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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인론·시평

시의 공간 : 동두천 ․ 연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2. 24. 21:00

시의 공간 : 동두천 ․ 연천

남는 자 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땅

 

나호열

1호선 전철이 북으로 달리면서 가슴에 품는 풍경 속에 동두천과 연천이 있다. 동두천의 끝자락, 소요산역에서 전철이 몸을 돌리고 나면 그 옛날 금강산으로 향하던 경원선 철로가 동족상잔의 격전이 펼쳐졌던 백마고지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적막강산 속에 숨은 듯 드러나는 군영軍營이 마을보다 많은 땅.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랑할 수도 없는 적敵(?)과 마주하는 철조망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땅. 동두천과 연천을 이야기하려면 불편하게도 전쟁, 골육상쟁이라는 괴로운 낱말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과민 過敏한 탓일까?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며 펼쳐놓은 들판이 비옥했던 탓에 아득한 구석기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터를 잡았고, 삼국의 쟁투가 끊이지 않았으며, 끝내 외세(唐)를 몰아내는 결정적 전투가 벌어졌던 매초성이 -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 산성으로 추정되는 - 전설로 숨어 있는 폐허의 성터는 참호로, 교통로로, 산객들의 등산로로 무심히 버려져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 외세의 군대가 백 년 넘게 이 땅을 밟고 선 기억이 얼마나 되는가? 반 세기 넘게 일제의 군마가 유린하고 난 다음에는 성조기를 앞세운 탱크가 또 반 세기 가까이 굉음을 울리는 중첩된 기억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대중에게 아프게 각인시킨 시가 여기에 있다.

 

동두천(東豆川) · I

 

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신호등

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

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

역두(驛頭)의 저탄 더미에 떨어져

몸을 버리게 되더라도

배고픈 고향의 잊힌 이름들로 새삼스럽게

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은 것을

발 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덜미에 부딪쳐 와 끼얹는 바람

첩첩 수렁 너머의 세상은 알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으리라

안으로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이제 벗어날 수 없어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떠나야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

 

 

1979년 발간된 김명인의 시집 동두천(東豆川)에 실린 9편의 연작시는 단지 동두천이라는 지역의 신고 辛苦를 드러내었다기보다는 산업화 이전 궁핍했던 우리의 삶을 외세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기지촌의 상징으로 형상화한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미군에게 몸을 팔아 연명해야하는 여인들과 대책 없이 태어나고 버려진 혼혈아들과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가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한 때의 역사가 일회적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되는 인간의 원초적 조건임을 ‘더러운 그리움’으로 짚어냄으로서 동두천의 신생 新生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이다. 양공주라 손가락질 하고 혼혈아라 멀리했던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것,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재하는 완성되지 않은 불구의 휴머니티의 환상을 깨는 것 이야말로 무한반복의 슬픈 역사를 단절시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잠시 머물렀다 떠난 시인이 일러준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 시 「東豆川Ⅳ」 부분

 

 

오늘의 동두천은 그러므로 예전의 동두천이 아니다. 여전히 미군 기지가 시내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어도 이제는 당당히 그들을 향해 소리칠 수 있고 어깨를 부딪칠 힘이 있다. 낯 선 외국인 병사들의 눈에는 약자를 바라보는 연민의 쾌감이, 국어를 함께 쓰는 동족에게서는 능멸의 외면이 가득했어도 그 땅을 사랑하고 보듬는 사람들이 살아 있다. 비록 타 지역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동두천에도 대 여섯 개의 문학회가 결성되고 100 여명의 시인, 작가가 향토를 가꾸는 땅이 되었다.

 

동두천, 하고 가만히 읽어보라. 아랫목에 꽁꽁 묻어두었던 밍크담요 속 밥주발처럼 얼마나 따뜻하고 순진한 발음인가. 나의 살던 고향은, 무수한 소문의 삐라꽃이 피고 떨어지던 동두천이다. 그리고 나는 1957년 동두천 출생이다

 

2000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한옥순 시인의 위와 같은 술회에 드러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동두천의 시인들은 음습한 과거가 아닌 당대 當代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90년대 동두천 문학의 태동이 20 주년을 맞이한 여성문학회인 【소요문학】에서 시작된 까닭에 유난히 여성 문인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한옥순 시인도 그 중의 하나로서 자연(현상), 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하는 시인(또는 화자 話者)의 이야기를 섬세한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필치가 눈에 띈다. 그의 시집 『황금빛 주단』은 여성성, 빈곤(한 삶), 소외, 자연과의 소통을 해학과 아이러니로 풀어낸 바 있다.

 

 

저녁 무렵, 베란다로 이어지는 주방문이 수상쩍다

누군가 꼭 서 있을 것 만 같은 묘한 기색이 들어

문을 살그머니 열었더니만

이런 세상에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금빛 주단이 발아래로 깔린다

그 한 자락을 끌어당기려 해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그냥 깔아 둔 채로 멍하니 서 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그 위에 누워본다

엎치락뒤치락 거리니 온 몸에 휘휘 감겨온다

비단을 두른 양 부드럽고 따순 기운에 눈마저 감긴다

꿈을 꾸듯 황홀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서서히 몸이 식어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어느새 몸에 감겼던 비단이 스르르 흘러내리고 있다

흘러내려가는 비단은 벽을 타고 창을 너머 가고 있다

아름다운 주단을 깔아주고 간 이는 누구일까

이내 황홀한 기운을 다시 걷어가는 이 누굴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서운타고 해야 하나

내일 이맘때엔 소쿠리라도 하나 놓아두어야 할까보다

 

- 한옥순, 「황금빛 주단」 전문

 

일찍이 수필로 작품활동을 하다가 계간 『시에』를 통해서 등단한 문선정 시인도 앞으로 기대가 되는 시인으로 눈여겨 볼 만하다.

 

 

비의 혀가 닿는 곳마다

잦은 비명소리가 난다

 

 

덩치 큰 사내가 어깨를 들썩이는 것처럼

들릴 듯 말 듯,

 

 

저 꾀병 같은 신음 소리

경건하게 혹은 음탕하게

 

 

이 비 그치면 붉다 못해 눈이 시릴

저 숲

지금 숨차게 사랑을 하시는 중이시라네

 

 

- 문선정의 시 「오오, 사랑을 하신다」 전문

 

이 밖에도 동두천 시단을 이끄는 많은 시인들이 있으나 지면의 제약으로 상세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연천 또한 동두천과 마찬가지로 100여 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연천문인협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접적 지역이기는 하지만 한탄강 전곡지역에는 선사시대 구석기 유적이 있고, 삼국의 쟁투를 증언하는 성과 보루들이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 산재하고 있는 역사의 고장인 까닭에 자연친화적이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을 하는 작품들을 산견할 수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바람도 얼어붙은 잡목숲

적막하구나

뭍혀버린 돌도끼 찾으려

붉은 점토벌 헤매던

선사인들의 영혼도

겨울잠에 들었나보다

 

 

헛기침을 해

영하의 대기 울려본다

갑자기 섬뜩함 느껴

주위를 살피다 하늘 보니

검은 새떼가 배회하는

전곡리(全谷里)상공 아득히 높다

차마고도(茶馬古道) 어느 산정(山頂)에서

조장(鳥葬)을 치르고 왔음직한

독수리떼

어느 상한 살점 냄새라도 맡은 것일까

아니면

지금도 구천(九泉) 떠돌고 있을

선사인들의 영혼 위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는 것일까

 

- 이 돈 희 「겨울. 선사유적지」 전문

 

 

연천문학을 이끌고 있는 이돈희 시인은 1997년 “내일의 시”로 등단하고 <그리고 문학회> 회장과 연천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연천의 역사와 풍광을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인으로 꼽힌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곳이 연천이지만 연천을 대표하는 시인이 있으니 시인 김상용과 박희진이 바로 그들이다. 월파月波 김상용金尙鎔(1902- 1951)은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에서 태어나 일본 릿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수를 지냈으며 1934년 《문학》에 발표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집으로 <망향> (1939년)이 있으며, 시 이외에 많은 수필과 번역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갱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

 

최근에  친일 작품이 발견되어 명예를 훼손하기는 했지만 자연친화적이고 도가적인 인생관을 그린 그의 시풍은 오래 기억할 만하다. 그런 까닭에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향 왕림리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김상용의 시비를 세웠으며 연천군에서도 탄생 100주년을 즈음하여 시인 김상용을 기리는 시낭송회를 개최한 바 있다. 미당 서정주가 그러하듯, 월북 작가 몇몇이 그러하듯 친일 親日과 용공 容共의 잣대에 무너지는 시인들의 삶은 곤고하기 이를 데가 없는 듯하다. 생존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연천의 시인은 박희진이다. 1931년 12월 4일에 태어나 1955년 『문학예술』지에 시 '무제'를 발표하며 등단한 박희진 시인은 예술원 회원으로 월탄문학상, 한국시협상을 비롯하여 2012년 제1회 녹색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현역 시인이다. 1979년 4월 구상具常, 성찬경 成贊慶 시인과 함께 ‘공간시낭독회’ 창립한 이래 2015년 현재까지도 시낭송의 생활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60 「室內樂」(思想世界 출판부),1965 「靑銅時代」(母音出版社),1970 「微笑하는 沈黙」(現代文學社),1976 「빛과 어둠 사이」(朝光出版社),1979 「서울의 하늘 아래」(文學藝術社)등으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십 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발간한 창작에의 열의는 그침이 없다. 1982년에 발간한 「四行詩三白十四篇」(三一堂),1997년에 발간한 「一行詩七百首」(예문관),1999년의 「百寺百景」(불광출판부)등은 시 형식의 지평을 넓히는 실험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월간 우리시에 게제된 김금용 시인과의 대담의 일부를 통해 시인의 시세계를 요약해 보고자 한다.

 

시를 쓰는 생활이란, 고려 말의 목은 이 색이 말한 “종신지락 終身至樂”입니다. 아시다시피 종신지락은 하루아침의 낙이 아니고,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나는 예술친화적 삶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싶고, 詩作을 할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詩作은 그래서 일종의 종교 같습니다. 나는 “각자覺者의 기쁨”을 말하는 불교를 믿습니다. 그러나 불교 하나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세계 어떤 종교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정상을 향해 가는 등산로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죠. 모두 하나의 정상을 향해 나가고자하는 정신, 거기에 무한한 희열을 느낍니다.

 

한국엔 원래 고유의 종교가 있었다고 봅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분명 우리 고유의 종교가 있었고, 그것이 <풍류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종신지락을 아는 사람들은 풍류도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멀리 찾을 게 아니라, 가까이 우리 삶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 익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수화, 다도 등을 통해서도 풍류도를 찾을 수 있겠지요. 구도求道이니깐요. 원래 求道에는 예술인, 기능인, 종교인이 다 포함됩니다. 그들이 다 구도하는 사람들이죠.

얼마 전 김상유 화가의 판화 “장락長樂”을 보았는데, 들판에 햇살이 쏟아지고, 꽃밭에 무수한 꽃들이 만발한데, 그 중에 홀로 한 남자가 앉아있었습니다. 이는 장락무극長樂無極“을 말하는 것이죠. 기독교에선 신락神樂(초성적 즐거움)이고, 불교에선 아정상락我靜上樂이고요. 모두 종신지락 終身至樂을 말함이니, 다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종신지락을 아는 사람들은 풍류도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멀리 찾을 게 아니라, 가까이 우리 삶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 익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수화, 다도 등을 통해서도 풍류도를 찾을 수 있겠지요. 구도求道이니깐요. 원래 求道에는 예술인, 기능인, 종교인이 다 포함됩니다. 그들이 다 구도하는 사람들이죠.

 

- cafe.daum.net/urisi에서 발췌 인용

 

서울 우이동 자락에 살고 있는 시인은 고향 연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분단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땅에서 태어났으나 끝내 그 고향을 버리지도 잊지도 못하는 마음이 시인이 지녀야할 소중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터를 잡고 뼈를 그 자리에 묻는 사람들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동두천과 연천은 통일이 되는 그 날부터는 국토의 중앙, 남과 북을 잇는 사람의 다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영통(靈通)의 기쁨 / 박희진

 

어느 시인 말하기를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왔는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아니다, 아니다.

참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온몸이 후들후들 기뻐서 떨게 된다.

 

 

영혼은 영혼과의 불꽃 튀기는 만남을 통해

둘이 하나 되는

백금(白金)의 불길로 활활 타오른다.

 

- 『영통의 기쁨』, 서정시학, 2014.

 

 

<2015년 계간 시와 산문 봄호에 게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