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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편지] 아담한 절집을 장엄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 7. 12:40

[나무편지] 아담한 절집을 장엄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 1,267번째 《나무편지》 ★

   지난 해 말에 띄운 《나무편지》에서는 일본 시코쿠(四?) 가가와(香川)현에 속한 작은 섬 쇼도시마(小豆島)의 올리브나무를 보여드렸습니다. 쇼도시마는 그리 큰 섬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섬과 비교하자면 울릉도(72.86km²)의 두 배를 조금 넘고, 강화도(302.6 km²)의 절반쯤 되는 153.30 km²의 면적의 섬입니다. 이 섬에 사는 사람은 2만5천 명 정도인데, 그나마 점점 줄어드는 중이라고 합니다. 간장과 올리브나무로 유명한 섬이라는 건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또 한 그루의 엄청난 나무를 보여드리려고 쇼도시마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일본어로 ‘소데쯔(ソテツ, 蘇?)’라고 부르는 소철 Cycas revoluta Thunb.입니다. 소철은 소철과 소철속에 속하는 식물인데, 소철과에 속하는 식물로는 소철속이 유일합니다. 세계적으로 소철속에 속하는 식물은 100종이 넘는데, 대개는 중국과 베트남 일본 호주를 비롯해 오세아니아 동아프리카 인도양 지역에서 자랍니다. 그 가운데 일본과 중국 남부 지역에서 자라는 종류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소철이라 부르는 식물입니다. 일본에서부터 들여와 심어 키우며,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밖에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소철 종류에는 우리말 이름이 따로 없습니다.

   소철(蘇?)이라는 이름은 소철의 건강이 나빠졌을 때에 뿌리에 쇠못을 박거나 고철을 문지르면 건강을 회복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철에 의해 소생한다’는 뜻인 거지요. 그러나 성장이 느려서 마치 철처럼 고정불변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영문으로는 소철이 야자나무를 닮았다는 데에 착안해 Sago palm이라고 부릅니다. 소철 종류의 식물 대부분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등록했습니다. 은행나무 종류와 함께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나무 네 종류 가운데 하나인 소철은 긴 세월 살아오는 동안 많은 종류가 멸종했고, 여태 남아있는 종류들도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아야 하는 겁니다.

   소철 종류에 대한 여러 연구 가운데에 일본 동경대 조교수인 이케노 세이이치로(池野成一?)의 연구 결과는 특별한 걸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케노 교수는 소철의 꽃가루에서 꼬리를 발견하고, 이를 ‘정자’ 혹은 ‘정충’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어요. 소철의 정자 발견에 앞서 같은 대학의 식물학과 화가로 근무하던 히라세 사쿠고로(平?作五?)는 은행나무 꽃가루에서 꼬리를 먼저 발견하지요. 그리고는 이케노 세이이치로와의 합동 연구를 통해 ‘은행나무 정충’을 발표했습니다. 히라세가 은행나무 정충을 발견한 건 1894년 1월이었고, 이케노가 소철 정충을 발견한 건 1896년 9월입니다. 그 두 사람은 나중에 일본 학자들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일본 아카데미 황실상’을 수상합니다.

   여기에서 일단 편의상 ‘꽃가루’라고 적기는 했습니다만, 은행나무와 소철 종류는 꽃이 없는 겉씨식물이어서 꽃가루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겉씨식물의 꽃가루를 이야기할 때마다 헷갈리는 이야기인데요. 어쩌는 수 없이 식물학의 체계를 먼저 정립한 영미문화권의 사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꽃가루’라고 부르는 그걸, 영문으로는 폴렌(pollen)이라고 씁니다. 폴렌은 식물을 번식시켜주는 가루를 이야기하는 용어입니다. 그 번식의 결과는 씨앗(seed)입니다. 꽃이 피는 식물이나 꽃이 없는 식물을 막론하고 써도 됩니다. 폴렌은 1520년대부터 쓰인 라틴어로 그 뜻은 ‘미세한 가루’입니다. 이걸 식물에 적용해 처음 쓴 건 1751년에 칼 린나이우스였습니다.

   그 뒤 씨앗을 맺는 식물의 번식 과정에 반드시 나타나는 수배우체인 이 가루를 폴렌이라고 불렀습니다. 식물학을 우리 문화권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폴렌을 번역하면서 ‘미세한 가루’라 할 수 없다 보니, ‘꽃가루’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겁니다. 식물학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선 일본도 ‘가흔(かふん, 花粉)’ 중국도 ‘화푼(花粉)’이라고 씁니다. 더 알맞춤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겁니다. 일부에서는 겉씨식물의 경우, ‘소포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겉씨식물의 폴렌이 구조학적으로 양치식물과 선태식물에 가까운 건 인정할 수 있지만, ‘포자’는 ‘씨앗’이 아니기 때문에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더 좋은 결론이 없어 어쩌는 수 없이 ‘꽃가루’라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소철은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따로 있는 나무입니다. 암꽃과 수꽃이 당연히 다릅니다. 겉씨식물의 꽃가루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암꽃’ ‘수꽃’이라는 표현도 옳지 않습니다만 알맞춤한 대안이 없는 탓에 그대로 씁니다. 대개는 5월에서 8월 사이에 꽃이 피는데, 황록색의 수꽃은 줄기 끝에 뾰족한 원통형으로 30센티미터에서 70센티미터까지 길쭉하게 피어납니다. 암그루의 줄기 위쪽에서 피어나는 암꽃에는 많은 꽃잎(역시 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으로 덮여 있습니다. 밝은 갈색을 띠는 벨벳 느낌의 꽃잎에는 갈색 털이 빽빽하게 돋아납니다. 소철의 꽃은 피어나면서 자신의 향기를 멀리 퍼뜨리기 위해 일정하게 열을 발산합니다. 대개의 겉씨식물처럼 소철도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지만, 가끔은 딱정벌레 종류의 곤충을 끌어들이기도 하는데, 그 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인 겁니다.

   소철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매우 오래된 식물인데요. 뿌리에 시아노박테리아와 공생하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대략 50년 정도 자라면 5미터 정도 자라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꽃 진 뒤에 맺는 씨앗에는 전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를 일본에서는 죽 만두 과자 떡 된장 간장 같은 식품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답니다. 여기에는 줄기와 잎도 함께 쓰이는데, 소철의 씨앗과 몸체에는 사이카신과 BMAA 와 같은 독이 많이 들어 있어서 잘못 먹다가는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구토와 설사와 같은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게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르기도 할 정도로 독성이 무척 강한 듯합니다.

   일본에서는 소철을 흔히 ‘돈 먹는 나무’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는데, 그건 소철을 옮겨 심는 것도 쉽지 않고, 생육 상태를 잘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어서라고 합니다. 까닭에 소철을 권력 혹은 부의 상징으로 많이 활용했던 듯합니다. 집안 정원에 소철이 많이 있다는 건 그의 권력이나 부가 풍요로웠음을 입증하는 게 된 겁니다. 일본에는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소철이 적지 않습니다. 군락지를 제외하면 12건의 소철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데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소철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소철만으로도 깜짝 놀랄 만한 규모인데요. 이 소철 외에 일본에는 ‘3대 소철’로 불리는 나무가 있는데, 이 소철은 그 안에 들지 못합니다.

   이 소철은 쇼도시마의 불교 순례지인 88개 장소 중 31번째 사찰인 ‘세이간지(誓願寺)’ 경내에 있습니다. 절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장대한 규모로 눈길을 끄는 이 소철은 뿌리 부분의 둘레가 8.1미터나 되고, 높이는 6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나무입니다. 나뭇가지펼침의 면적은 120 평방미터나 되고, 나무나이는 적어도 1,000년은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밑동은 다섯 개의 굵은 가지로 나뉘어 있고, 가지마다 무수히 많은 가지가 뻗어나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나무의 생육 상태는 여전히 건강해 보입니다. 얼핏 봐도 굉장히 오래됐음을 알 수 있는 이 소철은 암그루입니다. 규모도 규모이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곳곳에 피어 있는 암꽃입니다. 싱그러운 꽃 아래 쪽에는 시든 꽃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일본 쇼도시마 세이간지 소철〉은 에도시대 중기인 겐로쿠 시대(1688~1704)에 이 지역에서 에도시대 쇼도시마 상인들을 위해 해운업을 운영하던 부유한 상인이 시오야 긴파치(?屋金八)가 나가사키에서 가져와 세이간지에 기증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또 이 절집을 처음 지은 뒤에 절집에서 처음 심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이 소철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24년 12월 9일이라고 합니다. 100년 전에 오래된 이 큰 소철을 어디에선가 옮겨와 심은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가운데 하나인 소철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그밖의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 뿐 아니라, 제주도에서조차 크고 오래된 개체를 볼 수 없는 까닭에 〈일본 세이간지 소철〉은 만나는 순간부터 내내 경이로웠습니다. 특히 이 소철은 줄기 밑동 부분이 놀라웠는데요. 이를 사진으로 다 표현하기 어려워 아쉽습니다. 대강이나마 이 거대한 소철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난 해 말에 벌어진 불안하고 어수선한 사태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새해 초입니다. 어서 빨리 어두운 날들의 치욕스러운 일들을 정리하고 2025년 새해에는 나무와 더불어 평안한 날들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1월 6일 아침에 1,267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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