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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 서거 180주기 기념 학술회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3. 28. 23:03

茶山 서거 180주기 기념 학술회의

입력 : 2016.03.28 03:00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강진 유배 시절에 초인적 노력으로 자신만의 학문을 정리했다. 유배 해제 이후 자신의 학문을 한 단계 도약시켰으며 이를 통해 '제3의 다산'이라는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성을 아주대 사학과 교수는 강진 유배 시절(1801~1818) 정약용의 학문적 자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정약용 서거 180주기를 기념해 지난 25일 다산학술문화재단(이사장 정해창)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 ''해배(解配)' 이후의 다산'에서다. 해배는 '유배 해제'를 뜻한다.

조 교수는 이날 '해배 이후의 다산'이라는 발표문에서 "유배 시기에 다산은 그 이전에 알았던 경학(經學) 지식을 심화시켜 자신의 독특한 육경사서학(六經四書學)을 완성했고 이를 토대로 이전의 단편적 개혁안을 '경세유표(經世遺表)'로 정리하는 한편 , 지방행정 운영 개선안으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저술했다"고 말했다. 정약용의 생애는 유배 이전과 유배기, 해배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유배 시기의 치열한 연구와 저술 작업 덕분에 유배 해제 이후 '제3의 다산'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산학술문화재단은 1998년 설립 이후 다산학 발전을 위해 '정본 여유당전서'(2012년) 출간 작업 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