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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1. 24. 22:07

 

시간이 멈춘 섬… 눈앞엔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시장 구석구석에 옛 풍경을 그린 그림과 표어들… 북한이 내보내는 대남 방송이 생생히 들리는 강화 교동도
강처럼 폭 좁은 바다를 끼고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은 2.3㎞ 떨어져 있다.

입력 : 2016.11.24 04:00

연산군 유배지 강화 '교동도'

극적인 몰락이다. 최고 권력자는 하루 새 죄인(罪人)이 됐다. 1506년 음력 9월 2일이다. 전날까지 지존(至尊) 자리에 있던 그는 유배를 떠나며 말했다. "내게 큰 죄가 있는데 상(上·중종)의 덕을 입어 무사히 간다"고. 갓 쓰고 분홍빛 옷을 입었다. 허리띠를 두르지는 못했다.(중종실록)

교동대교 건너기 전 강화평화전망대에 들른다. 북녘 땅이 맨눈으로 환히 보인다. 가장 가까운 곳은 2.3㎞ 떨어져 있다. 대남 방송이 생생히 들린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교동대교 건너기 전 강화평화전망대에 들른다. 북녘 땅이 맨눈으로 환히 보인다. 가장 가까운 곳은 2.3㎞ 떨어져 있다. 대남 방송이 생생히 들린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쫓겨난 임금 연산군은 나라 서쪽 교동(喬桐)으로 갔다. 두 차례 배를 타야 이르는 곳이다. 궁궐 떠나 닷새 걸렸다. 경복궁 나와 연희궁에서 하루 묵었다. 김포에서 하루, 통진에서 또 하루 잠을 잤다. 배 타고 강화 가서 또 하루, 다시 배 타고 교동도 유배지에 도착했다.

지금은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2년 전 강화도를 잇는 다리(교동대교)가 놓여 배 탈 일도 없다. 예전 뱃길은 강화도 서북쪽 창후리 나루에서 교동도 남동쪽 월선포로 가는 바닷길이었다. 510년 전 몰락한 사나이도 이 길로 갔을 것이다. 나루에 내리면 인근에 섬 중심인 교동읍성이 있다. 화개산(259m) 아래다. 유배지는 산 반대편 기슭에 있다. 나루에 내려 다시 산을 넘거나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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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문루는 사라지고 홍예문과 성벽 일부가 남았다.

 

연산군은 가장 정통성 있는 국왕이었다. 개국 이래 임금의 첫 적장자(嫡長子)였다. 앞서 문종과 단종이 있었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종은 원래 대군(세종)의 아들이었고, 단종은 당초 세자(문종)의 후궁 소생이었다. 연산군은 임금(성종)의 적장자로 태어나 일곱 살 때 당당히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가 됐다. 예비 국왕 교육을 제대로 받은 첫 임금이었다. 그런 군주가 첫 폐위 임금이 됐으니 역사의 간지(奸智)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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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 재현한 연산군 유배 행렬 모습.

 

교동면사무소에서 화개산 등산로 따라 간다. 연산군 유배지가 이내 나타난다. 밀랍인형으로 소가 끄는 달구지에 갇힌 임금 모습을 재현했다. 분홍빛 옷을 입었다. 지나치게 큰 규모로 초가집을 짓고, 컴퓨터 글씨로 '연산군 유배지'라 새긴 비석을 세운 게 아쉽다. 유적지를 애써 재현한 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옛 흥취를 느낄 수 없다. 연산군은 유배지에서 두 달 만에(11월 6일) 죽는다. 실록은 사인(死因)을 병(病)이라 적었으나 너무 이른 죽음에 피살 의혹도 생겼다. 죽기 전 아내(폐비 신씨)가 보고 싶다 말했다 한다.

교동도는 민간인 통제 지역이다. 강처럼 폭 좁은 바다를 끼고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교동대교 건너기 전 길목에서 군인이 막아선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는다. 해병대 제3167부대장이 발급한 '임시 출입증'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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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 정상에서도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다.

 

북쪽을 조망할 장소는 세 곳이다. 교동도로 넘어가기 전 강화평화전망대에 들른다. 제적봉(制赤峰)이라 이름한 언덕에 전망대 건물을 세웠다. 이곳 역시 민간인 통제 지역이다. "실례지만 용무가 어떻게 되십니까?" 길목에서 해병이 건조한 어투로 묻는다. 전망대 간다고 하면 통과시켜 준다. 북한 땅이 맨눈으로 훤히 보인다. 가장 가까운 곳은 2.3㎞ 떨어져 있다. 교동도 화개산 정상에서도 북녘 땅이 가깝게 보인다. 30~40분 산행이면 정상에 오른다. 정면은 황해도 연백평야다. 무료 망원경을 설치했다. 낮은 집과 높은 탑 같은 구조물이 망원경 속에 잡힌다. 또 한 곳은 섬 서북쪽 끝에 있는 망향대다. 세 곳에서 모두 북한이 내보내는 대남 방송이 생생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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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대룡시장은 1960~70년대 풍경이다.

 

북한과 가까운 민간인 통제 지역인 까닭에 발전은 더뎠다. 교동 대룡시장은 1960~70년대에 멈춰 있는 듯했다. 6·25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온 주민들이 고향 연백시장과 비슷하게 만든 골목 시장이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낮은 집들이 이어져 있다. 담장에는 정겨운 그림을 그렸다. 옛날 뻥튀기 과자를 만드는 모습, 할머니가 손주에게 국수를 먹이는 그림이 정겹다. 옛 표어와 포스터도 그려 넣었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기생충 박멸하여 내 건강 내가 찾자' '너도나도 쥐잡아 100만석의 증산보자' '바른정치 바라거든 바른일꾼 바로뽑자!'…. 시장 구석구석에 옛 풍경을 그린 그림과 표어들이 정겹던 시절로 데려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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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 건물 담장에 그린 정겨운 벽화.

 

다시 연산군을 생각한다. 그는 시인이었다. 실록(연산군일기)에만 130편 시가 실려있다. 폐위 열흘 전에도 시를 지었다. '인생은 풀 이슬과 같아서(人生如草露)/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會合不多時)'(재위 12년 8월23일). 연산군은 두 구절 읊다가 눈물을 흘렸다. 옆에 따르던 애첩 장녹수와 전비가 따라 울자 그는 말했다. "설마 불의의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도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다가올 일을 미리 알았다는 말이 나왔다.

너무 늦지 않게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 민간인 통제 지역이어서 밤 12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통행이 제한된다.

지도

강화도와 교동도로 가는 48번 국도에는 역사 유적이 많다. 강화군청 인근 고려궁지와 철종 생가 용흥궁이 있다. 조금 더 가면 강화역사박물관·자연사박물관·고인돌공원이 한곳에 모여 있다. 강화평화전망대(032-930-7062)에는 북한 돈 등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입장료 2500원.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교동도 월선포로 가는 버스(교동70번·032-934-9105) 운영. 연산군 유배지는 추정지. 이 밖에 두 곳이 더 있다.

교동 대룡시장에서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쌍화차를 맛본다. 제일다방, 교동다방, 궁전다방이 있다. 잣·대추와 계란 노른자를 넣은 쌍화차 6000원. 대풍식당(032-932-4030)은 국밥과 냉면을 판다. 각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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