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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0. 22. 22:47

경남 합천 황매산 자락의 층층이 겹쳐진 다랑논이 그려내는 선이 조형적이다. 척박한 땅에서 생계의 고된 노동으로 이뤄낸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다. 전체 면적의 90%가 산으로 이뤄진 합천에는 산자락이 흘러내리는 자리마다 이런 다랑논이 있다.



경남 합천에 산이 자그마치 ‘1000개’가 넘는다면 믿어지시는지요.

경남에서 군 단위 중에서 가장 넓은 땅인 합천은 9할이 산입니다. 꿈틀거리는 소백의 지맥이 지나간 자취마다 산이 구겨놓은 은박지처럼 펼쳐집니다. 봉우리와 봉우리가 능선과 능선으로 만나는 땅인 것이지요.

합천의 산은, 그러나 강원도의 그것처럼 거칠고 험준하게 접근을 막아서지 않습니다. 합천의 산들은 저마다 제 발치 아래 작은 마을과 물결치는 다랑논을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주며 삶을 힘껏 껴안고 있습니다. 비탈진 산자락을 다듬어 만든 다랑논은 고단한 삶이 이뤄낸 생업의 풍경이 이렇듯 아름다울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풍이 당도하기 전에 합천으로 향했던 건 이런 눈부신 풍경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층층이 계단을 이뤄 흘러내리는 황금빛 다랑논에 청명한 가을 햇살이 비껴 드는 순간의 느낌은, 아름답다기보다는 감동에 더 가까웠습니다. 중중첩첩(重重疊疊)한 합천 땅에는 이런 경관을 자아내는, 고도를 높이고 뒤로 물러서 조망할 수 있는 산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합천에는 어디든 다랑논이 펼쳐지지만 부드러운 논이 그려내는 선들이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장 빛나는 곳이 바로 합천호를 끼고 있는 대병면 일대입니다. 이쪽에는 금성산과 악견산, 그리고 허굴산이 있습니다. 합천의 가야산과 황매산의 명성에 가려 이름마저 낯설지만, 그 산에서 내려다보는 합천호와 다랑논의 빼어난 가을 풍경은 이름난 단풍 명산을 능가합니다. 가히 ‘가을의 전망대’라 할 수 있는 곳들입니다. 여기다가 푸른 산 그림자가 파도처럼 일어선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오도산, 여느 해보다 더 화려하게 시작된 황매산의 억새, 그리고 찬 서릿발 같은 기운의 선비 남명 조식의 자취를 이어붙여 봤습니다.

경남 합천의 합천호를 끼고 우뚝 솟아있는 금성산의 팔분능선에서 바라본 풍경. 금성산은 황매산 자락에서 합천호 쪽으로 밀려 내려온 대병면 일대의 거대한 다랑논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 산에서 밖을 보다…황금빛 다랑논

산이 보여주는 경관은 ‘안’과 ‘밖’ 두 가지다. 산에서는 ‘안’을 보는 시선이 있고, 또 높은 고도에서 ‘밖’을 보는 시야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밖’을 보는 경관에 대한 얘기다.

경남 합천의 합천호를 끼고 있는 금성산(592m). 이 산이 각별한 건 황매산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린 대병면 일대의 다랑논을 발아래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합천에는 다랑논이 도처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합천 땅에 산이 1000개가 넘고, 그 산의 비탈진 능선마다 궁벽한 가난과 노동으로 일군 다랑논이 계단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랑논은 한낱 풍경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층층이 겹쳐진 논에는 노동으로 일궈낸 뭉클한 아름다움이, 비탈진 경사면에 기어코 논배미를 만든 정성이, 계절을 건너가는 시간이 깃들어 있다.

합천에서 만난 다랑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형미로 반짝이는 곳이 바로 합천호 부근의 대병면 일대다. 잘 익어 황금빛으로 물든 논들이 호수 쪽으로 흘러드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쪽의 다랑논은 그러나, 워낙 규모가 커서 가까이 다가서면 그 면모가 다 드러나지 않는다. 희미한 산길을 짚어 금성산에 오른 건 이 때문이었다. 산 아래서 올려다본 금성산 암봉의 위세만으로 거기가 다랑논을 굽어보는 특급 조망대임이 능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해발고도 600m가 채 안 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금성산은 오르기가 쉽지 않다. 시쳇말로 ‘동급 최강’이다. 등산로는 정비돼 있지 않고 경사는 가파르고 길은 거칠다. 나뭇가지에 드문드문 매달아 놓은 산악회 리본이 길잡이를 했지만, 몇 번이고 길을 잃었다. 하지만 다듬지 않은 숲길에는 반들반들 길이 난 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량한 기운이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팔분능선에 오르자 이내 암릉 구간. 시야가 트이면서 합천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쪽에 태풍이 몰고 온 가을비가 내렸다지만, 지난여름의 가뭄 탓인지 수위가 저 아래다. 저수지 수변이 발목이 드러난 바지처럼 껑충한데, 어쩐지 그 풍경이 황량하다기보다는 이국적이다.

경관의 압권은 마을 쪽이다. 황매산 자락을 따라 다랑논이 계단을 이뤄 바다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압권이다. 군데군데 집들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케 하는 황금빛 논에 둘러싸인 형상이다. 부러 경관만을 위해 가꾼대도 지형과 경사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금성산 정상의 암봉에는 낡은 철계단이 놓여 있다. 산악회 회원들이 매어놓은 듯한 급한 경사구간의 밧줄 몇 개 외에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계단을 딛고 정상에 오르니 360도의 시야가 펼쳐진다. 금성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다는데, 시야를 가릴 게 없으니 그럴 법했다. 합천호를 마주하고 섰다가 뒤로 돌아서니 허굴산이 다랑논을 치마처럼 두른 채 우뚝 솟아있다. 풍요로운 가을을 보는 최고의 전망대. 금성산은 정상에서의 경관만으로 거기까지 오른 노고에 값하고도 한참 남았다.

# 왜군에 맞선 의병의 결기…악견산

▲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의 용암서원 앞에 세워진 남명 조식 흉상. 흉상 옆의 비석에는 남명이 서릿발 같은 기개로 쓴 상소문이 적혀 있다.

금성산이 있는 대병면 일대에는 악견산과 허굴산이 있다. 금성산과 악견산, 허굴산은 암릉이 험준하기로 이름난 삼산(三山)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름 4㎞의 원을 그리면 그 안에 산 세 개가 모두 들어올 정도로 모여 있다. 그럼에도 단 한 곳도 산의 능선이 겹치지 않는다. 세 개의 산이 서로 기대지 않고 들판에 저마다 독립해 우뚝 서 있다는 얘기다.

다랑논을 보기 위해 먼저 금성산을 올랐지만, 이 세 곳의 산 중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악견산이다. 악견산은 ‘큰산 악(岳)’에 ‘굳을 견(堅)’자를 쓰는데, 해발 634m의 산이 온통 근육질의 바위들로 뒤덮여 그 이름처럼 늠름하고 험상궂다. 산세의 비범함으로 겨룬다면 세 산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악견산에는 조선시대 석성인 ‘악견산성’의 자취가 남아있다. 산성은 본래 조선 세종 때 처음 쌓아진 것. 그 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의병장이 도체찰사 류성룡의 지시를 받아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성을 보수한 건 관군이 아니라 권양, 박사겸, 박엽 등 합천의 의병들이었다. 이들은 힘을 모아 성을 쌓았고 주민들과 함께 여기서 왜적을 맞아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악견산성에 전해지는 임진왜란 당시 전투 상황의 한 장면. 의병들이 맞은편 금성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악견산의 바위와 줄로 매두고 삿갓에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띄워놓았단다. 왜군이 산 아래쪽에 진주하자 달밤에 줄을 당기는 전술을 썼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허수아비를 본 왜병들이 홍의장군 곽재우로 여겨 겁에 질려 도망쳤다는 이야기다. 척박한 산성에서 7년 동안의 싸움은 얼마나 고됐을까. 의병장들은 이 와중에 건강을 해쳐 세상을 떴다. 박사겸도, 김면도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울퉁불퉁한 기암들로 우뚝 서 있지만, 악견산 산행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산행 들머리는 3곳이지만 원점회귀를 하려면 합천 지역 의병을 제사 지내는 임란창의기념관 맞은편에서 출발하는 편이 낫다. 여기서 정상까지 1시간 30분 남짓이면 닿는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악견산성 자취가 가장 뚜렷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합천호 경관도 빼어나다.

허굴산은 세 곳의 산 중에서 가장 높은 681m이지만, 악견산이나 금성산보다 발길은 뜸한 편. 길목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의 굴 안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놓고 올라가 보면 부처님은 없고 빈 굴이 있다 해서 ‘허굴산’이라 불린다. 합천 사람들은 이 세 개의 산에다 황매산과 합천 보조댐 쪽의 의룡산(481m)을 보태서 ‘합천오악’이라고 부른다. 건각들은 이 중에서 황매산을 빼고 허굴산, 금성산, 악견산, 의룡산을 한데 잇는 ‘허의종주’ 산행을 하기도 한다지만, 독립된 네 개의 산을 바닥부터 오르내려야 하니 바삐 걷는대도 꼬박 하루가 걸려 웬만한 체력으로는 언감생심이다.

# 산에서 산을 보는 곳…오도산

합천에서 가을을 황홀하게 조망하는 산은 또 있다. 산에서 산을 보는 곳. 바로 합천의 한가운데 솟은 오도산이다. 해발 1134m. 오도산은 깊고 크다. 1962년 이곳에서 남한 땅의 마지막 야생 표범이 포획됐을 정도다. 그러나 1982년 산 정상에 한국통신(KT)무인중계소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놓여 있다.

도로가 놓였지만, 아직도 길은 멀다. 산 아래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8㎞. 무인중계소가 서 있는 정상에 오르면 그곳이 ‘산에서 산을 보는 곳’이란 문장이 단박에 이해된다. 여기에 올라 합천 땅을 바라보면 발밑으로 첩첩한 산들이 파도처럼 일어서 있다. ‘산이 만들어낸 바다’의 풍경이다. 능선과 능선이, 봉우리와 봉우리가 겹쳐지니 지도를 펴놓고도 산 이름을 짚을 수조차 없다.

이런 경관이 가장 극적으로 펼쳐지는 게 요즘 같은 가을이다. 이곳에 서보면 이른 아침 가을의 산빛이 초록이 아닌 청색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산 그림자가 겹치는 골짜기마다 푸른 안개가 흘러다니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다.

오도산 정상에서 합천 쪽의 산을 바라보다 뒤로 돌아서면, 거기에는 또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긴 능선의 우람한 산줄기 아래 거창 가조면에 펼쳐진 거대한 논들이 보여주는 경관이다. 그 풍경의 규모가 어찌나 거대한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가을 합천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황매산이다. 황매산의 소개가 뒤로 밀린 건 경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구태여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될 만큼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도산처럼 정상까지는 아니지만 황매산도 정상의 턱밑인 오토캠핑장이 있는 휴게소 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단번에 오를 수 있다.

황매산은 능선이 온통 붉게 물드는 철쭉군락이 으뜸이지만, 가을 억새의 물결도 못지않다. 억새는 이제 막 솜털 같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여느 해보다 군락이 더 넓고 꽃도 더 화려하다. 억새는 해발 1000m의 배내봉 주변 능선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발 850m의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걸어 정상 아래 산성전망대와 배내봉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억새밭 사이를 산책하듯 돌아보는 코스다.

합천 황매산의 산성전망대 부근 모습. 황매산의 억새는 이제 막 솜털 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 황매산 억새는 여느 해보다 훨씬 더 좋다.


# 서릿발 같은 선비가 써내려간 상소문

합천의 가을 여정에서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으니 바로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 남명 조식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의(義)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서슬 퍼런 선비. 그는 스스로 옳다고 믿은 것에 온몸을 던졌다. 목숨을 걸고 타락한 권력을 질타하며 무기력한 지식인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사실 남명의 자취는 합천보다 산청이 더 뚜렷하다. 환갑의 나이에 합천에서 거처를 옮겨 여생을 보낸 곳이 바로 산청의 산천재다. 남명이 심었다는 매화나무 ‘남명매’도 산천재 앞에 있고, 그를 기리는 남명기념관도, 그를 배향한 덕천서원도, 그가 드나들었던 백운계곡도, 제자가 지은 세심정도 모두 산청에 있다. 그럼에도 그의 고향인 합천의 삼가면 외토리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 생가가 복원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을사사화로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 중이던 남명이 왕에게 올린 ‘단성현감 사직소’를 지은 자리인 뇌룡정이 그곳에 있어서다.

명종은 남명이 벼슬을 거절하자 종6품 자리였던 단성현감직을 내렸다. 서울로 올라오길 한사코 거부하니 이웃마을 단성이라면 그걸 마다할까 싶어서 내린 벼슬이었다. 그러자 남명은 감사히 받기는커녕 현감직을 거절하며 왕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그게 바로 단성현감 사직소다. 칼을 벼린 듯 상소문의 문장은 섬뜩할 정도로 서슬이 퍼렇다. 그 내용을 옮겨 적어보면 이렇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그릇되었으며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갔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시시덕거리며 주색을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어물거리며 오직 뇌물로 재산만 불리고 있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에게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합니다.”

급기야 남명은 상소문에서 명종을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고아’라고 일컫고, 문정왕후를 ‘구중궁궐의 한 과부’라고 묘사했으니 조정이 발칵 뒤집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소문은 왕권과 실세들의 무능과 타락을 정면으로 겨눴다. 왕조시대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글이 어찌 당시의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었을까. 왕조의 권력은 지금 자취도 없지만, 남명의 상소문은 용암서원 앞에 세워둔 비석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무성했던 잎들이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이 되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 가을에, 460여 년 전 서릿발 같은 기운의 한 선비가 목숨을 걸고 써내려간 상소문을 읽는다.



◇ 합천 대병면 가는 길 = 대전∼통영 고속도로 생초나들목으로 나와서 함양방면으로 우회전해 고읍교차로에서 산청방면 3번 국도로 올라탄다. 3번 국도 오부교차로에서 내려 오부면사무소에서 U턴해 1026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삼거마을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500m쯤 가다 합천 대병방면 오른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합천호와 대병면사무소가 나온다. 면사무소 앞 호반도로에서 보면 금성산과 악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성산 뒤쪽에 허굴산이 있다. 오도산은 묘산면사무소에서 묘산초등학교를 지나 500m쯤 가다 KT중계소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산 정상으로 가는 외길로 접어든다. 정상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8㎞를 달려야 하는데 도로 폭이 넓지 않아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다랑논 너머로 합천호가 내려다보이는 대병면 일대에는 펜션이 여러 곳 있다. 그중 추천할 만한 곳이 ‘수려한합천관광농원’(010-8519-5197)이다. 대병면 일대의 다랑논을 굽어볼 수 있는 작은 야산을 깎아 그 정상에다 펜션을 들여놓았다. 단층짜리 객실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마당에서 다랑논이 내려다보인다. 펜션은 주말에도 방이 여유 있는 편이지만,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펜션도 들머리도 쉽게 찾을 수 없다. 다랑논 위쪽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펜션(055-931-2343), 무지개펜션(070-8800-2345), 동화속펜션(055-931-1080) 등도 괜찮다. 맛집으로는 합천초교 맞은편의 어신민물매운탕(055-931-1266)이 첫손으로 꼽힌다. 어탕국수도 좋고 메기매운탕도 푸짐하다.


합천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