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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위로 / 고 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20. 15:47

쓸쓸한 위로

 

고 영

 

 

사내의 접힌 윗몸을 일으켜 세우자

병상 위에 남아 있던 온기도 따라 일어선다

홑이불 속에 묻어두었던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고통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몸의 친절인가

몸속에서 조금씩 소멸해가는 시간을

자신의 몸으로 확인하는 건 또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수술실로 실려 가는 저 사내에게

가습기가 길고 긴 숨을 대신 몰아쉰다

복도 의자 위 마른 꽃다발 속에서

파리 한 마리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손등에 얹힌 사내의 눈빛이 아직 따뜻하다

젠장, 수술실 앞에선 남겨진 자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진정한 위로는 신의 영역 아니던가요

 

더 이상 함께 가지 못하고 헤어질 때 보내야 하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중 더 먹먹해지는 경우는 대게 보내야 하는 남겨진 사람입니다. 떠나는 사람은 이미 오랜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해왔거나 포기하고 마음을 비웠거나 정리된 쪽이지만, 남겨진 사람은 그 때부터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여기는 수술실 앞, 도리어 떠나는 자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환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더 이상 배웅 할 수 없는 막다른 “수술실 앞에선 남겨진 자가 / 오히려 위로를 받는”아이러니한 순간을 맞습니다. “거추장스러운 몸의 친절”과 “몸속에서 조금씩 소멸해가는 시간”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남겨진 자의 수술대로 보내지는 환자에 대한 위로가 보류되면 “길고 긴 숨을 대신 몰아”쉬던 병실의 가습기도 그 때까지 길고 긴 숨을 보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입니까. 진정한 위로는 신의 영역 아니던가요. 형식적 말의 잔치가 아무 의미 없이 교환되는 세상에서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발바닥을 향하여 무슨 말로 위로 할 수 있을까요. 그저 침묵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