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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경험을 바탕으로 / 유홍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9. 9. 17. 13:56

시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 경험을 바탕으로

유홍준

 

1. 삶에서 찾아라

 

안녕하십니까. 시를 쓰는 유홍준입니다.

저는 오늘, 여태 시를 써오면서 경험한 몇 가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제가 실제 아는 게 별 게 없어서이기도 하구요, 시중에 많은 이론서들이 나와 있지만 그것들이 시 쓰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또 그렇기도 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공장 노동자로 일할 때 등단을 했습니다. 하얀 종이를 만들던 제지공장 제지공이 저의 직업이었지요. 꽤 오랜 기간 그 일을 했는데요, 종이를 만들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남다른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종이공장 제지공인 시인! 나름 멋이 있지 않나요?(웃음)

 


순백의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쓴다는 건 두려움입니다. 인쇄소 같은 기계적인 시스템, 산업의 생산체제 하에서야 종이 위에 글자가 새겨지는 것이 무슨 두려움이겠습니까만 종이를 만드는 제지공으로서 그 종이 위에 시를 쓴다는 건 충분히 두려움일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톤, 수천 톤씩 쏟아지던 종이, 그건 누군가에게는 공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밝힌 이야기입니다. 저는 순백의 종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독극물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발암물질인 형광염료가 들어가야 하고, 그 종이를 오래 보전하기 위해서는 가성소다 즉 청산가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도, 우리의 시도 다 그렇다는 걸 저는 제지공장 체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저의 제지공장 노동자 경험은 그런 순백색 종이에 관한 것뿐이 아니라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통해 이 사회 속에서 힘없는 한 단독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절망, 울분까지를 맛보게 했지요.

그리고 간 곳이 장신병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돌아버렸냐고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직장을 구하다 구하다 조금은 기피 직업인 정신병원 직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만3년을 그 곳에서 일했는데요, 그곳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세상, 사회였습니다. 국가가 규모가 큰 집단이라면 광역시나 도는 그 다음이겠지요. 그런 것처럼 그곳 역시 작은 사회였습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으니 자연 서열을 정하고, 역할을 정하고, 저절로 그렇게 되더란 것입니다.

정신병원에서 제가 본 것은 바닥(?)입니다. 세상의 바닥, 사람의 바닥, 그 시절 선배 시인 누군가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 유홍준한테 공부를 너무 세게 시킨다.”

 

아무튼 저는 뭐 지금도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습니다만, 오늘 여러분께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러니까 시를 쓰며 사는 중에 경험한 여러 가지 일즐 중에서 시와 연관시켜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말씀드리기 위해서 두어 번의 직업, 직장 이야기를 들먹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 직업으로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로도 시와 연결시켜 시를 쓰고 시론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언제든지,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것과 시를 연결시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어디를 갈 때도, 텔레비전을 볼 때도, 술을 먹을 때도, 항상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중에서 시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써야 합니다.

 


2. 몸을 써라.

 

 

시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시의 기능이 그러할 뿐만 아니라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걸 참 잘 알았다 싶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을 다 주변에서 찾아서 썼으니까요. 쟁기를 만들 나무를 찾아 온 산을 돌아다닌 사람처럼 우리는 시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 나무를 보고“아, 저건우리 집 아래채 중방 지를 때 쓰면 되겠다!”하고 척 아는 게 중요합니다. 굵고 반듯하고 좋은 목재만으로 집이 안된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 두어야 합니다.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굵은 것부터 가느다란 것까지, 다양한 재료가 필요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 중엔 나무로 무얼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다탁이나 과반 같은 걸 주로 만드는데요, 거기엔 무엇보다 좋은 소재가 필요합니다. 좋은 소재엔 아름다운 문양과 독특한 결이 있습니다. 느티나무나 소나무, 회화나무, 산벚나무, 오래된 감나무 등이 그런 걸 만드는덴 좋은 소재입니다.

 

시 귀신도 그렇습니다만 나무귀신이 붙으면 아주 골치 아픕니다. 저 지난해엔 어느 시골 폐가에 들러 마룻장 몇 개를 뜯어 왔습니다. 그걸로 물고기 모양 과반 두 어 개를 만들었지요. 바짝 마를대로 마른 송판은 좋은 재료입니다. 간혹은 옹이 부분이 정확히 물고기 눈알이 되는, 나이테가 물고기의 옆선이 되는 신비를 만나기도 합니다. 시 쓰기도 그렇습니다. 간혹 내가 큰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불쑥 좋은 시가 써질 때가 있습니다.

 

몸을 써서 무얼 만드는 일은 글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습니다. 시골집 구들을 놓아보아도 좋고, 돌담을 앃아보아도 좋고, 황토를 척척 으개 발라가며 무쇠솥을 앉혀 보아도 좋습니다. 거기엔 어김없이 뿌듯하고 으젓한 성취가 있습니다.

제 고향 경남 산청에 있는 남사마을에서 진경산수 그리며 사는 이호신 화백의 집엘 갔더니 회화나무와 감나무 토막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땔감으로 쓸 것들이었지요. 그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몇 개를 차에 실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나무로 무얼 만드는 건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보다 소재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차를 몰고 시골길을 갈 때면 으레 둘레둘레 좋은 나무를 찾는 습성이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인터넷 카페 같은 델 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찍어서 올린 목공예 작품 사진들을 자주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다음에 나도 저렇게 만들어 봐야지’하고 머릿속에 꼭꼭 이미지를 눌러 놓습니다.

목공예 작품을 보면 거의 완벽하게 만든 사람의 성격이나 성정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독특하게 만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석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끈하게 빤질빤질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거칠게 툭 맺어버리는 사람이 있죠.

시를 쓰는 거나 나물 무얼 만드는 거나 다 똑 같다는 생각입니다. 찾아야 합니다. 눈여겨보면 우리 주면 여기저기엔 소재가 널려 있습니다. 다음엔, 그렇게 구한 소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나무마다 특성이 있고 성질이 있으므로 그걸 잘 알아야 합니다.

 

대번에 대들어 만들어보는 것보다 이래저래 궁굴리며 궁리를 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만들기 시작하면 세심해야 합니다. 자칫 한 번의 실수로 나무의 살점이 뭉툭 떨어져 날아가 아쉬워해 본 적이 저에게도 여러 번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 수정을 하면 되지만 말입니다.

 

무엇보다 나무로 무얼 만드는 일이 시 쓰기와 같은 것은 돈이 안 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돈 들여 소재를 구하고, 나무먼지 마셔가며 무얼 만들면 뭐 합니까.주변 사람들한테 거의 다 나눠줍니다. 그런데도 한 번 그 짓을 한 사람은 그만두지 못하고 또 그 짓을 하지요. 왜, 하여간 재밌으니까요.


나무속에 든 결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내 직장 근처에 농암이라는 호를 가진 초등학교 교장 출신 선생님이 계신데 뒤늦게 나무에 빠져서 서각도 하고 목선반도 하고 옻칠도 하고 그러고 지내십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어 죽겠답니다. 그거 참 좋은 일이지요. 저도 그 기분 잘 압니다. 그것은 삶을 호사스럽게 만드는 일 중 하나입니다. 돈 많이 안 들이고도요, 맞지요?

저는 시를 쓰는 일이 나무로 무얼 만드는 일보다 웃질도 아니고 , 시인이 목공예를 하는 사람보다 더 웃질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념무상, 나무로 무얼 만드는 일에도 한 가닥 경지가 있습니다. 시인이 뭐 그리 대단하고 시가 뭐 그리 대단한가? 글쎄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 한 평생, 남에게 크게 해 안 끼치고 제 좋아하는 일 하다 가면 그만이지요 뭐.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습니다. 몸을 써서 무엇을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3. 눈여겨 보고 귀담아 듣고 재구성해라

 

 

제가 직장으로 있는 곳은 하동군 북천이라는 곳입니다. 엄청 산골이지요. 겨울이 되면 산불조심 아저씨가 놀러를 오는데요. 그 양반 이야기 하는 거, 그거 잘 들으면 시가 있습니다. 그 양반 학력이 좀 많이 낮고 또 그곳이외에 딴 데를 가 보지를 거의 않았거든요. 그러니 온전히 그곳 사람인데요, 학력이 낮으면 낮을수록, 몸을 써서 살면 살수록, 머리로, 학습으로 여과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생짜배기 말을 내뱉는단 말이에요.

 

하루는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밤이 되도 바람이 그렇게 불었는데, 이튿날 이 양반이 찾아와서 뭐라는지 아세요. “아따, 어젯밤에 바람 참 많이 불데이, 옛말에 거 뭐라캤니라, 거, 거 저녁때가 되믄 바람이나 아(애)나 다 자니라 글캤는데!” 이러는거에요.

어때요. 재밌는 말 같이 않으세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엔 오랜 동안의 결험, 축적, 관찰이 들어 있거든요. 애기들도 저녁이 되면 거의 일찍 자요, 그죠? 바람도 마찬가지거든요. 오후에 불던 바람도 저녁이 되면 좀 자거든요. 경험, 축적, 관찰에서 나왔죠.

그리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인데 또 이러는거에요, “봄비 잦은 거 하고 제집(계집)통 큰 거는 몬 쓴다 캤다.” 농사 안 지어봐서 모르실지 모르겠는데 정확한 말이에요. 또 있어요. 산도라지 재배하는 거 이야기하다가 그러더군요, “나무 같은 거는 남의 그늘 밑에 되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 남의 그늘 밑에 되는건 사람뿐이다.”기가 막히지 않아요.

 

그렇죠. 울창한 나무숲엔 다른 식물이 거의 못 자라죠. 산림이 울창해지고 우리 산, 들에도 풀들이 거의 사라졌잖아요. 그런데 여기까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에요. 문제는 그 다음인데, 남의 그늘 밑에 되는건 사람 밖에 없다는 거예요.

저는 이 양반이 하는 말들을 채록만 해 놓으면 되요. 가능하면 이런 말이 자주 나오도록 만나면 슬슬 추임새를 넣고 그러지요. 그리고 생각하는거예요. 이 말을 어디다, 어느 곳에다 써 먹을까. 그때부터 고민하는 거지요. 잘 때도 고민하고, 운전할 때도 고민하고,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곳이 생길 때가 있어요. 제가 쓴 북천 연작 중엔 사실 그 양반이 한 애기가 더러더러 들어 있답니다.

 

경험으로,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것. 그리고 그 경험을 내 식으로 재구성 할 것. 시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직접성이 필요로 하는 장르이니까 여행을 하더라도 이걸 찾아야 해요. 이정록 시인 아시죠? 이정록 시인이 뭐라고 했어요. 시가 안 써지면 어머니한테 가면 된다고 했죠. 왜? 그 어머니가 평생 경험으로 살아온 몸말을 툭 툭 내뱉어주니까 얼른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그랬잖아요. 마찬가지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4. 끈질겨야 한다.

  

  

 

봄이 되면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고사리 꺾기’인데요. 제가 밥 벌어 먹고 사는 직장 바로 뒤가 산이고 고사리 밭이에요. 봄이 되면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하는 일이 고사리 꺾는 거에요. 진달래 꽃 밭 사이사이에 고사리가 올라오는데, 굵고 실해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고사리일 걸요, 북천 고사리가.(웃음) 시장에 가서 산 거, 도무지 그 맛이 안 나요. 맛이 달라요. 제가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진짜로 그래요. 외국시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데, 아니죠. 역시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시를 읽어야 진짜 맛을 느끼지요.

 


아무튼 그렇게 고사리를 꺾는데, 어느 날 불쑥 느껴지는 거에요. 아아, 고사리 걲는 거랑 시 쓰는 거랑 똑 같다!. 그래 이 이야기를 시 배우는 사람들한테 해 주면 되겠구나!

고사리 꺾으러 가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 거에요. 일단 어디로 갈 것인가가 중요하죠. 고사리 많이 나는 곳을 잘 알아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건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분제는 남보다 한 발짝 일찍 가야된다는 말이에요. 부지런해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푹 자면 안 되고 잠을 설쳐서라도 일찍 일어나 남보다 한 발짝 먼저 가야 해요. 그렇게 한 발짝 앞서 갔는데 고사리가 막 쫘악 깔렸어, 그 기분 아시잖아요. 흥분이 되죠. 신이 나는 거에요. 정신이 없죠. 정신없이 끊게 되어 있죠. 비가오고 나면 특히나 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해요.

 

고사리 꺾으러 가보면 그 사람 성격 다 나와요. 누군가는 꼼꼼히 차근차근 찾아 꺾는가 하면 누군가는 뭐 노루처럼 쏘다녀요. 여기 있던 사람이 벌써 저쪽 언덕에 가서 소릴 질러요. “어이, 거기 많이 있나. 왜 안 오노.” 견제하고, 불안해하고, 밟고 뭉개고 다니죠. 그런데 나중에 누가 더 많이 꺾죠? 네, 큰 차이 없어요. 비슷해요. 시도 그래요. 이 선생님한테 배우다가, 이 사람들하고 모임 하다가, 또 딴 데 더 좋은데 싶어서 가. 근데 별수 없죠. 거기서 거기에요. 문제는 항상 나에요.

고사리 찾는 건 설치면 안 돼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묘하게 숨어서 올라오는게 고사리에요. 희한해요. 분명히 앞에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런데도 거기 고사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앞에 사람이 썼지만 잘 찾아보면 또 쓸 게 있는 거에요. 더 큰 문제는 그 숨어 있는 고사리를 잘 찾아내는 눈이에요. 그게 중요하죠. 그 눈은 어떻게 길러져요.네, 많이 가서 꺾어보면 돼요. 자동으로 돼요. 이젠 완전히 다 꺾었다고 생각하지만 또 돌아보면 있는 거, 그게 시고 고사리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집, 직장, 길, 주변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고사리는 기생 죽은 넋이라고 해요, 왜냐.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올라와서? 아니에요. 자꾸 가고 싶어지기 때문이지요. 거 참 희한해요. 고사리는 한 번 꺾으러 가면 자꾸 꺾으러 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기생 죽은 넋이에요. 시도 그렇죠. 이게 참 뭔지, 한 번 시 맛을 본 사람은 못 잊어, 도 와, 맞죠, 이게 시예요. 고사리하고 똑 같죠. 글쎄 똑 같다니까.

산불조심 아저씨 말인데 글쎄 고사리가 인간한테 이런데요. 인간이 하도 꺾으러 오니까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 보자.” 라고요. 어때요, 여기에다 시를 갖다 대면, 이것도 똑 같죠. 그렇게 매일 꺾으러 가도 결국 사람이 못 이기듯이 시한테 어떻게 이겨. 못 이기죠. 사실 이런 대입, 비유, 대유들은 어디 고사리뿐이겠어요. 어디에나 해당이 되겠지요. 내가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어디에나 갖다 대면 거기에도 다 시론이 있을 거에요. 시론으로 맞아 떨어질 거에요.

고사리 이야기로 더 시 쓰기와 결부시켜 할 말이 있지만 이쯤 하고요, 다음 이야기를 할 게요.

 


5.인식이 남달라야 한다

    

 

 

지난해 가을이었어요, 순천대 문창과에 제가 수업을 나가잖아요. 가을인데 야외수업을 안 간다고 애들이 칭얼거리는 거예요. “야이 새끼들아. 너거 밖에 나가는 거 좋아하지도 안잖아. 가면 뭐해. 얼굴만 타지.” 했어요,

아무튼 멀리는 안 가고 매점에서 과자부스러기랑 음료수랑 사서 바로 강의실 앞 언덕으로 올라갔죠. 왜 도시 외곽에서 보면 산자락에 나 드신 어르신들이 채마밭을 만들어 조끔씩 조금씩 일궈놓고 부치고 하는 그런 데요.

 

이놈들이 야외수업을 하자고 하는데, 수업이라면 그냥 놀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거기서도 문학과 결부시켜 무얼 해야 되잖아요. 제가 생각이 있었죠.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 산자락에 나는 풀잎을 있는 대로 뜯어오는 거예요. 물론 생김새가 다 다른 걸로요. 그래서 가장 많은 풀잎을 뜯어오는 팀이 이기는 거죠. 여기에도 몇 가지 글쓰기에 해당되는 것들이 있어요.

생김새가 다른 풀잎들을 찾다가보면 우리가 맨날 보는 저 산에도 정말로 다양한, 갖기 다른 풀잎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것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 풀잎들의 이름과 특징을 알면 더 좋죠. 시는 그렇게 다양한 표정과 풍경들, 모습들을 많이 알면 알수록 좋은 거에요.

 

풀잎을 따 모으다 보면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내 손을 통해, 촉각을 통해 또 그것의 특성을 알 수 있어요. 그거 매우 중요해요. 시는 이론이나 그런 것보다는 감각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하여간 그날 순천대 애들과는 그 걸 하지는 않았고요. 두 번째 제가 생각한 거, 무덤에 올라가 보는 걸 했어요. ‘무덤(봉분)에 올라가 순천 시내 내려다보기’, ‘무덤에 올라가 노래 부르기’, 근데 아이들이 아무도 그걸 못해요. 안 하려고 해요. 왜? 사람을 묻은, 사람이 묻혀 있는 무덤에 어떻게 올라 가냐, 그거지요. 근데 왜 못 올라가요?

죽음은, 무덤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몰라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무덤은 그냥 형식일 뿐. 과연 사람이 무엇인가? 생명이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등등, 그 무덤 위에 올라가보면 그간의 내 고정관념이, 관습이, 인식이 다 무너지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거죠.

 

삶과 죽음, 이것에 관한 인식이 무너지고 나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가치관이 달라지죠. 모르겠어요. 저는 시에 있어서, 시 쓰기에 있어서 이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연 우리는 왜 무덤에 올라가는 걸 두려워 할까. 그건 뭘까, 이 질문에 관해서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면 무덤에 한 번 올라가 보시고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6. 그러나 끊임없이 읽어야 해

 

두서없이, 중언부언, 제 몇 가지 경험을 가지고 말

씀을 드렸는데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읽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해요. 일상 속에서 무얼 찾고, 몸을 쓰고, 재구성하고, 끈질기게 천착을 하여도 결국은 언어애 대한 반은, 감각이 중요해요.

감각은 어떻게 길러져요? 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똑 같아요. 자주 써야 해요. 운동선수도 마찬가지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연극배우도 마찬가지고, 다 마찬가지예요. 심지어는 소매치기도 마찬가지일 걸요.(웃음)

 

그리고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쫓아가기 위해서, 차별화를 가지기 위해서 더더욱 최근의 작품들을 읽어야 해요. 언어는 더더욱 예민해서 내가 조금만 놀아버리면, 다른 데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버리면 둔해져버려요. 안 읽고 쓴다는 말, 그거 다 거짓말이예요. 내가 시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언어ㅔ, 사물에, 현상에 반응하는거예요. 내가 쓰는게 아니라 언어 그 자체가, 시 그 자체가 쓰는거예요. 예민해지세요. 낮이나 밤이나, 무얷을 하건, 그렇게 예민해져 있을 필요가 있어요.

저는 지금 임실에 가서 여러분들을 만나면 들려줄 이야기를 구냥 두서없이 써 내려 가고 있어요. 근사하게 말고요. 그냥 진심을 다해 써 내려가는데, 퇴고도 없이, 그런데 이게 먹힐지, 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해야 할 지 어쩔지 모르겠네요.

아무쪼록 다들 건강하시고요, 불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 출생,1998년 『시와 반시』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저녁의 슬하』,『시선집 북천- 까마귀』가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이형기 문학상, 시작 문학상, 소월시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순천대와 경남과기대에 출강하며 이병주 문학관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이 글은『 온글 2015년 제 15집』 특집으로 게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