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정서情緖의 녹화綠化를 향해 가는 가지 않은 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3. 1. 18:23

<산림문학 시평>

정서情緖의 녹화綠化를 향해 가는 가지 않은 길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산림문학』을 읽다보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이 떠오른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인적이 끊긴 험난한 길을 택한 사람(話者)은 마지막에 이렇게 토로하며 끝을 맺는다.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sigh’를 ‘한숨’으로 번역함에 따라 혹자或者는 험로를 택한 자신을 후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보편적 행복의 길을 버린, 먼 불행을 예감하는 고독의 시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가 회자되는 분명한 이유는 타인과는 다른, 평탄한 삶을 버리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데 있고, 험로를 마다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더 풍요로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메시지를 던진데 있다고 본다. 따라서 sigh는 한탄의 한숨이 아니라 안도의 한숨으로 받아들임이 타당하다. 『산림문학』을 접할 때마다 프로스트의 시가 떠오르는 까닭은 『산림문학』』이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문학의 보편적 위의를 넘어서서 ‘숲사랑 ․ 생명존중 ․ 녹색환경보존’(『산림문학』의 얼굴, 『산림문학』2014년 가을, 겨울호 권두언, 김청광)의 실체를 구현해야 할 의지를 표명한 데에 있고 그 길이 또한 만만하지 않은 험로임을 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림 山林은 모든 생명의 탄생지이다. 물이 시작되고 그 물에 비롯된 생명의 잉태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산림인 까닭에 우리는 힐링의 장소를 넘어서는 성소聖所로서의 산림을 향해 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급속한 도시화, 여가의 증대, 교통의 편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산림 山林은 천박한 자본을 축적하는 상업의 수단으로 오염되고 있다. 산에 든다는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진 산꾼인 아니라 정복욕과 제 몸의 건강을 추스르려는 등산객들의 인적人跡과 스틱으로 길이 무너지고 그 산과 숲에 목숨을 바친 동물들을 밀렵하는 오늘의 자연은 ‘가지 않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길’이어서 반드시 ‘가야할 길’로 엎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산림문학』의 시인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당대의 욕망을, 그 실체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책무를 암묵적으로 지고 있다. ‘조용히 움직이는 바람의 흔적으로/ 숲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다 - (「숲의 소리를 들었는가」4연 부분, 조병무)’는 경고를 무겁게 받들고, ‘톱날이 쓸고 간 그루터기 위로/ 다시 생명이 움트고/ 마침내 붉은 꽃 한송이 피었다- (「벌목장에서」, 부분, 곽효환)’와 같은 생명의 복원력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무위 無爲의 진정한 의미를 궁구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연물에 대한 영탄과 단조로운 미적 묘사, 客觀的 相關物 objective correlative로서 자연을 남용하는 시작 詩作은 더 이상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인을 단순한 자연의 영탄자로 떨어뜨리는 난국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 시단 詩壇의 스펙트럼은 깊고도 넓다. 전통적인 서정시부터 정신의 해체를 넘나드는 실험적 지평까지 주류 主流가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는 다양한 시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국에서 각각의 시인은 그 모두를 포용할 수도 없고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점에서 『산림문학』이 지향하는 길이 뚜렷한 이상, 『산림문학』의 시인들은 스스로 '가지 않은 길'을 가슴에 품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가지 않은 길'을 더 많이 만드는 일이 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큰 숲

작은 돌멩이 작은 물방울 하나

크고 작은 것 구분 없이

모두 떳떳한 주인으로 한데 어울린 그곳

 

 

 

...중략...

 

 

큰 숲에서 큰 숲과 함께

큰 숲의 꿈을 꾸리라

마침내 그곳에서 큰 숲이 되리라

 

- 김청광, 「큰 숲으로 가는 길․ 1」, 3연, 마지막 연

 

큰 숲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모순덩어리인 이 사회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적자생존의 쟁투가 '큰 숲'에도 벌어지고 있지만 인간을 벗어난 자연은 증오가 없다. 자칫 허황된 염원으로 비쳐질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큰 숲이 되겠다는 언명은 작으면 작은대로 순명하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명이다. 자신을 낮추고 순명을 꿈꾸는 것은 승자 독식, 물신 物神의 풍조가 만연한 이 때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덕목이지 않은가! '큰 숲'은 만인평등의 이상향인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는 자족自足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설악산 나무에 모조리 ‘님’자 하나씩을 붙여

격상시키니 범접 못할 영기를 거느리고 계신 듯 했고

수 壽를 다한 고사목 또한 신령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 이충희, 「가을 설악에서 깨우치다」 4연

 

 

「큰 숲으로 가는 길․ 1」과 마찬가지로 「가을 설악에서 깨우치다」도 시적 기교를 억제하고 화자의 정서를 직설적 화법으로 그려내고 있

으나 그럼에도 시가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생명이 있는 모든 실체에게 '님'의 호칭을 부여할 때 세상은 얼마나 환해지는가! 갑과 을이 으뜸과 버금이라는 아름다운 상생을 의미하던 시간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조잡한 잣대와 편견으로 잘못된 행위를 정당화하는 명칭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꾸짖고 반성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클 이유가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산림문학』 통권 20호(2014년 가을. 겨울호)는 풍성한 시단을 꾸며 주었다. 산림문학상 수상작품, 초대시, 문학회 탐방, 산림문학이 만난 문인 등의 코너에서 색깔이 다른 다양한 시편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특별했고, 30명의 『산림문학』 시인들의 시들을 일별하며 산림문학이 걸어가야 할 길을 예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어찌 되었든, 시대가 바뀌어도 에즈라 파운드가 설파했던 시의 네 가지 요소 즉, 센스 sense(지적인 감각), 사운드sound(음악성), 이미지image(심상,형상), 톤 tone(시인의 세계관)을 조화시킨 참신한 시인들이 새 봄을 맞이하여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 인용된 시

 

숲의 소리를 들었는가

 

 

 

조 병 무

 

 

아무도 모른다

숲의 소리를

 

 

이웃하는 새들이 찾아와

들려주는 새벽 무한의 소리를

누군가 엿듣다 달아나는

시늉 속에 숲은 마음을 연다.

 

 

늘어진 나뭇가지 붙들고

세상 찾아 헤매는

청설모 다람쥐 오고 갈 때

들었는가 또 한 소리를

숲은 흔들리며 마음을 숨긴다

 

 

어느 결

나뭇잎 사이사이 스며드는

조각난 햇빛 모서리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바람의 흔적으로

숲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다

 

 

사람들아

숲과 살아가는 그 많은 생명과 환희

그들 삶의 소리는 소리일 뿐

 

 

숲의 형상에 숨겨놓은

영령들의 미소 따라

조용한 울림으로 오는

잔영의 의미를

 

아무도 모른다

숲의 소리인지를

 

                           *2014년 산림문학상 수상작품

 

 

벌목장에서

 

곽효환

 

 

톱날이 쓸고 간 그루터기 위로

다시 생명이 움트고

마침내 붉은 꽃 한송이 피었다

쓰러진 상처를 딛고 핀 희망

죽음을 딛고 일어선

그 굵고 선명한 눈물

 

 

큰 숲으로 가는 길 ․ 1

 

김 청 광

 

 

큰 숲을 향하여

길을 떠난 때가 언제였던가

단풍잎 곱게 물드는 가을 이었던가

조용히 눈 내리는 겨울이었던가

 

 

내 슬픔의 어느 갈피에

고통의 어느 절박한 모퉁이에

큰 숲을 그리는 진실한 염원이 있어

꿈속에서도 큰 숲으로 가고 있는 것이냐

 

큰 숲

작은 돌멩이 작은 물방울 하나

크고 작은 것 구분 없이

모두 떳떳한 주인으로 한데 어울린 그곳

 

큰 숲은 적막한 침묵으로

어서 오라는 말 한 마디 없는 그런 곳일지라도

내 슬픔 고통 알뜰히 위로 받지 못할지라도

그곳에 깃들인 영원한 생명의 노래

그 믿음 하나로

큰 숲으로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다.

 

 

큰 숲에서 큰 숲과 함께

큰 숲의 꿈을 꾸리라

마침내 그 곳에서 큰 숲이 되리라

 

 

가을 설악에서 깨우치다

 

 

이 충 희

 

 

가을 설악에 들어 나무를 봅니다

만산홍엽입니다

 

 

나무도 저쯤의 경지에 이르면

하나의 세계를 이루리라 믿게 됩니다

 

 

내외 설악이 만나는 한계령 부근의 나무는

그냥 나무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조심스러워

님字 하나씩을 붙여 부르기로 했습니다

 

 

소나무님 상수리나무님 피나무님 사스레나무님

엄나무님 자작나무님 굴참나무님.....

설악산 나무에 모조리 '님'자 하나씩을 붙여

격상시키니 범접 못할 영기를 거느리고 계신 듯 했고

수 壽를 다한 고사목 또한 신령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설악의 나무들은 목신의 반열에 이른 듯

장엄한 위엄이 있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인간인 나는 거기

자연으로 계신 나무에 엎드려 절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