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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산산조각 / 정호승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2. 26. 16:35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오늘은 내일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깨진다는 건 그것이 그릇이던 관계든 꿈이던 슬픈 일입니다. 다만 어떤 것은 깨져도 잠시 슬프고, 어떤 것은 평생을 두고 끈덕지게 통증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본디 슬픔은 기대와 소망, 다르게는 집착이 근원이 됩니다.

법정스님은 “종이 깨어져서 종소리가 깨어져도 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깨진 종일지라도 소리를 내는 한 종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못나도 못난 그대로 나 자신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권순진 시인의 산산조각 해설 중)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깨어져 슬픔이 극에 달했을 지라도 오늘은 내일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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