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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사냥 실패한 늑대, 원점서 다시 뒤쫓아 성공률 높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1. 24. 00:05

먹이 사냥 실패한 늑대, 원점서 다시 뒤쫓아 성공률 높여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02

업데이트 2021.11.20 00:08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김이랑 kim.yirang@joins.com

세상에는 좋은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가 있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출근 첫 날 알 수도 있다. 요즘은 도서관처럼 매일 다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지금도 자기 자리가 있다.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이나 경력 직원들도 출근 첫 날 자리를 배정받는다. 자리에 앉은 이들은 주변에 자신을 알리면서 일할 체제를 갖춘다. 노트북의 네트워크 설정 같은 작업을 하고, 모르는 건 옆 사람에게 묻거나 담당부서에 연락한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훌쩍 지나간다. 이도 모자라 다음날까지 이리저리 헤매야 할 때도 있다.

회사 경쟁력, 첫인상서 알 수 있어

이와는 다른 회사도 있다. 자리에 앉으면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노트북을 켜서 몇 가지만 해결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고 궁금한 것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까지 책상에 놓여 있다. 얼굴 알리고 상황 파악하면 점심시간 후에는 일을 시작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 쪽이 좋을 회사일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직 경험자에게 꽤 많이 물었는데 그들의 경험도 같았다. 대개 출근 첫 날 회사의 실제 경쟁력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곧바로 일할 수 있게 준비해 놓는 게 어려울까? 그리 어렵지 않다. 담당자가 조금만 신경 쓰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래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하겠는가.

하지만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일면이 그 회사의 문화나 생산성, 더 나아가서는 미래를 알려주기도 한다. 첫날부터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회사는 다른 일에서도 그렇게 하니 말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일도 잘 하니 눈에 보이는 일은 얼마나 잘 하겠는가. 구성원들이 시작을 잘 하게끔 하는, 그래서 조직 전체가 시작을 잘 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요즘처럼 불확실성 속의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 그렇다. 한 번 삐끗하는 순간 아득하게 뒤처지기 쉬운 까닭이다. ‘시작이 반’에서 점점 중요성이 더해가는 이유다. 단순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고자 했던 일이 제대로 안된, 그러니까 실패도 시작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정말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안 되는 일은 어디서나 일어난다. 어떻게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여기서 좋은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갈린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이야?” 좋은 회사는 다르다. “고생했어요. 좀 쉬었다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고 뭘 할 수 있을 지도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을 듣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어떨까? 그 일을 계속하든 다른 일을 하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켜보는 다른 구성원들의 마음에도 깊이 각인된다. 언젠가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 다르니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고, 결국 회사의 미래 또한 그렇게 된다.

하려던 일이 안됐을 때 어떻게 시작하는가는 자연에서도 능력의 원천이다. 유라시아와 북미 대륙에서 늑대는 인간의 영역이 요즘처럼 넓어지기 전까지 생태계 최고의 존재였다. 얼마나 능력이 뛰어났는지 이들과 같은 영역에 살던 유목민들이 숭배할 정도였다. 거대 제국을 이뤘던 로마와 몽골이 자신의 시조를 늑대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늑대를 거의 볼 일이 없는 농경 사회에서는 ‘늑대=나쁜 사람’인데 정작 같이 사는 유목 사회는 존경한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늑대, 중간쯤서 대충 재도전 안 해

늑대에게도 먹고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난다 긴다 하는 늑대 몇 마리가 온 힘을 다 했는데도 사슴 한 마리를 놓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쫓아도 성공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속에 서 있게 될 때가 수두룩하다. 이럴 때 늑대는 어떻게 할까? 둘 중 하나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힘을 아껴야 다음 사냥을 준비할 수 있는 까닭이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선택이다. 다른 결정이 흥미롭다. 어떤 늑대는 자신이 사냥을 시작했던 그 지점, 그러니까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추적을 시작한다. 늑대는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개코’의 원조 아닌가. 몇 시간 전 숲 속을 지나간 사슴이 남긴 냄새 분자 한 개도 맡을 수 있는 코를 내비게이션 삼아 희미한 단서를 신중하게 따라간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 그들이라고 귀찮고 힘들지 않을까?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중간 어디쯤에서 대충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 두 번 잘못하면 그나마 남은 기운을 소진해 다음 사냥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처음처럼 다시 시작한다. 힘들지만 신중한 시작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연말은 마무리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결과가 좋든 그렇지 않든 좋은 마무리가 좋은 시작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