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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이야기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5. 21. 09:45

과학은 이야기다, 왜 겁부터 먹나

[중앙일보] 입력 2014.05.17 01:50 / 수정 2014.05.17 11:00

『다윈의 서재』 낸 장대익 서울대 교수
칼 세이건·도킨스 등의 명저 해설
가상 대담, 북 토크 형식으로 풀어
"과학이 또 다른 세월호 막을 수 있어
과학과 인문의 지식 중개자 될 것"

장대익 교수는 “과학책을 읽는다는 건 합리적 추론을 연습하는 것이고, 이런 훈련이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윈의 서재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408쪽
1만4800원


『종의 기원』을 쓴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82)은 엄청난 다독가(多讀家)였다. 식물학·동물학·지질학 등 과학책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작품을 즐겼고, 여러 학자·문인들과도 적극 교류했다고 알려진다. 다윈이 1842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영국 런던 남부 다운하우스의 서재에는 그가 읽은 1480권의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다윈의 팬’을 자처하며 오랜 기간 그를 연구해 온 장대익(43) 서울대 교수의 상상은 이 서재 풍경에서 시작됐다. “만약 다윈이 현재도 살아있다면, 그의 책장엔 어떤 책들이 꽂혀 있을까.”

 최근 출간된 『다윈의 서재』는 이렇게 장 교수가 다윈에 빙의해 고른 56권의 책을 소개하는 서평집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등 과학분야 고전은 물론이고,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리처드 탈러의 『넛지』 등 과학과 인문학이 융합된 저작들도 소개된다.

서평집이라는 정보만 듣고 책을 펼친 독자는 당황할지 모른다. 느닷없이 미국공영라디오(NPR)에서 진행 중인 대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사회자로 등장해 유명 과학자들과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과학자들의 핵심 주장에 스르르 빨려들어가게 된다. 15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장대익 교수는 “과학책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상의 대담과 북 토크라는 스토리텔링을 입혔다”며 “이야기가 있어야 사람들이 쉽게 빠져든다는 인지과학을 도입한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서평집은 많지만 과학 서평집은 드물다.

 “사람들은 과학책이라 하면 일단 겁을 먹는다.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염려다. 하지만 좋은 과학책은 복잡하지 않다. 예를 들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 각 과학책의 핵심을 쉽게 알려줌으로써, 과학책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문턱을 낮춰주고 싶었다.”

 -많은 책 중 굳이 과학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다윈·뉴튼·아인슈타인의 발견처럼, 인류 지성사를 보면 과학의 성취가 인간과 우주, 생명에 대한 생각을 엄청나게 바꿔놓았다.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인문학은 과학이 앞서 발견한 것에 주석을 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미 과학은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과학이 던지는 도전을 이해 못하면, 현대의 균형잡힌 교양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과학책을 읽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지적능력은 합리적 세계관, 과학적 세계관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이 ‘윤리적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윤리적 상상력의 밑바닥엔 과학적 추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이것을 하면, 또는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경험적인 자료를 갖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적(過積) 문제의 경우, 과학적 추론능력을 가졌다면, 여러 변수에 의해 비일상적인 상황이 닥쳤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를 시뮬레이션했을 것이다. 과학은 결과나 지식이라기보다 합리적 추론의 절차, 그 자체다. 과학책은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암암리에 과학적 세계관을 훈련시킨다.”

 장 교수의 이력은 독특하다. 로봇공학자를 꿈꾸며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지만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공학에 흥미를 잃고 역사·철학·종교책에 심취하다 전공을 바꿔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최근 40권으로 완간된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기획하기도 했다.

 -인생을 바꾼 과학책은 뭔가.

 “과학철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대학원에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진화생물학에 눈을 떴다.”

 -학문의 융합이 시대의 화두다.

 “나 역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같이 하고 싶다. 그래야 더 재밌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가 나온다. 당대 지식인 네트워크를 이끈 다윈이나 과학자·사상가들의 모임인 엣지재단의 존 브록만 같은 지식 중개자 역할을 해보고 싶다. ‘한국판 엣지’ 모임도 조만간 출범할 예정이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대익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진화학과 과학철학을 가르친다. 현재 안식년을 맞아 미국 터프츠대에서 연구 중이다. 『다윈의 식탁』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등을 썼고, 윌슨의 『통섭』을 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