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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낫한 “나의 유골을 걷기 명상의 길에 뿌려달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2. 10. 10:21

틱 낫한 “나의 유골을 걷기 명상의 길에 뿌려달라.”

중앙일보

입력 2022.02.10 00:37

 

베트남 사람에게 “어떤 나라가 가장 두렵나?”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답이 똑같다. 미국이 아니다. 중국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긴 역사 속에서 중국과 숱한 전쟁을 치렀다. 『삼국지』에서 유비 사후에 제갈 공명이 정벌했다고 나오는 남만(南蠻, 남쪽 오랑캐란 뜻)이 지금의 베트남 땅이다. ‘월남(越南)’이란 명칭도 고대 중국에 있던 월(越)나라의 남쪽이란 뜻이다. ‘베트남’은 ‘월남’의 현지어 발음이다. 기원전 4세기에 월나라가 멸망하자, 남쪽으로 이주한 월나라 부족의 일부가 베트남 사람이 됐다. 기원전 111년에 한(漢)무제에게정복당한 뒤 무려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인데도 문화가 독특하다. 저변에는 북방 유교 문화가 강하게 깔려 있고, 동남아 국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유불선(儒佛仙)이 공존한다. 불교 역시 해양이 아니라 대륙에서 들어온 중국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금도 베트남에는 남방 불교와 북방 불교가 함께 숨을 쉰다.

틱 낫한 스님이 프랑스 플럼 빌리지에서 사람들과 함께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지 플럼 빌리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선(禪)불교의 전통은 베트남에도 있다. 6세기 후반에 남인도의 바라문 출신인 비니타루치가 처음으로 베트남에 선(禪)을 전했다. 그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먼저 건너갔다. 중국 선불교를 처음 연 초조(初祖) 달마 대사의 법맥을 이은 손자뻘 제자 삼조(三祖) 승찬 선사를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 비티나루치는 “그대는 속히 남쪽으로 내려가 제자를 가르치라”는 스승 승찬의 가르침을 따라 광저우를 거쳐 베트남으로 내려갔다.

 

지난달 21일 입적한 세계적인 명상 수도승 틱 낫한 스님은 베트남 출신이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불교 승려다. 지구촌의 현대인에게 일상 속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틱 낫한 스님은 유독 명상을 강조했다. 그가 베트남 선불교의 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북아시아에 내려오는 선불교의 역사적 전통을 공유하고, 이를 프랑스 플럼 빌리지에서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틱 낫한 스님이 1982년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세운 명상공동체의 이름은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다. 우리말로 하면 ‘자두 마을’이다. 베트남에는 산간 지역에 피는 자두꽃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틱 낫한 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베트남에는 노란 꽃이 피는 자두나무가 있다. 수명이 무척 길다. 오래되면 나무가 뒤틀린다. 내가 그 나무처럼 느껴진다”며 자두꽃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틱 낫한은 명상을 통해 모든 사람이 마음의 꽃을 활짝 피우길 소망한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플럼 빌리지’는 프랑스 떼제에 있는 그리스도교 초교파 수도공동체인 ‘떼제 공동체’와 함께 현대인들에게는 ‘영성의 오아시스’로 통한다.

 

틱 낫한 스님은 자신의 사후(死後)를 미리 당부한 적도 있다. 일종의 유언이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나를 위해 무덤이나 탑을 짓지 마라. 나를 화장해달라. 내 유골을 전 세계의 플럼 빌리지 수도원으로 가져와서 당신의 걷기 명상 길에 흩뿌려달라. 그렇게 하면 내가 매일 당신과 함께 걷기 명상을 할 수 있다.”

틱 낫한 스님이 명상 공동체의 도반들과 함께 걷기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플럼 빌리지]

 

 

그가 걸었던 수도자의 삶처럼 그의 유언도 맑디맑다. 자신을 화장한 유골을 걷기 명상의 길에 뿌려달라는 요청에서 틱 낫한의 깊은 지향이 읽힌다. 도대체 걷기 명상에 무엇이 숨어 있기에, 자신의 유해를 그 길에 뿌려달라고 말했을까. 틱 낫한이 생각한 걷기란 대체 무엇이고, 명상이란 과연 어떤 걸까.

 

틱 낫한은 먼저 걷기를 이렇게 이해하라고 했다. “걸음을 걷는 것은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내미는 단순한 동작이다. 그런데 그게 귀찮거나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시간을 줄인답시고 가까운 거리임에도 차를 몰고 간다.” 우리의 마음이 급해서다. 틱 낫한은 오히려 “걷기를 통해 편안함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바쁜 까닭에 그걸 놓친다고 했다.

 

그건 비단 걷기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삶에서 딛는 걸음걸이도 마찬가지다. 바쁜 마음과 바쁜 걸음 탓에 우리는 삶의 순간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우리에게 틱 낫한은 “우리가 행복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그것들로 지구별은 꽉 차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틱 낫한 스님이 플럼 빌리지를 찾아온 어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플럼 빌리지]

 

 

심지어 틱 낫한 스님은 우리에게 “왜 무덤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가?”라고 되물었다. 우리의 마지막 도착지는 무덤인데, 왜 그리로 가는 길을 서두르며 사느냐고 반문한다. 육신의 종착지는 무덤이다. 삶은 때가 되면 소멸하게 마련이다. 그럼 어떡해야 서두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틱 낫한은 이렇게 내놓았다. “지금 이 순간에 숨 쉬고 있는 삶을 향해 걸음을 옮겨라.”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금 이 순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대체 무슨 뜻일까. 틱 낫한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한다. 계획과 망상에 사로잡혀 마음이 몸을 떠나 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나의 몸은 지금 이곳에 있는데, 나의 마음은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곳에 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틱 낫한은 몸도 마음도 함께 있어야 할 곳, ‘지금 여기’를 강조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함께 있으라고 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틱 낫한은 “너는 이미 기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에 우리의 존재를 빗댔다. “은하수는 ‘나는 은하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은하수로 있다. 현실에서는 삶 자체가 경이로운 현실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반영하는 맑은 눈으로 이렇게 현존하는 우리가 바로 놀라운 현실이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지지고 볶는 우리의 일상이 최고의 선방이요, 수도원입니다. 일상의 교실에서 길어올린 너와 나의 지혜를 나눕니다.

www.joongang.co.kr

 

백성호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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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낫한 스님은 종종 서예를 했다. 종이에 간단히 쓴 자신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걸 좋아했다. [사진 플럼 빌리지]

 

틱 낫한 스님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화장한 나의 유골을 걷기 명상의 길에 뿌려달라”는 그의 요청에는 초대장이 담겨 있다. 과거와 미래를 향해서만 흐르던 우리의 마음이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흐르게끔, 그걸 통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경이로운 우리 각자의 삶에 눈을 떠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맑은 눈을 가져보라고 보내는 팃 낫한의 초대장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두 마리 토끼 택한 틱 낫한
 
 
틱 낫한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고도(古都)인 후에의 뜨 히우 사원에서 출가했다. 젊은 틱 낫한은 사이공의 대학에서 불교학이 아닌 일반 학문을 전공했다. 베트남에서 자전거를 탄 최초 6명의 승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만큼 세상과 소통하고,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절집에서는 두 의견이 충돌했다. 승려의 본분인 참선 수행과 세상을 향한 사회참여, 둘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거셌다. 그때 틱 낫한은 두 가지를 모두 선택했다. 그렇게 개인의 내면적 평화와 세상의 사회적 평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좇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틱 낫한에게는 그게 서로 다른 토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왼쪽) 목사는 틱 낫한 스님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사진 플럼 빌리지]

 

조국에서 추방된 틱 낫한은 39년간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추천으로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해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아 수상은 불발됐다. 82년 프랑스에 플럼 빌리지를 세워 현대인에게 명상을 전했다. 2005년이 돼서야 베트남으로 돌아간 틱 낫한은 지난달 21일 후에의 불교 사원에서 입적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