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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절터에 서니 먹먹한 역사가 보였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0. 12. 23:25
 
[박종인의 땅의 歷史]
옛 절터에 서니 먹먹한 역사가 보였다
 

 

입력 : 2016.10.12 03:00

[55] 원주 폐사지 여행법과 역사를 말하는 한선학·전용복

흥법사… 법천사… 거돈사… 모두 사라지고 빈 가을만
일제강점기 日人들 손에 많은 석물이 제자리 잃어
역사를 보는 눈과 가을을 즐기는 가슴을 모두 충족하는 폐사지 순례

고판화박물관장 한선학
"우리가 안 아끼는데 가만 놔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옻칠 장인 전용복
"문화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 주인"

흥법사지 진공대사 승탑비.
흥법사지 진공대사 승탑비.

흥법사지 거북이 이야기

18세기 실학자 홍양호(洪良浩·1724~ 1802)가 쓴 문집 이계집(耳溪集) 16권에는 '원주 반절비(原州半折碑)'라는 글이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원주 영봉산 반절비는 고려 태조가 내린 비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옮겨가다가 죽령에서 두 조각이 났다. 반절은 가져가고 난이 평정된 후 반은 원주로 돌아왔다.'

반절비의 정식 이름은 진공대사 승탑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왕사로 극진히 모시던 진공대사 승탑 앞에 있던 비석이다. 비석이 있던 절 이름은 흥법사다. 비석 글은 왕건이 직접 지었다. 글씨는 명필인 당 태종 글씨를 모아서 새겼다. 부서진 채 서 있던 비석은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임란 때 비석 절반을 가져갔던 일본은 320년이 조금 더 지난 20세기 초 돌아와 진공대사 승탑과 돌관을 마저 가져갔다. 승탑과 돌관은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1000년 전 한 나라 시조가 후원했던 거대한 절이 그리되었다.

명주사 주지 한선학의 쓴소리

한선학씨 사진
한선학

 

한선학(60)은 스님이다. 태고종 원주 명주사 주지다. 동시에 고판화 전문가다. 명주사에는 고판화박물관이 있다. 서울 궁정동에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이 미술학자 최순우였다. 그 영향으로 미술에 눈떴고 동국대 불교미술과에서 조각을 배웠다. 입학 후 군 입대를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택한 행로가 군승(軍僧)이었다. 군에 있다 보니 곡차도 적당히 즐기며 살았다. 미술은 잊어먹고 살았다. 그러다 1995년 신라 왕자 김교각이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중국 구화산에 갔다가 다시 눈떴다. 곡차는 끊었다. 이듬해 전역하고 인사동에 갔더니 중국 목판이 보였다. 싼값에 구입했다. 그리고 대구 영남대에서 열린 한국 판화 전시회를 보고서 개안(開眼)을 했다. 한선학이 말했다. "조각을 하고 싶었는데 꿈을 못 이뤘다. 그런데 목판은 그게 조각이고 전통이고 역사였다." 치악산 자락에 절 지을 땅을 구하고 중국, 한국, 일본 할 것 없이 고판화와 목판은 다 모으며 살다 보니 그게 박물관이 되었다. 그가 말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나쁘다 다들 말한다. 그런데 견물생심이 없으면 어떻게 예술을 하나. 사물을 보고 마음이 일어야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지."

진공대사 승탑비를 '왜놈'들이 약탈해갔다. 홍양호라는 선비는 이를 덤덤하게 기록했을 뿐, 분노도 애석함도 없었다. 정작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한선학이 말했다. "2006년 일본식 간이 화로(火爐)를 수집했는데, 4면 모두 조선 철종 때 간행된 '오륜행실도' 목판이었다. 궁중 도서 원판은 왕실 도서관, 그러니까 규장각이나 장서각에 보관함이 원칙이다. 그런데 오륜행실도 원판은 다 사라지고 이 네 개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의 '만행'에 분노하기보다는 왕실본을 사사로이 끄집어내서 이리저리 팔아먹은 바로 그자(者)에 대해 분노가 치밀더라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견물생심 자체가 없었던 게지. 우리가 안 아끼는데 그걸 가만 놔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원주 폐사지와 일본

원주는 군사 요충지요 교통 요충지였다. 남한강 수로를 장악하면 왕조가 바뀌었다. 고려 시대, 원주에는 큰 절이 많았다. 고려는 원주를 귀히 여겼다. 남한강을 타고 개경까지 쉽게 오갈 수 있는 입지에, 왕건이 견훤과 겨루며 신천지를 꿈꾼 곳이었다. 왕조가 쇠하고 조선에 이르러 큰 절들은 폐사됐다. 그 가운데 거돈사와 법천사, 그리고 흥법사는 가을이면 순례자들로 넘쳐난다 

원주 거돈사지에는 신라 삼층석탑과 고려 비석만 남아 있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작은 탑은 일본인 와다 쓰네이치(和田常市)가 경성 자기 집으로 가져간 원공국사 승묘탑 모사품이다. 진본은 중앙박물관에 있다. /박종인 기자

흥법사는 왕건과 관계가 깊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천하를 쟁패했던 왕건은 이곳 산에 웅거하며 신천지를 도모했다. 왕건이 올랐다고 해서 이름이 건등산이다. 왕건이 아꼈던 흥법사에는 지금 돌탑과 거북이만 가을 햇살을 받고 있다.

절터에서 10분 거리 길섶에 민초들이 남긴 흔적을 하나 찾아볼 수 있으니, 이름하여 '욕바위'다. 그 위에 올라가 관료들에게 그 어떤 욕지거리를 퍼부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바위다. 길가에 우뚝 선 산봉우리라는 말도 있고 산 아래 기도원 정원에 있는 바위라는 말도 있다. 힘없는 백성들이 퍼부을 수 있는 유일한 무력(武力)이다.

남쪽 부론면으로 가면 법천사지가 나온다. 이 또한 나말여초 절터다. 법천사에는 지광국사비가 있다. 대단히 아름답다. 그 앞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 지광국사 승탑이 있던 자리다. 탑은 기구하다.

신림면에는 민초들이 섬겼던 성황림 원형이 남아 있다. 신목(神木) 두 그루가 당집을 호위한다. 

 

신림면에는 민초들이 섬겼던 성황림 원형이 남아 있다. 신목(神木) 두 그루가 당집을 호위한다.

 

일제강점기 경성에 살던 일본 부자 와다 쓰네이치(和田常市)가 경성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가 오사카 귀족에게 팔아먹었다. 총독부가 이를 알고 강제로 반납받아 경복궁에 모셨다. 해방이 되고 6·25 전쟁 때 경복궁에 박격포탄이 하나 날아오더니 바로 그 탑에 처박혔다. 1만2000조각으로 부서졌다. 전쟁 끝나고 4년이 지난 1957년에야 시멘트로 한 땀 한 땀 붙였다. 다른 석물들은 용산 중앙박물관으로 갔지만, 이 탑은 옮길 때 부서질까 봐 여전히 경복궁에 있다. 올 초 문화재청이 복원 공사를 시작하면서 원주 시민들이 제자리로 돌려달라고 청원 중이다. 거돈사도 마찬가지다. 거돈사에 있던 원공국사 승묘탑 또한 와다 쓰네이치가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해방 뒤 사라졌다가 성북동 부잣집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복궁을 거쳐 지금 중앙박물관에 서 있다. 거돈사에는 그 모사본이 서 있다. 심란하다.

전용복이 알려주는 폐사지 여행법

전용복씨 사진
전용복

 

일본 하면 옻칠이고 옻칠 하면 일본이다. 영어로 'japan'은 '옻칠'을 뜻한다. 복도, 천장, 벽을 옻칠 작품으로 뒤덮은 일본 도쿄의 연회장 메구로가조엔은 일본 옻칠의 자존심이다. 전용복(63)은 옻칠 장인이다. 옻칠의 나라 일본에서 전용복은 최고로 통했다. 1993년 메구로가조엔 옻칠 작품을 모두 복원해 화제가 됐던 명장이다.

그 전용복이 지금 옻칠 고장 원주에서 작업 중이다. 그가 말했다. "문화? 문화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 주인이다. 전통? 전통은 계승해야 하지만 계승에서 그치면 끝이다. 전통은 발전시켜야지. 지금 완벽하게 복원해놓은 조선 자개장을 500년 뒤 발굴하면 뭐라고 할까. 한국 옻칠 기술은 1000년 동안 발전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옻칠 나라 일본은 서른 갓 넘은 한국인에게 전통 복원 공사를 맡겼다. 경복궁 중건을 일본 회사에 맡긴 식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그럴 수 있을까.

원주 폐사지도 그리 보아야 한다. 승탑들이 왜 여태껏 귀향하지 않는지 그리하여 남한강에는 빈터만 남아서 순례객들을 먹먹하게 하는지, 그 까닭을 읽으며 가을바람을 맞아볼 일이다.

[원주 여행수첩]

원주 여행지도

〈볼거리〉

1.거돈사지: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신라 시대 삼층석탑, 원공국사 승묘탑비. 승묘탑은 중앙박물관에 있다. 정산초교(폐교) 안쪽 운동장에 당간지주 하나가 누워 있다. 2.법천사지: 현재 발굴 중인 곳을 제외하고 지광국사 현묘탑비까지는 출입 가능. 3.흥법사지: 고려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승탑비. 나머지 절 흔적은 마을 축대에 남아 있다. 4.욕바위: 흥법사지가 있는 안창면 평심원 기도원을 검색할 것. 기도원 안쪽의 작은 바위라는 설, 길 건너 산꼭대기 바위라는 설이 있다. 기도원 아래 A&J오토캠핑장(033-733-7770) 안에 목욕하는 선녀를 훔쳐보다가 스님 하나가 거꾸로 매달렸다는 '중다래미바위'가 있다. 5.성남리 성황림: 신림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숲. 폐사지 순례와 함께 필수 답사 코스. 민초들의 신앙관을 볼 수 있는 서낭당 원형이 보존돼 있다. 성남리 주민센터에 문의는 (033)763-7657.

〈고판화박물관〉

태고종 사찰인 명주사 부설 박물관. 아시아 각국 고판화와 희귀 목판을 감상할 수 있다. 한선학 스님에게 전통 이야기를 청해본다. 11월 20일까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편지지인 '시전지' 전시회. 한·중·일 판화와 목판도 감상할 수 있다. 전통을 배우는 독특한 템플스테이도 운영. 성인 5000원. www. gopanhwa.c om, 신림면 황둔2리, (033)761-7885.

〈맛집〉

1.들꽃이야기: 복분자 수제비와 해물 파전, 복분자 동동주 추천. 들꽃 활짝 핀 정원과 실내. 신림면 성남2리 633, (033)762-2823. 월·화 휴무. 2.원주 福추어탕: 갈아 내는 추어탕. 국물 맛을 원하면 생미꾸라지를 그대로 끓이는 탕. 개운동 406-13, (033)762-7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