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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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경상남도 사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0. 11. 22:02

경남 사천의 각산 정상의 봉수대에서 내려다본 창선도와 남해 일대의 모습. 푸른 바다 위에 섬과 섬을 딛고 건너가는 삼천포대교와 창선교가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올여름 더위는 좁은 밀실에서 끓는 가마솥 같습니다. 무더위와 습도도 그렇지만, 정쟁과 갈등도 뜨겁고 숨이 막힙니다. 도망갈 수 없는 무더위. 피할 수 없다면 온몸으로 받아내는 게 정답이 아닐지요. 장작불 아궁이 속 같은 여름의 복판에서, 문득 그보다 더 뜨거운 열망으로 데워진 돌을 떠올렸습니다. 경남 사천의 ‘매향비(埋香碑)’ 얘기입니다. 이 빗돌이야말로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먼 훗날 도래할 희망에 대한 꿈과, 그리고 그 꿈에 보탰던 정성을 매혹적인 이야기로 증거합니다.

매향비는 고려말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창궐하는 왜구의 노략질과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고된 노역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미륵의 도래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미륵이 오기로 약속한 때는 자그마치 56억7000만 년 뒤의 일. 향나무를 묻는 매향 의식은 미륵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한 기원이었습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뻘에다 향나무를 묻고, 그 나무가 1000년 뒤에 떠오를 때 그걸 쪼개 향으로 태우면 미륵이 온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매향비는 거기에 향나무를 묻었음을 증거하는 빗돌이랍니다.

사천의 매향비를 찾아가는 길. 초록 바다를 이룬 차밭에서 다도의 뿌리를 찾아보기도 했고, 창선도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각산에서 운무를 만나기도 했으며, 각산의 발아래 노을이 아름다운 실안해안도로를 지나기도 했습니다. 그 길 끝에서 만난 매향비는 남루하지만, 여전히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뜨거운 꿈으로 서 있었습니다.

매향비 앞에서 희망과 꿈, 그리고 종교와 구원의 진중한 이야기 끝에 덧붙이는 게 좀 계면쩍은 일이긴 하지만 사천, 아니 삼천포에서는 먹거리를 빼놓을 도리가 없습니다. 사천에는 술값만 내면 다양한 갯것들이 한 상 가득 안주로 올라오는 통술집도 있고, 여름 폭염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날씨임에도 잊지 않고 찾아온 은빛 비늘의 전어도 있습니다.

이제 늦은 휴가라고 해도 좋겠고, 이른 가을여행이라도 좋겠습니다. 매향비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떠나는 사천으로의 여정을 권합니다. 각산에 올라서 창선대교 일대의 바다 경관을 즐겨도 좋겠고, 이른 아침 다솔사의 차밭을 거닐며 이슬에 바지를 적셔도 좋겠습니다. 오래된 친구와 통술집에서 바다를 보며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서 마치 매향비의 소망처럼 제 가슴에 품고 있는, 나를 위한 게 아니라서 더 소중한 소망 하나를 가만히 꺼내본다면 말입니다.

경남 사천의 절집 다솔사 법당으로 오르는 숲길. 짙고 어둑한 초록의 숲길 뒤쪽에 환한 법당이 있다. 다솔사는 작지만 단정한 앉음새와 그윽한 차 향이 훌륭한 절집이다.




# 깊음·적막으로 가득 채운 절집 다솔사

경남 사천의 매향비로 향하는 여정의 출발지점을 다솔사로 잡는다. 절집에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년고찰 다솔사는 ‘다부진’ 절집이다. 이름만 다솔(多率·많은 군사를 다스림)이지 사실 절집은 자그마하다. 규모를 보겠다면 여기가 아니라 세계 최대의 목조 와불이 있는 인근 백천사로 갈 일이다.

다솔사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있다. 사천의 서예가 김정의 화려한 글씨를 편액으로 달고 있지만, 적멸보궁은 봉명산 작은 귀퉁이 한쪽만 소박하게 차지할 따름이다. 하지만 절집 건물의 배치는 야무지다. 절집 앞의 커다란 삼나무와 측백나무, 소나무와 보궁의 뒤편 차밭까지 어우러져서 더 그렇다. 작음이 아니라 깊음이, 말함이 아니라 침묵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다솔사에 깃들어있는 건 차(茶)의 향기다. 다솔사를 창건한 연기조사나 의상대사, 도선국사 등이 모두 이름난 차 애호가였다. 가깝게는 대처승 최범술이 있다. 만해 한용운의 수제자였던 그는 일제 강점기이던 1917년 다솔사로 입산한 뒤 항일 비밀결사단체 조직에 관여하고 일왕의 암살모의에 가담했으며 신채호의 유고를 간행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해인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말년에 다솔사에 머물며 차를 연구했다. 불교에서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에다 ‘이슬 로(露)’자를 합쳐 ‘반야로’라는 전설적인 명차를 전수한 것도 그였다.

다솔사로 이어진 길은 차의 향기를 맡으러 가는 길이다. 차밭은 다솔사에도 있지만, 남강을 끼고 평지에 펼쳐진 무려 49만5868㎡(15만 평)의 국내 최대 녹차 단지의 차밭도 볼만하다. 녹차 단지에서 1001번 지방도로를 따라 9㎞쯤 더 가면 티니 골프장 푯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서행을 하면서 주위를 살펴야 매향비를 놓치지 않는다.

# 1000년 뒤에 올 구원을 기다리다…매향비

▲ 사천의 매향비. 약탈과 착취에 지친 백성들이 구원의 꿈을 적은 비석이다.

사천의 매향비는 한 달 전쯤에도 들렸다. 발길이 그쪽으로 향할 때마다 늘 다시 보아두고 싶은 곳이 있다. 매향비가 꼭 그런 곳이다. 한 달 전에는 비를 보호하기 위한 정자의 남쪽 지붕에 큼지막한 말벌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치워지고 없다. 잘 관리가 되고 있으며 여길 찾는 이들이 적잖다는 증거다. 하지만 말벌은 여전히 정탐 중이었다. 각설하고….

사천 매향비는 높이 1.6m, 너비 1.3m의 부정형의 형태로 15줄 202자의 글이 음각된 비석이다. 비석은 격식이 없다. 바로 옆에 있는 큰 바위를 툭 쳐서 깬 뒤 그걸 빗돌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맞는 것처럼 보이는 건, 재질이 같은 퇴적암으로 결과 색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매향비의 재질은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무른 퇴적암이다. 짱짱하고 번듯해야 할 빗돌에 새긴 글씨체는 또 어떤가. 물 위에다 쓴 것처럼 획은 흐르고, 글씨의 크기도 일정치 않으며 행간은 녹아내린 듯하다.

향나무를 묻고 매향비를 세워서 56억7000만 년이란 시간을 앞당긴대도 미륵이 오는 건 1000년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대’를 포기한 것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말 왜구의 침략은 한 해 평균 스물일곱 번이나 됐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왜적의 약탈을 당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1000년 뒤에나 도래할 구원을 믿었다. 그날이 되면 1000년 전의 자신들을 알아달라고, 당시 사천의 인구보다 더 많은 4100명의 의지로 매향비를 세운 것이었다. 그들은 누구나 맡을 수 있는 향기를 매개로 개인의 해탈이 아닌 모두의 접신을 꿈꿨다. 모두를 구원하는 그런 향기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었다.

# 각산의 높이 해안길의 너비, 그리고 박재삼.

▲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일찌감치 나기 시작한 전어회. 벌써 고소한 맛이 돈다.

사천 일대를 섬과 바다를 한눈에 담는 자리가 바로 각산이다. 이른 아침, 혹은 막 해가 진 뒤에 각산의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삼천포대교 일대의 장쾌한 경관은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이른 새벽 이마를 운무로 두르고 선 섬들이며, 푸른 어둠이 내린 뒤 징검다리를 잇듯 섬과 섬을 건너는 다리에 야간조명이 밝혀지는 모습이라니….

각산 바로 아래 실안 해안 길 한쪽은 지금 공사 중이다. 조만간 각산과 늑도 사이를 잇는 해상 케이블카가 들어설 모양이었다. ‘실안낙조길’이란 이름이 붙여진 해안도로에서는 코앞에 떠 있는 저도, 마도와 신섬을 마주 볼 수 있다. 섬들은 자맥질했다가 완전히 올라와 두 번 다시 자맥질할 마음이 없는 듯 뒷짐을 지고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이다. 이들 섬은 육지에서 1㎞ 내외로 가까이 있지만 다리가 없어 배로만 다닐 수 있다. 삼천포항에서 하루 네 차례 운행하는 도선을 이용하거나 섬 안에 있는 숙소에 연락하면 어선이 택시처럼 와준다. 여기야말로 육지와 가장 가깝되 가장 적막한 풍경을 갖춘 섬이다.

실안해안과 함께 삼천포항 근처의 박재삼 문학관도 들러 볼만한 곳이다. 문학관은 노산공원에 있는데, 그다지 볼 건 없지만 생각의 실타래가 술술 풀릴 것만 같은 고즈넉함이 깃들어있다. 시인 박재삼의 시에는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시는 삼천포의 바다에 가만히 남은 듯하다. “겨울 바다를 가며/물결이 출렁이고/배가 흔들리는 것에만/어찌 정신을 다 쏟으랴./그 출렁임이 /그 흔들림이 /거세어서만이/천 길 바다 밑에서는 /산호가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는 일이라! /사람이 살아가는 그 어려운 길도/아득한 출렁임 흔들림 밑에 /그것을 받쳐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가 마땅히 있는 일이라! /……다 그런 일이라!” <박재삼 시 ‘사람이 사는 길 밑에’ 전문>

# 삼천포 회 맛의 비밀이 바다에 있다

다찌는 일본말이다. 실비는 중국식 표현이고 가장 알맞은 표기는 통술집이다. 통술집은 소주건 맥주건 술만 ‘기본’으로 시키면 주인 마음대로 한 상 가득 갯것 안주를 차려내는 술집이다. 이름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행정구역 개편과 지명을 두고 가장 논란이 뜨거웠던 곳 중이 바로 이곳 사천이었다. ‘삼천포’란 지명이 ‘사천시’로 빨려 들어갔을 때 삼천포 주민들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얘기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나온다. 인상적이었던 주인공의 대사 한 대목. “사천시도 일리가 있고 삼천포시도 일리가 있으니까 둘을 합쳐서 칠천포, 어떻습니까.”

행정구역으로는 사천시라 불러야 하지만, 온정과 애환을 담아서는 아직도 ‘삼천포’다. 사천의 벌리동 어디선가 ‘칠천포’란 이름의 통술집이 성업 중이라는데 말만 듣고 가보지는 못했다.

삼천포항과 삼천포 버스터미널 사이 반경 5㎞ 이내에는 줄잡아 100여 개가 넘는 통술집이 있다. 거의 모든 집이 10개 미만의 테이블에 ‘실비’ 혹은 ‘다찌’의 간판으로 영업을 한다. 그 수가 증명하듯 삼천포에 갔다면 먹거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사천 갯것의 맛은 남해의 센 물살이 만들어낸다. 섬 사이를 휘도는 거센 물살이 갯것들을 탱글탱글하게 키워내 담백하고도 기름진 회 맛을 보장해 준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자주 가는 통술집의 기본 단위는 2인 기준 소주 3병 5만 원이다. 소주는 한 병씩 일일이 가져다주지 않고 얼음을 큰 대야에 가득 채운 뒤 대충 6∼7병을 꽂아 식탁 옆에 놓아둔다. 다음은 참고로 저녁에 간 통술집 ‘광명다찌’에서 동네 지인과 둘이 소주를 한 병 더 먹어서 6만 원에 맛본 것들이다. 문어다리 조림, 생고구마와 찐 피땅콩, 바닷장어 조림, 소라, 서실이라 불리는 톳과 해초, 청각, 작은 접시에 모둠으로 담긴 숭어 갯장어 전어회, 묵밥, 편육과 신김치 조금, 대합탕, 피조개인 줄 알았던 큰 꼬막, 갑오징어 새끼를 먹통이라 칭하는 것은 몰랐는데 그 먹통 데침, 델라웨어 품종의 미니포도 반 송이와 배 두 쪽의 디저트…. 실은 서울에서 유명한 안개실비(간판이 내려지고 백반집 간판이 들어섰다)와 바로 붙어있는 옆집, 주인아주머니가 몸이 약해 가끔 문을 열지 않는 ‘만포실비’의 청갓 넣어 담근 열무김치가 먹고 싶었지만 재료가 떨어져서 이날은 입장 불가였다.

삼천포항 앞바다를 어선이 지나고 있다. 삼천포에서 나는 생선들은 남해의 거친 물살에서 잡은 것이라서 그런지 유독 쫄깃하다.


# 며느리, 집 나갈 틈도 없이 전어가 왔다

이왕 상호가 나온 김에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는 통술집을 꼽아보자. 앞서 기웃댄 광명다찌와 만포실비 외에 송학, 명품, 만남, 2층에 있는 비엔나, 아지투, 연정, 만남실비 등이 있다. 모두 기본 빼고 소주 한 병에 1만 원이 아깝지 않은 집들이다. 다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철이라면 오후 6시를 넘겨서 자리 잡기가 어려운 곳들인데 요즈음은 날씨도, 경기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삼천포에 갔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수산물을 꼽는다면, 갯장어, 맛이 꽉 찼다고 해서 돌문어로 별칭된 문어, 그리고 전어다. 전어는 찬바람 부는 가을부터 구경할 수 있다고 알려진 생선이지만, 팔포 매립지 일원에서 열리는 전어축제는 지난달 말에 진즉 끝났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데, 아예 며느리가 집을 나갈 틈도 없이 전어가 나온 것이었다.

혹서 때문일까. 삼천포의 전어는 아직은 풍어라고는 할 수 없다. 지난 17일 경매가는 10kg에 23만~30만 원 선, 예년에 비하면 40% 정도 비싸다. 태풍으로 한바탕 바다가 뒤집어져야 쏟아져나올 것이라는 게 어부들의 얘기였다. 전어는 제철에 야들야들한 기름이 오르면 뼈가 순해진다. 어시장의 좌판에서 새끼손톱보다 작은 위와 쓸개만 따로 몰래 모아 밤젓 재료로 추리는 손 빠른 칼잡이가 있다면, 전어도 아주 맛있게 회 쳐내니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딱 그런 이가 썰어내는 횟집이었다. 자연산 광어를 4만 원에 사고, 곁들여 전어를 1만 원어치 주문한 중년 부부는 연신 “우야된 기(어떻게 된 게) 전어가 더 맛있노”라고 감탄했다.



사천녹차단지, 삼천포항 가는 길=사천 녹차단지는 경부고속도로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단성나들목에서 단성, 지리산 국립공원 방향으로 우측 고속도로 출구로 나간다. 남강을 오른쪽에 두고 가다가 대관교가 있는 좌측길로 간 뒤 남강댐 효나눔복지센터가 있는 오거리 로터리에서 5시 방향 우회전한다. 호반로를 계속 따라가면 녹차단지 표지판이 나온다. 삼천포항까지는 통영∼대전고속도로 진주갈림목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사천나들목으로 나와 남쪽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가족과 함께라면 사천의 비토섬에 우리리조트(055-855-4242)가 있고, 실안해안이 시작되는 쪽에 삼천포 마리나리조트(055-835-2525)가 있다. 남일대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엘리나스 호텔(055-832-9800)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삼천포에는 훌륭한 아침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삼천포항 바로 앞의 대원해장국(055-832-6835)이다. 주소는 사천시 어시장길 12번지. 간판이 해장국집이지만 해장국은 없고 6000원짜리 백반만 판다. 지방에서 혼자 밥 먹는 이른바 ‘혼밥’은 괄시받기 마련인데, 여기는 사정이 다르다. 늘 경매가 이뤄지는 곳이라 경매 입찰자와 어부, 좌판 행상들이 새벽부터 혼자 찾아와서 밥을 챙겨 먹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혼자 내는 백반은 푸짐하고 정갈하다. 금방 만든 찬들과 뜨끈한 국, 갓 구워낸 싱싱한 생선 두 토막이 상에 오른다. 여기서는 ‘쌈뱅이’라 부르는 흔히 맛보지 못하는 생선이다. 삼천포 회 맛을 보려면 새로 정비된 용궁수산시장에서 회를 떠다 초장집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곳이 최고의 자연산 전복만 팔다가 경기 없는 요즘에는 양식전복도 양심껏 적어놓고 취급하고 있는 삼천포항 위판장 내 29번 해녀횟집(055-833-0588)이다.


사천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6년 8월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