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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1. 20. 17:50

[한겨레21][이명수의 충분한 사람] 무엇이 작가를 글쓰고 행동하게 만들었나
"선을 향한 지향과 아픔에 대한 공감이 우리를 고양한다"


'오랜만에 바닥 마음까지 다 얘기했지만 드라이하고 평면적으로 묘사되겠구나 생각했죠. 이 선생님을 과소평가했나봐요. 실제 글은 내 마음을 3D 화면으로 보듯 생생했어요.'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정봉주 전 의원이 내게 그랬다. 과소평가했다는 대목에서도 담담한 목소리다. 먹은 마음과 말 사이에 간극이 별로 없다. 장단 맞추듯 흔쾌하게 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안팎이 다르지 않은 정봉주라는 사람의 중요한 특질을 다시 확인하면서 가만히 웃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작가 김선우가 그렇다고 나는 느낀다. 작가 김선우와 자연인 김선우 사이에 간극이 거의 없다. 각자의 완결성을 가진 독립적인 방들이 물 흐르듯 연결된다.

직업적 경험에 의하면, 이중성에 대한 고민은 거의 모든 이들의 본능에 가깝다. 자신이 위선적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면의 자기와 외형의 자기를 일치시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조금 과장해서, 거기에 쏟는 사람들의 심리적 에너지를 모은다면 핵발전소 100개 정도의 발전 용량과 맞먹을 만하다. 그러니 그런 유의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그 힘의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다. 김선우가 가진 남다른 힘이나 매력이 있다면 그런 비축된 에너지에서 비롯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작가와 자연인, 그 부재했던 간극

김선우는 시인으로 글쟁이 인생을 출발해 지금은 소설을 겸업하는 전업작가다. 17년 동안 네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소설, 서너 권의 산문집을 내놓았으니 다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각각의 영역에서 보여준 그의 문학적 성취는 탁월하다. 문학적 힘과 매력이 흘러넘친다. '김선우라는 존재는 체질적으로 시인'이라는 자체 진단에 걸맞게 시인으로서 그의 존재감은 발군이다. 당대의 시인이라 부를 만하다. 객관적인 평가도 그렇고 시가 좋아서 한 달에 500편 이상의 시를 '좀 읽는' 나의 주관적 느낌으로는 더 그렇다.

그는 언젠가 '세상의 좋은 것들은 죄다 서로가 무엇인가의 배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김선우는 기꺼이 몇몇 사회적 이슈들의 배후가 되곤 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4대강 반대, 촛불집회,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문제에서 그랬다. 지난 10월엔 수만 권의 책을 모아 강정을 책마을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많은 배후들과 완성했다. 거기에서 당대의 시인 김선우와 공화국 시민 김선우의 얼굴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무리와 떨어져 철저하게 단독자의 삶을 고수하는 시인에게 강원도에 사는 이유부터 물었다.

-춘천에 자리잡은 지는 얼마나 됐나요.

=이제 2년 지났죠. 등단을 한 뒤 그래야 할 거 같아서 4년 정도 서울과 서울 근처에서 살다가 2000년에 문막으로 왔습니다. 제가 사람들 속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사람들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섞여 있으면 결국 내가 나를 보호 못하고 나를 잃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강원도(강릉)가 고향이라는 의미 이상이 있는 모양입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사실 그렇게 고향 의식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세상 어디를 가도 사는 데 별로 지장이 없는 사람이에요. 대도시적 삶에 대한 회의 같은 게 많아서 반대급부로 가장 사람이 없는, 그리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을 선호하다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강원도가 된 거 같아요.

-작가는 단독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단독자죠. 그런데 단독자들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조차 무리의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저는 그런 거에 적응할 수 없더라고요. 작가는 자기 세계에 대한 치열함이 있어야죠. 니체의 말처럼 '피로 써라'. 그게 실제로 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향해 가려고 하는 어떤 자세마저 없다면 작품이 타락할 수밖에 없죠.

-지금 작가 말고는 아무런 사회적 직함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해요. 시인, 소설가. 그냥 전업작가죠.

-신기하네요.

=네, 신기하죠. 저도 신기해요. (웃음)

"작가는 단독자다, 피로 써야 한다"

함께 웃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시인이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일이 로또 1등 당첨만큼이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고 있어서 '피로 글을 쓰라'는 니체의 말이 다른 의미에서 소름 돋듯 실감났다.

-사람들에게 본인이 어떤 시인이었으면 좋겠는데요?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위로들이 있잖아요. 근데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위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다들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들이잖아요. 이 시대가 되게 힘들기도 하지만 존재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산다는 것 자체가 자기 상처와 싸우는 일이고, 화해하는 일이고, 상처 속에 스며드는 일이고, 해방되는 일이고 그렇게 굴러가게끔 생겨먹은 게 인생인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었던 그 시절에 제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힘이 됐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시인의 그 희망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시집을 많이 사놓고 있다. 그가 말한 위로와 행복감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선물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도 녹취를 담당하는 인턴기자에게 주기 위해 그의 시집을 준비했다. 출발선상에 있는 젊은 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선우 시인은 폴짝 뛰듯 그 행동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글 쓰는 과정이 치열할 수밖에 없겠어요. 종일 앉아서 쓰기만 하나요.

=거의 그런 셈이죠. 지금처럼 소설의 탈고 작업을 앞두고 있을 때는 더 그렇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아, 힘들어' 그러면 침대로 가서 푹 쓰러지고 좀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뭐 좀 먹고 다시 책상으로 와요. 그러니까 약간 컬트적이에요.

-좀비인데요, 좀비. (웃음)

=잠자면서도 잠들기 전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막 생각해요. 그러면 깨자마자 자는 동안 뭔가가 저장되었다는 생각이 생겨요. 그게 방해받지 않도록 그대로 일어나서 컴퓨터 앞으로 가요. 그러곤 밤 사이에 내 무의식이 정리해 좋은 것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합니다. 확인을 했는데 '어, 이거 질 좋은데' 그러면 하루 종일 작업이 잘되는 거고 그렇지 않은 날은 종일 꼬이는 거죠. 어쨌거나 계속 그걸 붙들고 씨름하죠. 책상 앞에 앉아서 쓰고 있거나 그냥 노려보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저는 좋아요.

-매일처럼 혼자 그러고 있는 거죠.

=네.

"극한의 심적 아픔이 나를 움직인다"

철저하게 홀로인 상태에서 끌로 새기듯 글을 쓰다 절명한 < 혼불 > 의 최명희 선생이 생각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가 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끼니다 그러면서 정해놓고 먹는 건 아니에요. 글 쓰다보면 당이 빨리빨리 떨어지는 느낌이 나거든요. (웃음) 그러면 그때 잽싸게 먹어요. 주로 먹는 건 아몬드, 호두, 과일들. 일단 과일이 많아야 돼요.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삶은 고구마, 감자, 단호박 그런 거.

-밥 같은 건 안 먹나요.

=이틀에 한 번꼴로 먹어요. 반찬은 많이 필요 없고요. 맛있는 김치와 구운 김 하나면 돼요.

-그렇게 글 쓰는 일이 힘들진 않나요.

=저는 글 쓰는 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요. 특히 1년에 한 두세 달 정도 집중적으로 글 쓰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먹는 것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만 다 갖다놓고, 쓰는 일만 생각하다가 쓰고, 에너지 보충하고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좋아요.

상투적인 생각인 줄 모르지 않지만, 천생 작가로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 합장하듯.

-그렇게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이른바 사회적 이슈에 연대하는 일에 쏟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 같아요. 내 마음이 막 가고, 내가 너무 아프고, 뭔가 힘이 되고 싶고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접하면 그것에 몰두하기 위해서 다른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간들은 확 줄여요. 근래 한 2~3년은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 사회적 현장을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나요.

=모든 뉴스에 일일이 반응하다보면 내가 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지요. 내가 나를 조율하는 원칙 같은 게 있다면, 글로만이 아니라 직접 행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 가운데 하나 정도 계속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 거죠. 보통 가슴이 아픈 것보다 훨씬 더 가슴이 아프면 제가 어느 틈엔가 뭔가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김진숙 지도가 크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도 그랬죠. 강정에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예요. '아, 사람들이 힘들어서 어떡해' 이러고 있는데 구럼비가 발파된 거예요. 하루 종일 그냥 막 걷잡을 수 없이 펑펑 울었어요. 막 울다가 정신을 차리니까 내가 단식을 하고 있는 거예요.

"20대, 죽음 문턱의 고통이 나를 만들어"

시인은 제일 처음 울기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까지 우는 사람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진짜였구나.

-그래서 그런 일에 그렇게 거침이 없어 보였군요.

=어떤 사람은 제 행동을 보면서 작가가 글 쓰면 되지 무슨 단식이야, 라고 말할 수도 있죠. 근데 저는 그냥 직관적으로 그렇게 가는 거 같아요. 처음엔 글 쓰죠. 하지만 써도 써도 반응이 없다,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야죠. 일단 난 썼으니까 됐어,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작가들의 특권의식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것도 그런 것과 관계 있는 것이겠군요.

=그렇죠. 한국 사회의 작가들은 아주 이상한 특권의식이 있어요. 나 작가인데 이 정도 했으면 됐지, 나 글 썼잖아, 그런 거요. 저는 그것이 우리 사회의 작가들이 가지는 특권의식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고 더불어 사는 한 개인이잖아요. 더불어 사는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야죠. 그리고 제가 늘 불편한 것 중 하나가 작가들이 뭘 하면 항상 뭔가 더 대접받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작가들도 '나 뭐 했어'라는 게 확보되지 않으면 안 움직여요. 참 싫어요.

단호하고 송곳 같은 말을 들으며 1980년 광주의 사진을 본 스무 살 이후 격렬한 운동권으로 10년을 살았다는 20대의 김선우가 연상됐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를 20대의 그 시절이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20대 그 시절이 무척 힘들었나봅니다.

=그랬죠. 죽음 직전까지 갔을 만큼 고통스럽고 아득했습니다. 훗날 돌이켜보니 시가 나를 구원했더군요. 하지만 당시의 선택에 후회는 전혀 없어요. 그때 내가 굉장히 커졌던 걸 느끼거든요. 내가 스스로 운동권으로 살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던 세계, 사유하지 못했을 세계를 경험했죠. 그렇지 못했으면 빤하게 살았을 거 같아요.

-작가들은 자기성찰이 많은 대신 순하게 자기를 인정하고 보듬는 거를 잘 못하는 거 같아요. 약간 뒤틀리고 꼬여 있어야 작가연하기 좋은 측면도 있을 거고요. 그에 비해 선우 시인은 스스로를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20대 시절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하는 거 같은데 어떤가요.

=그럴 겁니다. 많은 작가들이 작가로서의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의 균형 유지를 되게 어려워해요. 그래서 시민으로서의 내가 있고 작가로서의 내가 있으면 작가들은 작가로서의 내 세계에 전전긍긍해요. 작가적 포지션만 강조해서 배배 꼬이는 문학주의들이 거기서 생기죠. 저도 제 삶에서 작가적 정체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죠. 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거든요.

"정서도 훈련… 중요한 건 공감 능력"

신의 솜씨로 문전 돌파 슛을 성공시킨 리오넬 메시가 그래도 '축구가 내 전부는 아니다'라고 했을 때 느껴지는 묘한 끌림 같은 느낌. 당대의 시인이라고 칭할 만한 이가 이런 성찰적 작가관을 가지고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상형이라는 거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만큼 사람에 대해 어떤 기준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네, 사람을 만났을 때 일단은 그냥 좋아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예쁜 게 더 잘 보여요. 전체적으로 다들 안간힘을 쓰면서 살잖아요. 서로서로 얼마나 짠한 존재인지 생각하면 호감만 있죠.

-그래도 이건 좋은 사람이 아니다, 판단하는 근거가 있다면요.

=음. 굳이 꼽아보라면, 사회적 약자까진 아니어도 아무튼 이 사회에서 좀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태도예요. 예를 들어 차를 함께 타고 가는데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계시는 분에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통과하면 갑자기 그 사람에 대한 호의가 막 생겨요. 반대로 그런 분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완전 싫어하게 되고요.

인터뷰하기 위해 카페에서 그를 만난 이후로 내 행동이 어땠는지를 점검하느라 한참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나요.

=방법이라기보다 저는 정서도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미 우리가 갖고 태어난 것 중 많은 부분이 망가져가기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좋은 것들을 깨우고, 행위하고, 그러면서 스스로가 예뻐지고 좋아진다는 생각으로 이 훈련을 계속해야 된다 생각해요. 그런 일에 글쓰기나 예술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한다면 그런 부분이 굉장히 크다는 거죠. 자기 속의 정서적인 파장, 선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자 하는 능력이 커지게 되면 공감 능력도 더불어 커지고, 공감 능력이 더불어 커져야 자기 속에 있는 것도 커지는 거죠.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이 유기적인 시스템에 대해서 솔직하게 반응하고 자기를 계속 그런 종류의 좋은 훈련을 하게끔 도와주면 삶이, 참 좋죠.

내가 들어본 문학에 대한 어떤 정의보다 확실하게 나를 사로잡는 느낌. 덤으로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심리적 비밀 하나를 알게 된 듯한 뿌듯함. 그런 내 느낌을 말했다면 선우 시인은 대답처럼 그 리드미컬한 목소리로 자신의 시 한 구절을 낭송해주었을 것이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김선우 '낙화, 첫사랑'

보듬듯 온몸으로 나를 받을 수 있다면, 시인 김선우처럼 우리도 그것으로 충분한 사람이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녹취 강선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