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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 미발표 詩 166편 세상 밖으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13. 22:44

 

박목월의 미발표 詩 166편 세상 밖으로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육필 노트와 미발표 시 공개

입력 2024.03.13. 03:00업데이트 2024.03.13. 10:14
 
 
 
박목월 시인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의 육필 원고를 펼쳐 보이고 있다. 박 교수는 “아버지는 이 노트를 원고지에 그대로 옮겨 시집을 발표했다. 발표하지 않았다는 건 완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고치는) 과정도 시가 아닌가란 생각에 용기를 내 공개했다”고 했다./이태경 기자

 

시인 박목월(1915~1978)이 세상을 떠난 시간을 잊을 만큼 그의 육필 노트는 정갈했다.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그의 미발표 시 공개 회견장.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육필 노트에 대해 “어머니가 보따리에 싸서 감추듯 보관했던 것”이라고 했다. 6·25전쟁 때는 천장에, 대부분은 장롱 바닥에 있었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별세한 뒤에야 그 정체를 알게 됐다. “저도 보지 못한 노트가 있어 놀랐습니다. 시집을 신중하게 내셨던 아버지 마음을 어기기 어려웠지만, 한 시인의 전반적 생애를 보는 데에 필요한 자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자인 우정권 단국대 교수가 작년 그 노트를 보고 싶다며 운을 띄웠고, 박 교수도 노트를 공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시인 박목월

이날 공개된 166편의 시는 동리목월문학관에 기증된 18권과 박 교수 자택에 보관한 62권의 노트에서 나온 것이다. 박목월이 시인으로 데뷔한 1939년 무렵부터 1970년대 별세 직전까지를 망라한다. 미발표 시 290편 중에서 완성도와 주제 등을 고려해 추려냈다.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가 작년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분석한 결과.

박목월은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불렸고, ‘나그네’를 비롯한 수작을 남긴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리얼리즘이 문단의 주류가 되면서 비평적 논의에서 점차 밀려났다. 근래에 작품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돼 왔다.

그래픽=정인성

그간 공개된 작품 경향과 달리, 6·25전쟁 같은 역사의 참혹함과 조국의 희망 같은 거대 담론을 녹여낸 시편이 여럿이다. ‘決意(결의)의 노래’ ‘슈샨보오이’ 등 주로 1970년대 쓰인 작품. ‘슈샨보오이’는 ‘shoeshine boy(구두닦이 소년)’의 옛 표기다. 방민호 교수는 “그동안 발표된 박목월의 시가 자기 내면을 응축시킨 상태였다면, 새로 발견한 시에는 그 밑에 흐르는 내면을 깊이 있게 포착한 경우가 많다”며 “‘슈샨보오이’는 시적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박목월의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는 시”라고 했다. 우정권 교수는 “박목월이 시대적 상황과 거리가 먼 시인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박목월 미공개 시 '슈샨보오이'(1)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박목월 미공개 시 '슈샨보오이'(2)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박목월 미공개 시 '슈샨보오이'(3)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박목월 미공개 시 '슈샨보오이'(4)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고향과 타향’은 자연과 더불어 박목월 시 세계의 줄기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자랐고 대구를 거쳐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 익숙한 소재도 새롭게 표현했다. ‘十二月 十日(십이월 십일)’에 등장하는 ‘무너지는 눈자락에 눈발’에 대해 유성호 교수는 “정적인 자연을 작품에 그리는 박목월 시에선 잘 나오지 않는 표현”이라고 했다. ‘龍舌蘭(용설란)’은 “고향에 가도 고적하고 타향에 와서도 고향을 발견하는 이중성을 지닌 시”라고 했다. 30여 편은 동시. 박덕규 교수는 “동시 15~20편은 박목월의 평균작 또는 그 이상 수준이다. 동시 문학계에서도 맨 앞쪽에 위치하는 시인임이 확인된다”고 했다. 형식적으로 짧은 그간 시들과 달리, 장시도 여럿 발견됐다.

이번 작업을 바탕으로 책 발행과 시 낭송회, 뮤지컬과 영화 등 제2의 창작이 계획돼 있다. 미공개 시 발표에 대한 박목월의 예상 반응을 묻는 질문에, 박동규 교수는 “‘뭐하러했노?’ 그러실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들어서 겁도 난다”고 했다. “박목월 시인은 해방 이후 암흑기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았다는 걸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생애가 시로 얽히지 않은 적이 없단 걸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박목월 미공개 시 '결의의 노래'(1)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박목월 미공개 시 '결의의 노래'(2)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박목월 미공개 시 '결의의 노래'(3) /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조선일보 이영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