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km 폐교로드③]
"학교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 노인회가 무덤처럼 지키는 폐교
입력 2023.01.21 05:00
업데이트 2023.01.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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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에 있던 속초초 좌운분교. 2021년 3월 폐교 후 마을 노인회가 관리한다. 김태윤 기자
“우리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난 게 5년도 더 됐어요. 이러니 학교가 없어질 수밖에….”
지난해 10월 말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좌운리에서 만난 김성기 노인회장은 모교인 속초초등학교 좌운분교(옛 좌운초) 운동장에 세워진 폐교 안내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내판에 적힌 폐교 사유는 ‘학생 수 감소’였다.
이 학교는 개교 87년 만이 2021년 3월 문을 닫았다. 6학년 두 명이 졸업하고 홀로 남겨진 5학년 여학생은 속초초 본교로 전학했다. 폐교 건물과 운동장은 마을 노인회가 관리한다. 여름엔 운동장 뒤편에 콩을 심었다고 했다. 이날 3시간여 동안 좌운1‧2리에 머물렀지만,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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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한 속초초 좌운분교에 있는 이승복 동상. 김태윤 기자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
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문은 10여 년 전부터 돌았다. 좌운초 22회 졸업생인 김 회장은 “2008년에 분교가 될 때부터 폐교 얘기가 나왔다”며 “당시 다니던 애들이 20명 남짓이었고, 폐교 직전엔 3명이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전교생이 550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은 마을 전체에 어린아이가 세 명뿐”이라며 “지난 30년간 말릴 새도 없이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났고 결국 학교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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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 옆에 있던 노인은 “지방 소멸이라면서 산부인과가 없다느니, 소아과가 없다느니 떠드는데, 지방에서 정말로 심각한 것은 폐교”라며 “산부인과가 없으면 도시에 가서 낳고 돌아오면 되지만,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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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에 있던 속초초 월운분교. 학생 수 감소로 지난해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40년 새 홍천군에서 56개 학교 문 닫아
지난 40년 새 홍천에선 5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현재 홍천군 관내에 있는 초‧중‧고(46곳)보다 많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폐교 도미노’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엔 내촌초 동창분교가, 지난해에 속초초 월운분교가 폐교됐다. 같은 날 찾은 두 폐교 인근은 한적했다. 운동장은 수풀만 무성한 채 스산했다. 인적 없던 동창분교 앞 논길에서 만난 한 노인은 “산지 개발을 하든, 농토 개발을 하든 젊은이들이 올 수 있게 뭐라도 해야 했는데 손 놓고 있다가 이 꼴이 됐다”고 말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는 시골 노인의 말이 깊고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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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모곡초.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고, 올해는 두 명이 입학 예정이다. 김태윤 기자
홍천 소재 초교 15곳, 올해 신입생 5명 이하
홍천엔 교문이 절반쯤 닫힌 학교도 적지 않다. 영귀미면에서 20여km 떨어진 서면에 있는 모곡초. 이 학교는 지난해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었다. 1학년과 6학년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신입생 두 명이 입학 예정이지만 전교생은 10명에 불과하다. 모곡초 앞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누군가 귀농‧귀촌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폐교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같은 서면에 있는 한서초 역시 지난해 입학생이 없었다가, 올해 병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 4명이 입학한다. 올해 기준 전교생은 1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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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한서초.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다. 김태윤 기자
홍천교육지원청에 따르면, 홍천에 있는 초등학교 27곳 중 전교생이 30명 이하인 학교는 12곳이다. 이중 강원도교육청이 정한 통폐합 기준(본교 10명, 분교 5명 이하)에 해당하는 학교는 4곳이다. 중앙일보가 도 교육청에서 받은 ‘2023년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 점검’ 자료에 따르면, 올해 홍천 소재 초등학교 중 절반이 넘는 15곳은 신입생이 5명 이하다. 삼생초(서석면)와 반곡초(서면)는 입학생이 한 명뿐이다. 이를 포함해 홍천군 전체의 올해 초등학교 진학 예정자는 375명. 서울 소재 초등학교 평균 학생 수(658명, 2021년 기준)의 절반을 조금 웃돈다.
홍천=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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