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길 / 조순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17. 11:24

 

조순희

 

 

한 번 밟혔는데 두 번은 못 밟힐까

차곡차곡 쌓인 발자국이

끝내 길이 되었구나

 

육중한 발바닥의 무게로

짓밟힐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풀아

갈라진 틈 사이로 새살 돋는 잎들아

 

가던 길,

담담히 가라

 

 

 

끊임없이 자국을 남기다 보면 길이 되는 것

 

약초를 캐기 위하여 산을 다니다 보면 등산로 아닌 숲속으로 잘 표시나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고, 저만이 아는 약초꾼의 길이기도 하고, 더러는 바람의 길이기도 하겠지요. 어떤 길이던 길은 부단한 반복의 결과입니다. 누군가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국을 남기다 보면 길이 되는 것이지요. “차곡차곡 쌓인 발자국이 / 끝내 길이 되”는 것입니다.

 

부는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밟혀도 다시 싹을 올리는 잡초의 질긴 삶 또한 자기만의 삶의 길이라고 우리는 입을 모아 얘기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에 관계된 이야기라면 어떻겠습니까. 순응이라는 것은 포기와는 다릅니다. 이길 수 없어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는 감당 할 수 있어서 받아내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단단한 삶이 되는 것을 알기에 “가던 길, / 담담히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부탁컨대 지지는 마십시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담담하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밟히면서도 담담하게 손 내밀 줄 알아야 비로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모품 / 정 숙  (0) 2023.01.25
마늘종 / 정명순  (0) 2023.01.20
못 / 정윤천  (0) 2023.01.03
산산조각 / 정호승  (0) 2022.12.26
새들에 대한 오해 / 진 란  (0)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