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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0. 5. 22:24

강원 철원의 소이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익어가는 벼들이 물결치는 광활한 철원평야가 시야의 반이고, 나머지 반은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 평야 너머가 북한 땅이다.



강원 철원 땅만큼 입체적인 곳이 또 있을까요.
땅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건 그 땅이 견뎌온 시간입니다.
화산분출로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린 땅.
그 땅에서 궁예는 미륵의 나라를 꿈꿨고, 조선 태종과 세종은 말달리며 사냥을 했습니다.
겸재 정선은 폭포를 그렸고, 김시습은 여기서 몸을 숨겼습니다.
6·25전쟁 때는 산 하나를 다 녹일 정도의 포탄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북쪽의 땅 철원을 찾아갑니다.
이번 주는 철원에서 바라본 막막한 평원과 경계의 철조망 너머로 마주친 맑은 눈빛의 고라니,
그리고 전쟁과 분단, 이어 지뢰 위에 핀 가을꽃에 바치는 시(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전쟁의 비극 덮은 거대한 평원의 평화

▲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지만, 한탄강이 협곡을 이룬 고석정에는 아직도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있다.

장면 하나. 3만5000ha. 이게 대체 얼마만 한 넓이인지 짐작되시는지. 평으로 환산하자면 단위가 더 어마어마하다. 1억587만5000평, 알기 쉽게 환산해 보자. 일산 신도시의 22배. 수원시 면적의 2.9배. 이게 강원 철원의 노동당사 건물 맞은 편 소이산 정상에서 굽어본, 익은 벼들이 거대하게 물결치고 있는 철원평야의 넓이다.

철원평야는 지척의 북한 땅 평강의 화산 분출로 불바다와 함께 끓어 넘친 뜨거운 용암이 이룬 거대한 대지다. 여기에 미륵을 자처하던 궁예가 건너가 태봉국을 세웠고, ‘대야잔평’과 ‘재송평’이라 불리던 이 들판에서 조선 태종과 세종이 말을 달리며 사냥을 했다. 그리고 폭격으로 산이 다 녹아내릴 정도의 치열한 전쟁의 비극이 지나갔다. 철원평야는 이렇게 불처럼 뜨거웠던 땅이었다.

이 너른 들을 바라보는 자리가 바로 소이산이다. 해발 362m. 인근의 금학산이나 명성산에다 대면 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높이지만, 평야에 우뚝 솟은 산 정상에 서면 마치 거대한 철원의 들과 그 너머로 아스라이 평강고원이 일망무제의 바다처럼, 혹은 거대한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가을볕 아래 노랗게 익은 벼들이 물결치는 너른 들 한가운데는 금강산까지 달렸다는 전기철도의 자취가 뚜렷하고, 그 뒤로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와 아이스크림 고지, 저격능선과 김일성고지가 손에 잡힐 듯하다.

50여 년 전쯤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이 여기 소이산에 올랐다. 그는 휴전선 일대의 격전지를 둘러보며 민족의 비극에 울분이 차서 기행문 ‘피어린 육백리’를 썼다. 소이산에 오른 감회의 첫줄을 노산은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 철원읍 폐허의 서쪽, 소이산 마루에서 북쪽을 향하여 역사의 바둑판 위에 놓인 승부의 점과 점인 양 말없이 솟아있는 피어린 고지를 바라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단과 비극의 소회는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분단과 대결의 긴장을 병풍처럼 두른 채 철원평야는 지금 수확의 풍요로움으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 별이 영화 스크린 영상처럼 뜨는 곳

가을날의 철원 땅을 말하면서 소이산의 풍경을 첫 장면으로 올려놓은 건, 그 산 위에서의 경관이 보여주는 시야의 어마어마한 규모 때문이었다. 소이산 정상에서 굽어보는 규모란 한눈에 담기에 벅찬 ‘공간’을 뜻하기도 하고, 끓어오르던 용암의 시간이나 전쟁통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옛 철원 땅을 굽어보며 마주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이산에 올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공간과 시간의 막막함이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건 신산함과 풍요로움, 긴장과 평화 같은 정반대의 감회다.

평원 너머로 해가 질 무렵, 여행자들이 소이산 전망대 위에 텐트를 치고 별을 기다리는 모습. 이곳에서는 별을 초대형 영화 스크린으로 보는 것처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소이산은 전쟁 이후 최근까지 엄격하게 통제되는 산이었다. 일대를 다 내려다볼 수 있는 탁월한 지형 때문이었다. 6·25전쟁 당시 이곳을 차지하려 백마고지 전투 못지않은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수복 후에도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차단된 채 발칸포기지와 레이더기지가 들어서 미군과 한국군이 번갈아 주둔했다. 통제구역에서 해제되고 군부대가 물러난 뒤에도 ‘지뢰주의’의 삼각 팻말이 길을 막았다. 그러다 근래 들어 철원군의 요청에 따라 육군 6사단의 협조로 출입이 허용됐다.

소이산은 아직도 산 자락 곳곳이 지뢰지대라 꼭 탐방로를 따라 올라야 한다. 제법 긴 오르막 길을 40분쯤 걸으면 빈 미군 부대 막사와 교통호, 견고하게 지은 토치카를 만나게 된다. 교통호와 탄약고 위쪽이 바로 소이산의 정상이다. 정상에는 너른 나무 덱이 깔려 있는데, 그 위에 올라서자마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큰 분지를 이룬 거대한 철원평야와 그보다 더 거대한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이 거기 있다.

늦은 오후 무렵,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소이산 정상의 덱 위에 텐트를 쳤다. 평원 위로 뜨는 별을 보러 왔다고 했다. 백마고지 쪽으로 해가 넘어가면서 푸른 어둠이 내리자 밤하늘 위로 선명한 별이 떴다. 소이산 정상에서 별은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이 열려있어 마치 거대한 영화의 스크린처럼 북쪽 하늘 정면으로 별이 떴다. 푸른 어둠에 잠긴 평원과 수평선에서 머리 위로 가득찬 별…. 철원평야가 순광으로 빛나는 오전 나절이든, 역광으로 반짝이는 오후이든, 아니면 별이 뜨는 밤이든, 철원에 갔다면 소이산은 절대로 빼놓지 말 일이다.

# 철조망 너머로 마주친 고라니 한 마리

▲ 남방한계선의 철책 아래로 화강의 물길이 흘러가는 ‘통문’에서 만난 고라니. 남방한계선과 휴전선의 철책 사이에 사는 고라니는 거기에 사람들이 발길을 들일 수 없는 걸 아는지, 겁먹은 기색 없이 다가왔다.

장면 둘. 차가운 분단의 남과 북을 흘러내리는 강에서 철책을 사이에 두고 고라니와 딱 마주쳤다. 강물을 마시던 고라니가 철책으로 다가와 순한 눈망울로 이쪽을 바라봤다. 손을 내밀면 잡힐 듯한 거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라니는 겁이 많아 자그마한 기척에도 생고무처럼 튀어 달아나지만, 철책선 안의 고라니는 태연했다. 남방한계선 철책과 휴전선의 철책 사이에 살면서 철책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일까. 고라니는 물을 마시고 왕버드나무 숲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고라니와 조우했던 그 짧은 시간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손대지 않은 순하고 청정한 자연이 차갑고 날카로운 대결의 철조망 너머에 있는 장면을…. 정반대의 이미지가 만나서 이루는 감동은 ‘비장미’에 가까웠다.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 마을 초입 도로의 대전차 방호벽에 ‘멸북’ 글자가 아직 선명한 곳. 남북한의 체제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재향군인 100가구의 이주로 재건촌을 건립하면서 조성된 이 마을에는 남방한계선의 철책 너머 북녘 땅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길 화강(花江)이 있다. 역설의 이름. 차가운 긴장과 경계의 비무장지대(DMZ)의 땅을 흘러내리는 강의 이름이 ‘꽃강’이다. 꽃강의 꽃이란 전쟁통에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그 꽃일까. 화강의 물길은 남방한계선의 촘촘한 철책 사이로 흐른다. 민간인은 감히 접근조차 못했던, 그 철책의 코 앞까지 ‘DMZ생태평화공원 탐방로’가 놓여있다. 이른바 ‘용양보 탐방로’다. 탐방로는 화강을 따라 민통선 너머 용양보까지 걷다가 군부대를 차로 통과해 남방한계선의 철책 아래로 화강이 흐르는 통문까지 이어진다.

남방한계선 안에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인 용양보는 일제강점기 금강산 전철 교각을 둑으로 삼아 지어진 저수지다. 둑이 된 교각에는 옛 철교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용양보 저수지는 왕버들 군락이 습지를 이뤘다. 그냥 그 자체로 인간의 간섭없이 ‘살아 숨 쉬는’ 원시생태의 자연이다.

저수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민물 가마우지 떼였다. 용양보에는 전쟁 후 DMZ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오가던, 발판이 다 떨어져 나가고 철탑 지지대와 철선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출렁다리가 있는데 철선마다 민물 가마우지들이 까맣게 줄지어 앉아있었다.

철책선을 넘어 흐르는 물길인 화강(花江)을 가둔 용양보의 풍경. 60년 동안 인간의 간섭이 없었던 수변이 왕버드나무가 밀생하는 습지가 됐다. 접적지대를 순찰하는 군인들이 건너다니던 출렁다리가 무너져 폐허가 된 자리에 민물 가마우지 떼가 줄지어 앉았다.


용양보 탐방로의 최북단은 군부대 너머의 남방한계선 철책이다. 철책은 지도 위에 그어진 남방한계선에서 지뢰지대를 양옆으로 끼고 있는 길을 지나 한참을 더 북쪽에 있다. 계웅산의 급경사 면을 따라 내려온 우악스러운 철책선이 화강의 물 위로 지나는데, 철조망 아래 그물처럼 얽어놓은 철 구조물 사이로 물길이 지나간다. 분단의 땅을 흐르는 물길 ‘용양보 통문’이다. 철책 너머로 고라니를 만났던 건 이 통문 앞에서였다.

생창리에는 용양보 탐방로 말고도 생태평화공원 탐방로가 하나 더 있다. 육군 3사단이 민통선 내 성재산 산등성이에 설치한 십자가탑까지 이어지는 ‘십자탑 탐방로’다. 용양보로 이어지는 길이 순한 평지라면, 군 작전도로를 내줘서 만든 이 길은 등산에 가깝다. 탐방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십자탑이다. 십자탑 앞에 서면 북녘 땅의 대평원이 발 아래로 보인다. 북녘 땅에 군 막사인지 공장인지 분간이 안 되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걸 두고 생창리 주민들은 두부 공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장에는 인적도, 굴뚝의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 지뢰 위에 핀 가을꽃에 시를 바치다

장면 셋. 폐허로 서 있는 철원읍 관전리의 노동당사 건물 앞에는 건물 콘크리트 잔해에다 시를 적어놓은 시비가 있다. 시비에 새겨진 철원 출신 시인이 쓴 시를 읽는다.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없는 꽃/ 꺾으면 발 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냄새가 난다.”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 전문>

전쟁의 참상을 상징하고 철원을 대표하기도 하는 아이콘 같은 곳이 바로 노동당사다. 노동당사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철원 일대가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이다. 조선노동당은 이 건물을 지으면서 리 단위로 쌀 200가마씩을 강제로 거뒀다고 전해진다. 철원이 공산치하에 있던 5년 동안 조선노동당 건물에서는 양민수탈과 애국인사의 체포 고문, 학살이 자행됐다. 그 비극의 현장 앞에는, 지금 지뢰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을꽃을, 화약냄새 나는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음을 노래하는 시 한 편이 적혀있다.

노동당사 건물 외벽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 그중에는 교전 중에 생긴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남북 양쪽의 병사들이 노동당사 앞길을 지날 때 엄습하는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건물을 향해 총을 연발로 난사하면서 생긴 것이라는 게 당시 참전했던 국군의 증언이다.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몸부림쳤을 청춘들의 고통이 그 총탄 자국에 남아있다.

어디 이곳뿐일까. 허가를 받아 들어가야 하는 민통선 안에는 공산치하에서 공산당의 불순분자 색출 체포가 있었던 농산물 검사소 건물이나, 공산치하의 철원군 인민위원회가 관리 운영하던 제사공장의 잔해 등이 남아있다.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의 비무장지대(DMZ)생태평화공원의 ‘용양보 탐방로’의 징검다리 구간을 한 가족이 걷고 있다. 탐방로 구간은 전쟁의 상흔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다.


# 철원 경관의 다양한 주제와 함의

이제 철원에서 만나는 다른 장면들의 얘기다. 앞서 철원에서 만난 세 개의 장면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우리가 잘 몰라봐서 그렇지 철원이야말로 수많은 장면을 품고 있는 빼어난 여행지다. 역사, 전쟁, 지질, 생태, 명승의 경관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리 땅에서 철원만큼 땅과 경관이 보여주는 주제와 함의가 여럿인 곳이 또 있을까. 게다가 아직 접적지역이라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남겨진 명소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철원에는 백마고지 전적지를 비롯해 제2 땅굴, 승리전망대, 평화전망대 등 분단과 안보 관광지가 있고, 고석정을 위시해 송대소, 직탕폭포처럼 화산과 용암이 만들어낸 멋진 지질경관이 있으며, 김시습이 몸을 숨겼다는 매월대 폭포와 겸재 정선이 다녀가 그림으로 남긴 삼부연폭포 같은 명승도 있다.

어디 이뿐일까. 여름이면 래프팅을 하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한탄강 협곡에서는 겨울에 얼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민통선 너머에는 한겨울이면 두루미와 독수리가 찾아들기도 한다. 가을 명성산 억새의 물결과 금학산의 조망, 복계산의 짙은 숲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 남은 문제는 철원에서 ‘어떤 장면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너무 ‘보기’가 많아서 답을 찾기 어려운 곳.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저마다 느낌과 깊이가 다른 곳. 거기가 바로 가을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우리 땅의 최북단, 철원이다.



◇철원 가는 길 =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의정부나들목에서 나가 의정부 쪽으로 43번 국도를 따라 직진해 포천과 운천을 거쳐 가면 갈말읍(신철원)이다. 외곽순환고속도로 호원나들목으로 나가서 의정부, 양주, 동두천, 전곡, 연천을 지나서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줄곧 3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이라 간명하지만 이 길을 택하면 시내 구간에서 차량정체를 감수해야 한다. 철원은 접적지대라 차량용 내비게이터나 인터넷 지도가 지워진 곳이 많다. 미리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챙기고 늘 지도를 숙지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 소이산은 노동당사 근처에 있다. 노동당사의 관광안내센터에 길을 물어서 찾아가는 게 좋겠다.

비무장지대(DMZ)생태평화공원은 김화읍에서 가깝다. 생태평화공원에는 따로 공원이 없다. 민통선 안쪽의 DMZ 일대가 모두 공원이라는 개념이다. 생태평화공원 탐방로를 다녀오려면 이틀 전까지는 민북마을인 생창리의 방문자센터(033-459-3633)에 탐방신청을 해야 한다. 하루 탐방인원은 40명으로 제한된다. 탐방코스는 두 개가 있는데, 십자탑 탐방로는 등산이나 다름없다. 가족 단위라면 용양보 탐방로를 권한다. 탐방로 입장료는 3000원. 탐방 시에는 민통선 경계 초소를 지나게 되므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고석정 관광지의 한탄 리버스파호텔(033-455-1234)이 추천할 만한 숙소다.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는 가족실 3실과 단체실 2실 등 5실의 숙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에 지은 건물이라 객실이 깔끔하다. 가족실은 5만 원, 단체실은 10만 원이다.

철원의 맛집으로는 신철원의 철원막국수(033-452-2589)가 첫손으로 꼽힌다. 60년 전통이라는데, 막국수 맛이 구수하다기보다는 새콤달콤한 쪽에 가까워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집이다. 동송의 내대막국수(033-452-3932)의 맛은 좀더 묵직하다. 신철원의 농가맛집 대득봉(033-452-2915)은 산나물 비빔밥으로 알려진 곳이다. 재배한 나물로 투박하게 차려내는 밥상이 정겹다. 역시 신철원의 고향식당(033-458-0112)은 상호와는 다르게 지역에서 이름난 중국집이다.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짬뽕으로 철원의 식당으로는 드물게 마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다. 철원식당(033-452-3049)은 내장을 듬뿍 넣고 끓인 순댓국을 내는데 냄새도 없고 맛도 깔끔하다. 민통선한우촌(033-452-6649)은 1층 매장에서 고기를 사다가 2층 식당에 차림비(3000원)를 내고 먹는 이른바 ‘정육 식당’인데, 안심이나 채끝 1+ 등급이 100g당 1만 원 내외다.


철원=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6년 9월 21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