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단맛은 끝났다…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 행복
입력 2023.12.12 00:40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는가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은 “국민의 생활과 행복을 돌보는 일은 좋은 정부의 진정한 목적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유엔이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 2023’(World Happiness Report 2023)은 서문에서 “국가의 성공은 국민 행복도에 의해 평가돼야 하며, 국민 행복이 각국 정부 운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행복을 기준으로 평가된 우리나라 모습은 어떨까. 올해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행복 수준은 세계 57위를 기록해 2013년 41위에서 크게 추락했다. 평가점수는 2013년 6.27에서 2023년 5.94로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에 있다.
한국인 행복도, OECD 최하위권
“나는 행복” 57%, 장기적 하락
지나친 경쟁, 부의 편중 등 원인
MZ세대의 좌절감 더욱 깊어져
사회 갈등 통합할 리더십 절실
차별과 불신 분위기 걷어내야
우리 국민 행복 수준 세계 57위
또한 세계적 마케팅 조사기관인 입소스가 발표하는 ‘글로벌 해피니스 2023’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행복하다는 응답자 비중은 57%로 조사대상 32개국 중 31위를 기록했다. 2011년 71%와 비교하면 무려 14% 포인트가 하락했다. 이런 국제적 조사 결과에 나타난 우리 국민의 행복상태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리 국민의 행복 수준은 소득 수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에 있으며, 더구나 행복도가 장기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래프 참조〉
신재민 기자
그렇다면 우리 국민 행복 수준이 절대적으로는 물론 상대적으로도 낮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봐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를 살펴보면, 1인당 국민소득(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 한국은 23위, 뉴질랜드는 24위로 비슷한 순위를 보인다. 그러나 행복도 종합 평가의 경우 뉴질랜드는 10위로 소득 순위 대비 14계단이나 높았다. 〈표 1〉
〈표 1〉 신재민 기자
반면 한국은 행복도 종합평가에서 57위로, 소득 순위 대비 무려 34계단이나 낮았다. 한국은 홍콩 다음으로 소득 순위 대비 행복도 순위의 하락이 큰 나라다. 핀란드의 경우 1인당 소득 순위는 17위이나 종합 행복도 평가에서는 단연 1위를 기록했다.
이권 개입, 패거리 문화의 부작용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 핀란드와 한국을 비교해 보면 행복도 평가의 6개 부문 중 건강 부문에서는 한국이 핀란드보다 더 높고, 소득수준의 차이는 미미했다. 하지만 부패 부문에서 한국은 핀란드의 30% 수준에 불과해 가장 큰 격차를 보인다. 〈표 2〉
〈표 2〉 신재민 기자
그다음으로 삶의 선택의 자유에서 한국은 핀란드의 56%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적 지원의 경우 한국은 핀란드의 75% 수준, 사회적 관용에서는 핀란드의 89%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중 부패 부문에서 큰 격차를 보이는 양상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2013년 국제 순위 46위였지만 2022년엔 31위로 향상하였다.
따라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부패 지수가 악화한 것은 뇌물 수수와 같은 금전적 부패가 아니라 권력과 이권을 둘러싼 각종 이익집단의 패거리 문화를 배경으로 한 불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해석된다. 전세 사기와 같은 사건도 이러한 인식에 한몫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삶의 선택의 자유에서 한국은 2013년 핀란드의 71% 수준에서 2023년 56%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 부분은 아마도 기성세대의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가치관과 입시제도의 압박감 등(일례로 의대 지원 선호 경향)에 대한 청년 세대의 거부감이 높아졌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집값 상승과 1인 가구의 불안
사회적 지원 항목에서 한국은 핀란드와 비교해 2013년 86% 수준에서 2023년 75%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 이유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MZ 세대의 사회 진출로 인한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즉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온 MZ 세대가 학자금 대출 상환 압박, 취업난, 주택가격 앙등, 경기침체 장기화 등 팍팍한 현실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적절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즉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증후군으로 대변되는 MZ 세대의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사회 행복도를 크게 떨어뜨렸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중이 전 연령대에 걸쳐 2010년 23.9%에서 2022년 34.5%로 높아지는 등 사회 구조가 크게 변화한 것도 행복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분배 측면에서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13년 0.385에서 2021년 0.333으로 낮아져 개선되었다. 그러나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2년 0.606으로 올라갔는데, 이렇게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富)의 불평등 정도가 높아진 것도 행복 수준을 하락시킨 요인으로 해석된다.
지난 5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영예를 차지한 핀란드의 국민이 행복한 이유에 대하여 핀란드 사회심리학자 프랑크 마텔라는 그 핵심을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거나 이웃과 비교하지 않으며, 생활의 편안함과 따뜻함을 이웃과 함께 하는 ‘휘게 라이프’(hygge life). 둘째, 자연의 혜택을 중시하는 태도. 셋째, 사회에 대한 높은 신뢰감이다.
핀란드와 부탄, 행복의 공통분모
세계에서 국민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국가는 부탄이다. 부탄은 불교를 근간으로 하여 17세기부터 국민의 행복 증진을 국가의 존재 이유로 설정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부탄 정부는 ‘총국민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Index)를 개발하여 현재 124개 항목을 관리하면서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역사와 문화의 차이에도 핀란드와 부탄의 국민이 행복한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 부탄은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이웃과 사회에 확산되어 나라 전체를 행복하게 한다는 행복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점은 앞서 인용한 핀란드 국민이 행복한 이유와 큰 흐름을 같이 한다. 즉 핀란드와 부탄의 국민이 행복한 이유는 나 자신과 이웃과 사회와 자연이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서 연결된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며, 이 공동체의 한 부분이 손상되거나 연결이 훼손되면 결국 나의 행복도 유지될 수 없다는 사회적 규범이 확고하게 국민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자원 배분 체계 수술해야
많은 국가가 경제성장에 목을 매고 있지만, 국민 행복의 증진을 도모하지 못하는 성장은 의미가 없다. 성장이란 것도 개발도상국 시기엔 성장률이 높지만, 선진국이 되고 나면 개도국 시절과 같은 높은 성장률을 구현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성장률을 올리는 것만으로 행복도를 높일 수는 없다.
국민 행복은 개인 건강·가정·일·사회적 신뢰·삶의 활력·자연 등이 유기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므로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단절과 경쟁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연결과 평안과 공존을 중시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국정 개혁과 사회 규범의 혁신이 추진되어야 한다.
국민 행복을 지향하는 국정 전환의 출발점은 현재의 이념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한 리더십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국정 최고지표를 성장이나 분배에서 행복으로 전환하고 국력과 국가 자원 배분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수술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저성장·양극화·고령화 삼중고
구체적으로는 재정개혁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 각종 구조개혁을 통해 이익집단의 적폐를 청산하고 공정성을 확립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교육개혁을 단행해 삶의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사회적 신뢰가 높아지고, 국민이 삶을 안전하게 여기게 된다. 특히 청년이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아야 결혼 기피, 저출산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대한민국은 저성장·양극화·고령화라는 고질적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 행복이 돌이키기 어려운 악순환 흐름에 빠질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60년 만에 빈곤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한 특별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수차례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국민의 합의와 단결로 극복한 경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정부가 행복 증진을 위한 역동성 발현에 절박하게 나서야 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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