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10년 공부 끝내게 한 절굿공이 가는 99살 노인
중앙일보
입력 2021.10.13 10:00
[더,오래] 구비구비 옛이야기(70)
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몇십 리 밖에서 선생 하나를 정해 학비와 옷, 양식도 다 보내줄 테니 자기 아이를 10년만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 아들이 선생 집에서 공부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팔 년쯤 지났을 때 아들은 집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한 번도 어머니를 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어머니께서 꼭 십 년을 채워 달라고 했지만, 네 공부를 보니 십 년 이상 배운 놈 같다. 알아서 해라” 하고 허락해 주었다.
아들이 집에 가서 마당으로 뛰어들며 “어머니!” 하고 불렀더니 방에서 베를 짜고 있던 어머니가 놀라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말도 없이 한창 짜나가고 있던 베를 가위로 뚝 끊어버렸다. 놀라 눈만 굴리고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네가 공부를 그만두고 온 것은 내가 베를 짜다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도로 가서 이 년을 채우고 오라고 하고는 방문을 닫아 버렸다.
이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는 한석봉 어머니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떡장수를 해 한석봉을 뒷바라지했다. 출가해 공부하던 석봉이 삼 년 만에 어머니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왔더니 어머니는 호롱불을 끄고 자신은 떡을 썰고 석봉은 글씨를 쓰게 했다. 결과는 석봉의 완패였고, 다시 돌아간 석봉은 십년공부를 채운 후 조선에서 제일가는 명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맹모단기(孟母斷機)’라는 사자성어로도 알려진, 맹자와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민담으로 전승되고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그리고 무엇보다 저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맹모단기(孟母斷機)’라는 사자성어로도 알려진, 맹자와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맹모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민담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겠다. 우리 민담에는 맹자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냥 나중에 이 아들이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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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보면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다거나 혹은 위대한 어머니가 위인을 키워낸다는 메시지에 주목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이 어머니들은 정말 위대하다. 선녀 따라 하늘 세상에 갔다가 엄마 보고 싶어 찾아온, 그러나 용마 위에서 땅으로 내려서면 안 된다는 조건을 갖고 왔던 아들에게 호박죽이라도 기어이 먹이려다 일을 그르친 어머니를 떠올려 보면 양극단의 모성이 비교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들들이 이룬 성취를 생각해 보았을 때, 십년공부를 제대로 채웠다는 데 결국 생각이 머문다. 이 이야기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내쫓는 데서 그저 끝나지 않고, 맹모단기 고사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장면이 덧붙어 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하루종일 쫄쫄 굶으며 먼 길을 걸어 집으로 갔지만, 그길로 쫓겨나온 아들은 그저 터덜터덜 다시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초분에 기대 쉬려는데, 어디선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한목소리가 “야야, 우리집에 오늘 저녁에 한림학사가 오셨다” 하니 옆에서 “어디서 오셨냐” 한다. 먼저 목소리가 “순창서 왔다. 그러니까 놀러 와라” 했더니 “뭐하러 가. 한림학사가 왔는데. 나 안 갈란다” 하는 것이었다. 귀신인지 뭔지 그렇게 두런두런하는 소리에 아들은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날을 새버렸다.
그러고는 또 길을 가는데 한 노인이 쇠로 만든 절굿공이를 갈고 있었다. 나이가 보통 많은 게 아닌 것 같아, 아들이 연세가 어찌 되시냐 물었더니 아흔아홉이라고 한다. “아니 근데 그 절굿공이는 뭐하려고 그렇게 갈고 계십니까” 물었더니 “아 이놈, 바늘 만들라고”라고 답했다.
아들이 노인의 말에 겁을 먹고는 선생 집에 갔더니 선생은 다시 올 줄 알았다며 이 년을 채우고 가라고 하였다. 아들이 남은 공부를 마저 채운 후 집에 돌아갔더니 어머니는 끊었던 베를 이어서 다시 짜기 시작했고, 아들은 나중에 높은 벼슬을 얻게 되었다.
경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삼베 짜기 기능 보유자.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베를 짠다는 것은 씨줄과 날줄을 한 올 한 올 엮어가며 형상을 갖추는 일이다. 중간에 한 올이라도 빠지거나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하면 옷을 지을 수 있는 재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 속의 어머니들이 베를 짜고 있었다는 것도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아들이 하루종일 쫄쫄 굶으면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에 갔지만 어머니는 맹물 한 잔 들이켤 여지도 없이 매몰차게 방문을 닫아걸었다. 아들은 속절없이 다시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길에 두 가지 경험을 한다. 하나는 무덤가에서 잠시 몸을 기대 쉬려다가 귀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한림학사’란 정확히 말하면 고려시대 한림원(翰林院)의 정4품 관직을 이르는 말인데, 민담 속에서 한림학사는 공부를 많이 해 학식이 높은 사람이 오를 수 있는 높은 관직을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처럼 등장한다. 제대로 공부해 크게 될 사람임을 귀신들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한순간 흔들림 때문에 더 필요한 공부를 채우지 못한다면, 동네 면장은 할지 몰라도 좀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언제 어느 때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게 그다음에 만난 아흔아홉 살 노인을 통해 드러난다. 이 아흔아홉 살 노인은 쇠로 만든 절굿공이를 갈아대고 있었다. 그걸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고 했다.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그 허망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절굿공이를 바늘이 되도록 갈아내려면 실제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걸 아흔아홉 살 노인은 왜 시도하고 있는 걸까. 바늘이 필요하면 적당한 크기의 쇳조각을 처음부터 찾으면 될 일이었을 텐데.
절차탁마(切磋琢磨)의 훌륭한 예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선명하고 아름다운 군자는 뼈나 상아를 잘라 줄로 간 것처럼, 또한 옥이나 돌을 쪼아 모래로 닦은 것처럼 빛나는 것 같다는 『시경(詩經)』의 구절은 이렇게 또 우리에게 떠올라 선연한 가르침을 준다. 더불어 내가 아직 무엇이 되지 못한 것은 10년 공부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정확하게 ‘10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닐 거다.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이 절차탁마의 큰 방해물이라는 뜻일 테고, 아흔아홉 살에도 절굿공이를 바늘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 될 때 오히려 우리는 더욱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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