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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전남 화순 둔동마을의 마을 숲 ‘연둔 숲정이’를 이루고 있는 나무들에 막바지 단풍이 화려하게 불붙어 타오르고 있다. 화려한 가을이 지금 이렇게 남도를 건너가고 있다. |
세상의 일이 이리도 번잡스러운데 계절은 저 스스로 하루하루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올해 만추(滿秋)에 남도의 단풍색은 이리도 고운지요. 화르르 불붙어 저리도 강렬한 색감으로 맹렬하게 타오르는지요. 하나하나 켜서 든 사람들의 소망처럼, 그 소망이 물결을 이룬 빛나는 촛불처럼 말입니다.
단풍이 이제 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전남 화순으로 갑니다. 화순의 지석천과 동복천의 물줄기를 따라가면서 뜨겁게 달궈진 단풍잎이 차가운 강물로 낙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변에서는 늦가을 볕에 환하게 빛나는 갈대, 억새들과 마주 섰습니다. 바야흐로 찬란한 가을. 남도의 땅 위로 지금 한 해 중 가장 황홀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화순에는 그러나 계절의 아름다움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개혁을 꿈꾸며 뜨겁게 살다간 조선 중기의 문신 조광조가 유배돼 끝내 사약을 받았던 곳이 화순 땅이기도 하고, 도탄의 삶 속에서도 천불천탑을 세워 도래할 대동 세상을 꿈꿨다는 운주사도 여기 화순에 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벼슬을 훌훌 버리고 돌아온 이들이 세워 소요하던 그림 같은 정원도 있고,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깨우친다’던 철감선사 도윤의 자취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철감선사는 1000년 전에 권력자와 가진 자들에게 결탁했던 귀족불교에서 벗어나 ‘글을 깨치지 않은 무지렁이들도 마음을 다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며 뜨거운 혁신을 말했습니다. 그를 기리는 1000년 전의 아름다운 승탑이 그걸 증명합니다. 누군가 지고한 정성으로 세밀하게 빚어낸 탑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계절은 늘 순환하지만 그걸 가장 극적으로 느끼는 시간이 바로 늦가을입니다. 한때 무성했던 초록의 잎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집니다. 그리고 곧 겨울이 닥치겠지만 추위가 가고 봄이 되면 다시 훈김과 함께 온 세상은 약동의 기운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도래하지 않았어도 희망은 늘 미래입니다. 이제 늦가을이지만, 봄이 올 것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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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의 임대정 원림. 바위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그 아래에 두 개의 연못을 파고 운치 넘치는 정원으로 가꿔놓은 곳이다. 연꽃과 배롱나무꽃이 지고 없는 자리에 지금 단풍이 화려하다. 올해 임대정의 단풍은 어느 해보다 더 곱고 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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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숲정이를 화려하게 물들이다
전남 화순에서 최고의 가을 경관은 ‘주암호에서 동복호로 이어지는 동복천 일대에 다 모여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동복천의 짧은 물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가을의 정취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화순의 가을 정취를 대표하는 곳이라면 이론의 여지 없이 동복천을 끼고 있는 ‘화순적벽’이지만, 지난해 3월 개방한 이래 관람 인원수와 날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데다 올해 개방 시기가 27일까지라 일찌감치 예약이 찼다. 16일 현재 남은 표는 딱 13장. 여기서 화순적벽을 건너뛰기로 한 건 그래서다. 그럼에도 그다지 아쉽지 않은 건 동복천 일대에 못지않은 가을 경관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가을에 화순으로 가는 여행은 적벽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대도, 하나도 아쉽지 않은 여정이다.
붉고 노란 물감을 짜서 한데 섞어놓은 화가의 팔레트. 동복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동복면 연둔리 둔동마을의 ‘연둔 숲정이’ 단풍색이 꼭 그랬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 숲’을 일컫는 우리 말이다. 느티나무를 앞세운 거목 200여 그루로 가득한 숲정이는 둔동마을 앞의 동복천을 끼고 700m를 이어진다.
연둔 숲정이의 숲이 각별한 건 마을 사람들과 1500년의 시간을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숲정이의 단풍은 단풍나무처럼 선명한 핏빛의 색감은 아니다. 하지만 뒤틀린 거목의 가지와 은은한 중간색조의 단풍이 어우러지면서 묵직한 가을 색을 빚어낸다.
# 동복천 깊숙이 숨어있는 경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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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쌍봉사의 철감선사 부도 밑돌에 새겨진 구름 위의 사자 모습. 생동감 넘치는 섬세한 조각이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이 부도는 국보다. | 알려진 건 연둔 숲정이지만, 사실 동복천의 빼어난 경관은 둔동마을에서 좀 더 내려간 동복천 하류 쪽에 있다. 품 안에 숨겨둔 비수처럼 꼭꼭 숨어있되 가을의 심상을 썩 베어버릴 것 같은 풍경들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숲정이 건너편 길로 물길을 따라 2㎞쯤 하류로 내려가면 만나는 주평마을이다. 이 마을의 제방 위에 올라서 보는 습지의 경관은 가히 일품이다. 물 건너편 습지에 나뭇잎을 반쯤 떨군 버드나무가 흰 수피를 드러내고, 그 뒤로 키 큰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있다. 풍경을 완성하는 건 이런 경관을 거울처럼 찍어내는 고요한 수면이다. 정적 속에서 만추의 가을 풍경이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처럼 펼쳐지는 모습이라니…. 연둔 숲정이도 인적이 드문 편이지만, 이 둑 위에는 아무도 없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훌륭한 풍경을 오롯이 혼자만 제 것 삼아서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어 찾아가야 할 곳은 주평마을 아래 용리 마을이다. 여기에는 어지간히 세밀한 축적의 지도에조차 나오지 않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동복천에 세운 작은 보(洑)가 양쪽으로 물길을 휘감으면서 만들어진 섬이다. 섬 주변의 습지에는 아직 초록의 기운을 잃지 않은 버드나무와 갈대와 억새로 눈부시다. 반짝이는 갈대숲 위로는 백로들이 우아한 날갯짓으로 날아오른다. 마을 앞을 급하게 지나가는 도로변에서는 짐작조차 못할 경관이 숨어있는 것이다.
# 그림 같은 정자, 임대정과 환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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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운주사의 석불. 운주사 입구 쪽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석불군이다. 서툴고 투박한 솜씨지만 석불에서는 어쩐지 현대적인 미감도 느껴진다. | 화순의 남면 쪽에는 동복천에 합류하는 물길 사평천이 있다. 이 물길 뒤로 살짝 물러앉은 게 문화재청이 명승으로 지정한 임대정 원림이다. 원림이란 정원 숲을 말하는 것이니, ‘임대정 원림’이란 임대정이란 정자와 그 주변의 정원을 뜻한다. 임대정 원림은 정자와 정원의 내력보다 그 경관과 운치에 반하게 되는 곳이다.
현판에 내건 ‘임대정(臨對亭)’의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 유학자의 ‘낙조임수대려산(落朝臨水對廬山)이라는 시구를 따서 지은 것이다. ‘산을 대하고 연못에 임했다’는 뜻이다. 소박한 정자는 바위 언덕 위에 있고, 정원은 정자에서 그 아래 두 개의 연못, 홍련지와 백련지로 이어진다. 두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두고 거기에 배롱나무를 심어두었는데, 연꽃은 다 지고, 배롱 꽃도 지금 없지만 단풍이 그보다 더 붉게 물들어 연못 주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올해 임대정의 단풍색은 마음을 썩 베어낼 정도로 유난히 붉다.
임대정 원림 곳곳에는 글씨가 숨겨져 있다. 임대정 현판 뒤쪽에는 ‘낚싯대를 드리우며 즐기는 곳’이란 뜻의 ‘수륜헌(垂綸軒)’을 새긴 낡은 현판이 걸려있다. 임대정 자리에 세워졌던 옛 정원 이름도 ‘세상을 피해 자연과 벗하며 제 마음대로 즐긴다’는 뜻의 ‘고반원(考槃園)’이었다. 정원 여기저기에도 돌에 새긴 글들이 있다. 마음을 씻는다는 뜻의 ‘세심(洗心)’, ‘푸르름을 공경한다’는 ‘읍청당(읍淸塘)’, ‘향기를 여는 연못’이란 뜻의 ‘피향지(披香池)’…. 여기야말로 세상에서 물러난 이들이 자연경관으로 마음을 닦아내던 공간이었던 것이다.
화순 땅에는 임대정과 짝을 이룰 만한 정자가 또 하나 있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뜻밖에 독특한 경관을 갖게 된 환산정(環山亭)얘기다. 환산정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진격했던 의병장이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 그날로 낙향해 지은 정자다. ‘환산(環山)’이란 이름대로 화순군 동면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던 정자는, 1965년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정자로 드는 오솔길만 남겨두고 물 위에 섬처럼 떠 있게 됐다. 환산(環山)이 아니라 환수(環水)가 된 격이다. 정자는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서암 절벽을 앞에 두고 가득 담긴 서성 저수지의 물 위에 그림같이 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되 맑고 푸른 물로 더 아름다워진 경관이다.
#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
화순 땅에 가면 지나칠 수 없는 두 개의 절집이 있다. 쌍봉사와 운주사. 화순에서 이름나기로야 천불천탑의 전설이 전해지는 운주사가 한참 앞서지만, 운주사보다 쌍봉사를 앞세우는 건 단풍색으로 물든 기품 있는 절집의 분위기며,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정교하게 새긴 철감선사 부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절에 깃들어 있는 초의선사의 시(詩) 때문이었다.
사실, 초의선사의 이 시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 화순을 찾아 읽었던 시(문화일보 2014년 4월 23일자 29면)이기도 하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허물을 진솔하게 고백한 이 시는, 세월호 사고 직후 ‘우리 스스로 허물을 되돌아보게 하는 회한의 글’로 읽혔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인과를 말함일까. 초의선사가 스물두 살의 나이에 썼다는 시의 구절이 이렇다.
“…/ 평소 조심했으나 끝내 어긋났으니 / 이런 때를 맞으니 도리어 괴로워라 / 남들이야 이 심사를 알 리 없으니 / 싫어하고 의심함 사이 피할 길 없네 / 어찌 미연에 막지를 못했던가 / 서리 밟는 지금 오한이 이는구나 / 보나니 동녘은 점차 밝아오고 / 새벽 안개는 앞산에서 몰려온다.”
초의선사가 쌍봉사에 들른 건 쌍봉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철감선사 도윤이 입적한 지 1000년이 지난 뒤였다. 도윤은 돈과 권력에 기대어 타락하는 불교계에서 ‘못 배우고 가지지 못한 자’의 편에 서서 일대 선풍을 일으킨 선승이었다. 글을 몰라 불경을 읽지 못하고, 돈이 없어 시주를 바치지 못하더라도 마음 닦음과 선(禪)을 통해 ‘문득’ 부처에 다다를 수 있다는 주장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1000년이 넘는 시간 저편으로 도윤은 갔지만, 쌍봉사에는 그를 기리는 부도가 극치의 아름다움을 빛내며 서 있다. 권력을 가졌든지, 돈을 가졌든지, 아니면 선풍을 일으켰든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스러지는 것. 그들의 자취는 남은 자들이 선명하게 기록한다. 철감선사의 부도를 온 정성을 다해 깎아냈을 이름 모를 석공처럼, 지워도 지워도 더 또렷해지는 역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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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로 향하는 길가의 감나무밭에서 한 주민이 홍시를 다듬고 있다. 남도 땅 곳곳에는 지금 홍시가 터질 듯 붉게 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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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꿈이 스러지고 만 자리
이제 천불천탑의 절집 운주사로 옮아간다. 운주사의 석불은 미완성이다. 도래하지 않은 미륵의 용화 세상을 기다리며 세웠다고 전해지는 석불과 석탑들. 불상과 석탑의 투박하고 어색한 솜씨는 마음을 형상으로 담아낼 재주가 없었던 탓이었으리라. 미륵의 구원을 기다렸던 이들의 남루함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꿈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운주사에 남아있는 석불은 39구, 석탑은 21기. 천불천탑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구원의 날이 오면 일어선다던 와불은 여태 누워있다. 용화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석불과 석탑은 미완성이다. 그러나 오지 않아서…오히려 희망은 남는다.
그리고 꿈이 스러지고 만 곳 하나 더. 화순의 능주면 남정리에는 ‘조광조 적려유허지’가 있다. 이름이 좀 어렵다. ‘적려’란 귀양이나 유배 갔던 곳을 이르고 ‘유허비’는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한다. 그러니 조광조 적려유허지는 그의 자취가 깃든 곳이라는 의미겠다. 그 자취란 다름 아닌 ‘죽음’이다.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꿈꿨던 조광조. 그는 중종반정 당시 공로를 세웠다는 이유로 요직에 올라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구태의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지방의 신진세력으로 정치판을 꾸리려 급격한 개혁을 추진했다. 반대파의 모함으로 기묘사화에 휘말린 그는 연고 하나 없는 이곳 화순으로 유배된 뒤 불과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았다. 조광조의 이상은 구현할 수 없는 부질없는 꿈이었을까. 이루지 못한 열망과 좌절. 그 흔적이 초라한 유허지에 남아 있다. 애우당 툇마루에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던 시골 할머니들 몇몇이 소리 낮춰 대통령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화순 둔동마을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석곡나들목으로 나가서 주암 방면으로 우회전해 27번 국도를 탄다. 주암사거리에서 광주·동복 방면으로 우회전해 22번 국도로 갈아탄다. 이어 동복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동복천을 끼고 2㎞쯤 가면 숲정이가 있는 둔동마을이다. 용리 주평마을은 둔동마을에서 더 내려가 동복천 하류 쪽에 있다. 쌍봉사는 복내면과 이양면의 중간쯤에 있다. 복내면사무소에서 복내초교 쪽으로 8㎞쯤 가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조광조 적려유허지는 화순 능주역에서 도곡리 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화순은 광주광역시를 끼고 있어 숙소가 많은 편이다. 금호리조트 화순(061-370-5000)이 손꼽히는 숙소다. 도곡온천 부근에 숙소가 많은데 도곡온천관광호텔(061-375-0025), 도곡스파랜드(061-374-7600), 골드스파온천장(061-374-6006)을 비롯해 모텔들이 몰려있다. 화순군이 운영하는 백아산휴양림은 산 아래 시야가 탁 트이는 너른 부지에 들어서 있어 쾌적하다. 화순읍에는 모텔이 여럿 있는데, 화순의 먹을거리로는 두부가 이름났다. 달맞이흑두부(061-372-8465)는 도곡면과 동면에 있다, 도곡면의 색동두부(061-375-5066)도 이름난 곳이다. 두부보쌈이나 청국장, 두부전골 등을 낸다. 전통 한정식을 차려내는 수림정(061-374-6560)과 보양식인 흑염소탕을 내는 약산흑염소(061-373-9292) 등도 맛집에 이름을 올리는 곳이다. 복탕을 내는 다도복집(061-375-1547)과 쏘가리탕으로 이름난 금강민물(061-374-4898) 등도 알아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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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6년 11월 16일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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