오진이 절집 호쇼잉을 찾아와 나무를 심은 게 아니라, 절집과 무관하게 이 지역을 찾아왔다는 기념으로 심은 걸로 보아야 하겠지요. 사연을 살펴보니, 이 나무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오네요. 1882년에 이 절집의 전각을 새로 지으려 했답니다. 이때 건축 비용이 모자라 궁리하다가 절집의 자랑이며 가장 큰 재산이 될 만한 것 가운데 하나인 이 향나무를 팔 계획을 내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때, 이 마을의 유지가 재건 비용을 마련하면서, 다행히 나무가 팔려나가지 않은 거라고 합니다.
〈일본 쇼도시마 호쇼잉 향나무〉는 마을 언덕 마루에 자리한 호쇼잉 경내에 있는데, 이 절집까지 오르는 곧게 난 골목을 오르면서 멀리에서부터 나무의 위용이 바라다보입니다. 나무와 관련한 아무런 정보도 모른 채 찾아간 것이었는데, 멀리서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할 만큼의 나무의 위용이 느껴졌습니다. 나무 앞에서도 차마 가까이 다가서기가 두려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을 어쩔 줄 모르고 한참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정도입니다. 나무에 다가서자 일부러 청하지도 않았는데, 마을 사람 한 분이 찾아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서 나무 줄기부터 살펴보면서 감동은 배가했습니다. 나무 줄기에는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굵기가 7센티미터나 되는 굵은 밧줄이 감겨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당산나무에 둘러친 금줄과 같은 개념인 거죠. 16.9미터의 줄기 둘레 전체를 넉넉히 늘어뜨리며 감은 이 밧줄의 길이는 18미터나 됩니다. 나무 줄기는 1미터쯤 높이에서 셋으로 갈라졌는데, 서쪽으로 뻗은 줄기의 둘레는 6.2미터, 남쪽은 7.8미터, 북쪽은 7.3미터나 됩니다. 그 줄기 하나만으로도 그 동안 우리가 보았던 커다란 향나무의 중심 줄기 못지 않게 굵다는 이야기입니다. 굵게 나뉜 줄기로부터 뻗은 나뭇가지는 동서 방향으로 24미터, 남북으로는 23미터까지 펼치며 둥글고 아름다운 모양을 이뤘습니다.
줄기의 일부가 썩어 구멍나고 이를 충전재로 메운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 나무의 생육 상태는 그의 나무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우 건강합니다. 워낙 오래된 나무여서 그런지 일반적인 향나무라면 1,2년생 가지에서 바늘잎이 나는 것과 달리 이 나무에서는 바늘잎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특이한 점인데요. 까닭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모로 오래오래 보존해야 할 크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2016년부터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호쇼잉 향나무 보존회’를 설립해 잘 지켜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마을 남자도 그 보존회 회원이지 싶습니다.
오늘의 《나무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45일 일기예보를 살펴봅니다. 가만가만 짚어보아도 하루 최저기온이 영하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은 없습니다. 완벽한 예보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이 예보만 봐도 숨이 돌려지네요. 우리 사는 세상에도 빨리 봄이 오기를 바라면서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평안하십시오.
고맙습니다.
2025년 1월 13일 아침에 1,269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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