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알 것 같아
장진영
망해본께 알겠더라
쫄딱 망해본께
물맛이고
술맛이고
글맛이고
사람 냄새 조금 더 알겠더라
바닥 냄새가 징하게도 좋더라
겸손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바닥의 맛
사실 바닥이란 건 양파 같아서, 바닥을 들춰내면 또 다른 바닥이 나오고, 또 들춰내면 다른 바닥이 보입니다. 끝까지 파고들면 지구 반대쪽이 나오지 않을까요. 바닥은 결코 바닥이 아닌 어떤 것의 지붕이기도 하지만, 바닥의 맛을 보면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길 희망합니다.
그럼에도 정말 쫄딱 망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 안다고 하는 사람 말고 “조금” 안다고 하는 겸손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바닥의 맛 말입니다. 지갑의 등짝이 붙어버린 경험도 없이 비운다고 허풍 떠는 사람의 가식적인 언어유희 말고, 뱃가죽이 등에 붙어 숨을 쉴 때 마다 피리소리가 나는 사람이 핥아 본 바닥의 맛 말입니다.
오늘 하루쯤은 “망해본께 알겠더라 / 쫄딱 망해본께” “사람 냄새 조금 더 알겠더라 / 바닥 냄새가 징하게도 좋”다고 눙치는 허공 같은 바닥의 풍경 앞에 하루 쯤 나를 던져놓고 지난 시간을 반추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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