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신춘문예 당선시

2024 광주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30. 16:15

파랑

엄지인

잔디를 깎습니다

마당은 풀 냄새로 비릿합니다

잔디가 흘린 피와 눈물이라는 생각

우린 서로 피의 색깔이 달라

참 다행이지 혈통이 아주 먼 사이라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잘린 끝을 만져보는데 아프지 않습니다

심장과는 아주 먼 거리일까요

손 뼘으로 잴 수 있지만

누군가는 머리에서 심장까지 전력을 다해 뜁니다

머리카락 입장에선 불행일지 모른다는 생각

골목 밖에선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날카롭습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만 소리 내 운다고 하는데

축축한 여기 그냥 좀 내버려두라고

배가 헐렁한 동물에게 보내는 우호적인 경고라는 생각

다치지 않게 손톱 칼로 조심히 군살을 깎지만

소스라칩니다

가장자리에서 바깥으로 밀리지 않으려는 비명

TV에서는 기상 캐스터의 주의보가 쾌속으로 지나갑니다

암거북들이 짝을 잃고

더운 바다를 피해 육지로 돌진합니다

거울에 목을 비춰보니

빗물이 빗장뼈 안으로 고여 흘러넘칩니다

쇄빙선이 얼음을 부수고 지나간 듯

물살이 온통 파랗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