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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강도보다 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행복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8. 9. 14:07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행복하다

[파워라이터] [17] 서은국 연세대 교수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사람은 서로에게 반사되는 빛으로 가장 행복해진다"며 "행복한 사회를 위해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지호 기자

 

입력 2023.08.09. 03:00업데이트 2023.08.09. 10:59
 
 
 
 
 
지난 1일 연구실에서 만난 서은국 연세대 교수. 그는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놀라는 게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 배려가 많지 않고 날 서 있다. 별것 아니지만 수많은 불쾌가 누적되면 곪아 터진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행복의 기원’(2014) 저자 서은국(57)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난 지난 1일 연구실은 푹푹 쪘다. 열린 창으로 밀어닥치는 폭염 열기에 정신이 아득한데 “더워서 생기는 불쾌감은 생존을 위해 조치를 취하라는 뇌의 신호”라고 서 교수가 말했다. 이 당혹스러운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창문부터 닫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에 열기는 가라앉고, 열정적인 ‘행복 심리학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즐거워졌다.

 

만약 누군가 실내 온도는 그대로 둔 채 ‘마음가짐’을 바꿔 불쾌감을 행복감으로 바꿔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서 교수는 “이게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긍정 심리학 책들이 제시하는 행복의 방법”이라며 “하지만 행복은 앉아서 ‘감사 일기’를 쓰거나 ‘명상’ ‘비움’을 한다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불편한 환경은 바꾸고 행복감을 주는 행동을 자주 하는 것. 이것만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행복해지는 방법이에요.”

 

그는 심리학 분야에서 행복 연구를 선도한 주역 중 한 명이다. 철학 영역에서 주로 다뤄온 행복을 과학적으로 해부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30년 전 현장에 있었다. 미국의 행복 연구 선구자인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교수 밑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주목받는 논문들을 써 스탠퍼드대 등 17개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행복 연구 원조집’에서 ‘주방일’을 한 격”이라며 겸손해했다.

 

10년 전 출간된 ‘행복의 기원’은 행복에 대한 심리학 연구를 쉽게 풀어낸 대중서다. 행복의 ‘과학책 버전’인 셈이다. 12만 부 넘게 팔렸고 해마다 1만 부 가까이 팔린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같은 내용은 자주 인용돼 익숙하다. 그의 책에서 행복은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행동을 지속하도록 뇌가 주는 보상이 행복감이라는 설명엔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다. 강아지에게 ‘손 줘’를 훈련시킬 때 주는 ‘간식’ 같은 역할이다. 행복해지려면 간식이 나오는 ‘행동’과 ‘경험’을 자주 하면 된다는 것. 이 보상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극대화된다. 그는 “행복에 대한 일반인 인식이, 과학적으로 연구된 행복과 너무 다른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그럴 듯해 보이는 것들을 권하는 ‘돈벌이’ 심리학 책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고리를 끊고 싶어 썼다”고 말했다. “행복을 거창하게 포장하면 정작 핵심을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행복의 기원' 저자 서은국 교수./김지호 기자

 

그는 미국 교수 생활을 뒤로 하고 2003년 모교인 연세대로 돌아왔는데, 그 이유가 행복 연구자답다. “좋아하는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나라에서 죽고 싶지 않았고, 친구들도 한국에 있어 내 행복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에게 사회과학 연구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기도 했다. 책 집필은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예를 찾느라 논문 쓰는 것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할 말이 없는데 억지로 쓰고 싶진 않아서” 이후 후속작은 안 썼다. 그러다 최근 새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제는 ‘권태’다. “어느덧 행복이라는 주제가 무대의 뒷문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다”며 “물질이든 시간이든 남아돌아 답답함을 느끼는 요즘은 권태가 보이지 않는 행동의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고 했다.

 

서 교수는 요즘 한국 사회를 “지옥으로 가는 길” 같다고 했다. 흉악 범죄만이 아니라 일상 속 “잦은 불쾌가 누적돼 곪아 터지는” 상태라는 것. 모두 ‘자기 권리’만 외치기 때문이다.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는 뷔페에서 초코 아이스크림 두 개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개가 남아있고, 내 뒤에 줄 선 사람이 한 명이라면 어떤 맛을 택할까. 그가 참여한 이 최근 연구에서 초코를 골라 모르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는 배려를 하는 숫자는 한국이 거의 꼴찌였다. 그는 “사회가 와해된 느낌”이라며 “행복해지려면 서로 조력해야 한다”고 했다. “내 집단만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계단에서,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서로 행복 신호를 켜는 작은 기쁨을 나눠야 합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반사되는 빛으로 가장 행복해집니다”.

 

[서은국이 말하는 행복]

 

사람들과 관계 맺어야 행복

 

행복에도 유전이 영향을 미친다. 타고나길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유리하다. 겁내지 않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행복의 비’에 자신을 적시기 때문이다. 사람에서 얻는 행복만큼이나 불행함도 크게 느끼는 이들이 내향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비를 맞으러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정 지향’과 행복은 ‘물과 기름’. 행복은 움직여야 생긴다.

 

대부분은 이미 행복하다

 

하지만 내향인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불행함을 ‘병’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게 겪는 사람은 100명 중 1~2명 정도다. 이미 대부분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 등의 ‘행복 마케팅’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잘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의 행복은 축구 보기, 사람들과 탕수육 먹기, 운전하기 등 사소한 것들에서 나온다. 행복을 거창한 과업으로 생각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