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경북의 역사와 문화 명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3. 11. 17:00

안동 선비순례길·고운사 천년숲길·최초로 문화재가 된 죽령옛길…

경북의 역사와 문화 명소

이승규 기자

입력 2020.09.24 03:00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하면서 관광객들은 혼잡한 여행지보단 덜 알려진 숨은 명소를 찾아가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주목할 만한 유행으로 ‘숨은 명소 찾기’를 전망했다. 가족과 연인 등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혹은 나 홀로 숨어 있는 명소를 찾아 조용히 떠나보는 걷기 여행이 대세가 된 것이다.

경상북도에는 자연 명승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담긴 명소가 많다.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 푸른 파도가 치는 해안둘레길에서 물소리와 바람 소리, 산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조상들의 숨결을 더듬다 보면 코로나 우울증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절로 씻겨나가는 기분이 든다.

◇선비처럼 단아한 순례길

“선비가 아니라 신선 순례길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겠어요.”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인근 안동호(湖) 상류. ‘선성수상길’을 지나던 관광객이 탄성을 내질렀다. 선성수상길은 지난 2017년 준공된 ‘안동선비순례길’의 1코스인 선성현길 내에서 안동호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무다리(수상 데크)다. 수상길을 걷다 보니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데크를 타고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뙤약볕이 아무리 내리쬐어도 안동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앞에선 힘을 잃는다. 수상길 중간에는 모형 오르간과 책걸상, 간이 칠판 등 추억의 조형물도 있다. 과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옛 예안국민학교가 이 자리에 있었음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상쾌한 바람과 따스한 추억에 젖으며 신선처럼 호수 위를 거닐다 보면 현세의 번뇌가 남 일 같다.

안동호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무다리인 '선성수상길'. /경상북도 제공

안동·임하호 두 호수를 품은 안동시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린다. 꼿꼿한 선비 정신과 품격 높은 양반 문화의 자부심이 지역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안동선비순례길’이 탄생한 배경이다. 안동 북서부권에 있는 와룡면·예안면·도산면은 백두대간 줄기에 걸쳐 있고 낙동강 상류에서 안동댐이 시작하는 곳으로, 안동선비순례길이 이곳을 지난다. 9개 코스로 구성된 91.3㎞ 길이의 선비순례길 중에서도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1코스 ‘선성현길’이 가장 인기가 많다.

다채로운 역사·문화 콘텐츠가 9개 코스에 옹골차게 구성돼 있다는 점도 선비순례길의 매력이다. 마의태자에서 퇴계 이황, 민족시인 이육사에 이르기까지 선비순례길엔 수천 년의 역사가 가득하다. 퇴계 이황 선생이 몸소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퇴계종택, 농암종택, 고산정, 수졸당, 계상고택 등 지은 지 500년은 훌쩍 넘는 정자와 고택을 비롯해 육사 이원록의 고향마을을 가는 청포도길, 퇴계 이황선생의 도산 12곡 중 한 구절 ‘고인을 못 봬도 예던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의 기반이 된 ‘예던길’, 신라 멸망 당시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한 태자의 전설이 담긴 ‘마의태자길’ 등 굽이굽이 이야기가 얽혀 있는 9가지 명품 트레킹 코스가 준비된 안동의 선비순례길은 코로나 시대에 안성맞춤 여행길이었다.

◇산사(山寺)가 간직한 천 년 세월 속으로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있는 고운사는 통일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 대사가 지은 사찰이다. 원래 뜻은 높은 구름의 절(高雲寺)이라는 뜻이었지만 신라 말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누각인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한 뒤부터는 그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운사로 접어드는 ‘천년숲길’은 곱디고운 황톳길이다. 길 양쪽으로 높게 자란 소나무들이 터널을 만들고, 세월만큼 굵어지고 휘어진 나무들이 그윽한 길을 내준다. 솔향기를 깊이 마시며 느리게 천천히 15분을 걷다 보면 이름 그대로 고운 절집인 고운사에 다다를 수 있다.

 

고운사에는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비롯해 볼거리가 많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 등 다섯 개 시군의 60여 개 대소 사찰을 관장하는 큰 사찰이지만 입장료는 없다.

의성군에서 중앙·경부·대구부산 3개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1시간 반 정도 내려가면 청도군 운문면에 있는 운문사에 도착한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창건된 고찰인 운문사는 일찌기 원광국사가 세속오계를 만들고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청도 운문사 입구 1km 남짓 소나무 군락 사이의 솔바람길. /경상북도 제공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사찰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일주문(一柱門)이다. 산문을 들어서는 대문과 같은 일주문이 청도 운문사에는 없다. 세속의 찌든 때를 씻고 맑은 정신세계로 들어서는 일주문의 역할을 1km 남짓 소나무 군락의 ‘솔바람길’이 대신하고 있다.

웅장한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솔향 가득한 공기가 상쾌하게 폐를 적신다. 숨을 깊게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놓다 보면 어느새 운문사에 도착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마치 인사를 하듯 처진 소나무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500년 세월을 이겨낸 웅장한 소나무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가지를 땅에 내리고 있으니 그 앞에 서면 저절로 겸손한 마음이 생겨나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관광객도 있다.

◇최초로 문화재가 된 죽령 옛길

높이 689m 죽령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고갯길 중 가장 위쪽에 있다. 삼국시대인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년)에 죽죽(竹竹)장군이 길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던 시절이었다.

죽령은 문경의 새재, 김천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을 오가는 3대 관문이었다. 지금은 중앙고속도로 4.5km의 죽령 터널이 놓여 쉽게 오가지만,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나 장사를 하던 보부상들에겐 갖은 고초 끝에 넘어야 했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소백산국립공원 내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죽령 옛길. /경상북도 제공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0호인 ‘죽령 옛길’은 희방사에서 죽령고개까지 2.8km다. 소백산 주위의 경북·충북·강원 등 3개 도(道)와 영주시·봉화군·단양군·영월군 등 4개 시군을 이어가며 소백산 자락을 한 바퀴 두르는 12자락, 143km의 문화생태탐방로인 소백산 자락길 중 하나다.

옛길 정상에 도착하면 죽령주막이 있다. 주인이 채취한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과 직접 담근 된장·간장으로 만든 반찬 등 자연을 담은 음식이 잃었던 미각을 다시 깨워준다.

◇가을바람 느끼려면 해안둘레길로

가을 타는 마음에는 경북 동해안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닷바람이 제격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포항 ‘호미반도 둘레길’과 영덕 대게공원에서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65km의 ‘영덕 블루로드’를 걸으면서 가을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김천에는 조선 숙종 시절에 폐위된 인현왕후가 3년간 머물며 사색에 잠겼던 청암사와 수도산 자락의 ‘인현왕후길’이 있다 . 폐위와 복위를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현왕후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거닐었을지 생각해보며 길을 걷다 보면 절로 가을 감성에 젖어들게 된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원시림으로서 가장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울릉도 성인봉 '원시림길'은 코로나 시대의 걷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사진은 해질 무렵의 울릉 저동항. /경상북도 제공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원시림으로서 가장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울릉도 성인봉 ‘원시림길’과 경북 청송군·영양군·봉화군 강원도 영월군에 이어지는 ‘외씨버선길’도 코로나 시대의 걷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