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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과 현대문화

인성과 현대문화 제 12강: 인문학의 생활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9. 8. 17:46

 

 

인성과 현대문화 제 12강: 인문학의 생활화

 

 

1. 왜 교양시민이 되어야 하나?

 

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5)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1.07.18 00:25 / 수정 2011.07.18 09:03

이념투쟁·권리투쟁에서 벗어나‘교양시민’으로 발돋움할 때 됐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경쟁과 균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송호근 교수는 “시민들이 공론장의 주체로 나와 토론하며 컨센서스(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많은 학자와 작가들이 우리 시대를 함축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불안’을 꼽는다. 지난 수 십년간 어른들은 쉼없이 일하고,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했다. 경제적으로 이룩한 성과가 작지 않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갈등하고 개인은 불안하다. 우리 사회가 불안을 딛고, 새로운 도약과 성숙을 향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사회학자 송호근(55·서울대 사회학) 교수를 만났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장으로 한국 사회의 현안과 주요 쟁점을 짚어온 학자이자 칼럼니스트다. 송 교수는 “우리는 지금 교양시민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고주의와 결별하고, 공공선의 가치를 위해 공론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개인주의의 확립이라고 했다.

 

송호근 교수의 책·책·책◆『복지국가의 태동: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나남, 2006)=한국의 복지현실과 복지정치의 특성을 분석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복지국가 기반을 잡았음에 주목.◆『한국의 평등주의와 그 마음의 습관』(삼성경제연구소, 2006)=평등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조명. 그 역사적 형성 과정을 전쟁과 산업화 시대의 경험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21세기북스, 2005)=노무현 정권의 급진 민주화 프로젝트가 몰고 온 반발(backlash)을 분석하고 진보정치의 미숙함을 논의했다.◆송호근=1956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학·석사. 미국 하버드대 박사(89년).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방문교수, 서울대 대외협력본부장,『Korea Journal』편집위원, 감사원 자문위원장,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역임. 94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정재승(이하 정): 칼럼을 한 이십 년 써오셨는데, 폭넓은 문학 편력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송호근(이하 송): 문학은 모든 인문학의 고향이죠. 저도 문학으로 출발해 사회학으로 왔어요. 일부 학자는 칼럼을 잡글이라고 폄하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칼럼은 멋진 장르에요. 이익의 『성호사설』,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다 칼럼집이에요. 칼럼은 설(說), 책문(策文)의 현대적 변용이죠. 교수와 지식인에겐 가장 유용한 장르입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자기 지식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는 겁니다. 현학적 내용과 전문용어로만 채워진 글은 대중이 보지 않습니다. 쉬운 언어, 논리와 감성이 동시에 들어가야죠. 독자의 고민을 헤아리려면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죠. 

▶정: 최근 칼럼에서 이인수 시인의 시 ‘고등어’를 인용하며 이 시대를 ‘향수’와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셨는데요. 

▶송: 1인당 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사회심리죠. 살기는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데 다들 불안해합니다. 과거에는 안그랬거든요. 그때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자꾸 과거에 기대는 거죠. 그동안 많은 문제를 국가·공동체·가족이 해결해 주었는데, 지금은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감당할 정신적 자원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종교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고향, 1차 연고집단으로 돌아가죠. 우리나라 사회 모임의 60%가 종친회·동향회·동문회고, 30%가 종교·친목모임입니다. 

▶정: 연고주의죠. 

▶송: 박정희 시대가 만든 가장 큰 허점이 개인주의의 빈 공간을 공동체·국가·경제 성장으로 채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교양시민’의 의미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유럽에서 19세기 중후반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사회의 기본가치가 잡혔는데, 그게 교양시민의 역할이었어요. 우리는 그걸 놓치고 오로지 성장을 위해 돌진해왔죠. 

▶정: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개인주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송: 그렇죠. 이제 그 빈 곳을 채워야 할 때입니다. 민주화를 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소홀했던 게 뭐냐 하면 독립된 개인이 되는 것, 교양시민이 되는 것이었죠. 이념 투쟁, 권리 투쟁에만 몰입했던 것 같아요. 교양시민(독일어로 Bildungsburgertum)은 사회의 핵심가치를 배양하고 내면화하는 시민이란 뜻입니다. 

▶정: 현 시점에서 지식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송: 이른바 ‘공론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이 공론장이 완전히 비어 있어요. 특히 이 정부에서는요. 빈 공론장을 언론과 기업의 홍보가 채우고 있는거죠. 시민은 외곽으로 물러나 있어요. 지금의 지식은 대부분 소매상 지식이지 전체 시장을 바꾸는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은 시대의 중추신경을 건드려야죠. 지식인들은 이 풍요의 시대에 왜 불안하고 불행해하는지를 말해줘야 합니다. 시대의 전반적인 행보를 짚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논쟁해야 합니다. 상업화된 대학과 소매상 지식인이 그 일을 못하고 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죠. 

▶정: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 

▶송: SNS의 소통은 사적 성격이 더 큽니다. 대화의 연결성도 부족하고요. 기폭제는 되겠지만, 공론장의 핵심은 책임과 윤리입니다. SNS가 그런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트위터의 메시지는 공론장의 참호 속에 잠복하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네요. 위르겐 하버마스는 면대면(面對面) 대화를 중시했어요. 그렇게 만든 합의는 안 깨진다는 거죠. 이게 공론장이죠. 

▶정: 그러면 지금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이슈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송: 이 질문을 1990년대에 받았다면 노동 문제라고 했겠죠. 2000년대 초반이라면 허약한 자본과 국가 시스템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지금은 사람, 개인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동안 구조적인 문제만 탓했죠. 개인의 내면을 채울 논리와 윤리, 그게 우리의 역사에서 빠져있었죠. ‘이제 당신을 돌아볼 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사회와 이웃에 대해 무엇을 했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권리의 시대’에서 ‘의무의 시대’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국역사에서 교양시민의 문제가 제기돼야 해요. 

▶정: 교양시민의 사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송: 우선,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 문제로 논쟁하는 자리가 더 많아야 합니다. 정신적인 허기를 자꾸 동문회·동창회를 통해서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 연고가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통 쟁점을 토론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이런 훈련이 빠져 있어요. 대학 때 동아리에서 잠시 하다가 말죠. 신문사설과 칼럼, TV의 영향이 너무 커지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한국시민들은 낯선 사람과 만나 얘기하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이게 우리 사회의 허점이죠. 시민들이 만든 합의, 그것에 정치권, 언론매체가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기업 및 각 기관에서 책정하는 교육비를 시민교육과 토론운영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각 기관이 제공하는 토론기회가 많아지면 자연히 공론장이 활성화되겠지요. 

▶정: MB 정권의 공과(功過)는 뭘까요. 

▶송: 공공철학이 부재했고, 공정사회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했어요. ‘정치’보다 ‘일(work)’에 능숙한 정부죠. 프로젝트 정부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정치는 국민이 고민하는 문제를 어떤 언어와 개념으로 바꿔주는가 하는 것이거든요. 정치는 삶을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걸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공공철학의 결핍, 사실 우리 모두의 문제죠.

▶정: 지막으로 향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인문학적 과제를 꼽아주신다면요. 

▶송: 한국인들은 인문학 기질을 타고 났어요. 정서가 발달한 민족이죠. 정서적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크다는 겁니다. 오래 전부터 그런 관심을 발전시킨 자치조직을 갖고 있었어요. 마을 계모임, 동계(洞契)가 그런 겁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 관심이 있었고, 염치, 체면이 있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시장경쟁의 냉혹함을 넘어서는 지혜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옵니다. 개인주의의 확립과 인간이해,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정리=이은주 기자, 김민영 프리랜서 작가

 

Ⅱ. 인문학의 생활화  

자유와 치유의 인문학

박영식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에는 소피스트라는 식자들이 청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문법 논리학 웅변술 수사학 변증론 등이었고, 그 후 거기에 산수 기하 음악 천문학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스가 로마에 의하여 정복된 기원전 146년경 이 학문들은 자유학예(Liberal Arts)라고 불리면서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학문들이 자유학예라 불린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학문들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밝음으로 나가게 하고, 미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학문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학문은 자유학인 것이다.

 

 

그러면 자유학예가 인간을 어떤 것들에서 자유롭게 하였는가. 인간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신화적 사고에서, 미신에서, 종교적 허상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잘못된 사회적 인습인 노예제도, 귀족과 평민으로 가르는 신분제도, 남성위주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은 군주제를 공화제로 전환하였다. 우리는 이것들을 학문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세기경 로마의 정치사상가인 시세로는 자유학예를 'Studia humanitas', 인간학 또는 인문학이라고 이름 한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시세로에 의하여 2천 년 전에 고안되었음을 알게 된다. 시세로는 자유학예들이 인간을 인간 되게 하고, 인간을 독자적 존재로 만들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학문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인문학에는 어떤 기능이 있는가. 요즈음엔 문학, 역사, 철학만을 인문학이라 하지만,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들을 통틀어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미국에서는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들이 Liberal Arts College에 속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흔히들 인문학이라면 시를 짓고 문장을 암송하고 산천을 유람하는 조선시대의 풍류(風流)를 떠올리거나, 인문학을 교양과 같은 것으로 볼 뿐 별다른 기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문학의 기능 중의 하나로 치유 기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2012년 11월 개최예정)이 "치유로서의 인문학"을 주제로 하고 있는 데서도 치유가 인문학의 한 기능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문학 역사 철학은 각각 어떤 치유의 기능을 갖는가. 우선 우리는 문학이 시적 정의(詩的 正義), 다른 말로는 "권선징악"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고 있다. 선이 끝내는 악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을 통해 통쾌한 마음의 승화를 느끼게 된다. 나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詩學」에서 문학의 기능으로 카타르시스(정신의 정화)를 들고 있다. 문학, 그중에서도 비극을 통해 환기된 나쁜 감정을 배설함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 아니다. 끝나버린 과거를 아는 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삼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역사적 해석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역사에는 때때로 잘못되거나 미화된 판단 결정 심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결정으로 화를 입은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엄청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은 비판의 학문이다. 철학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늘 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철학적 비판력은 학문발전의 원동력인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자유학예라고 하였다. 인간을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철학적 비판력인 것이다. 인간을 신화적 사고에서, 종교적 허상에서, 노예제도 신분사회 가부장제 군주제 등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사회적 인습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 원동력이 바로 철학적 비판력인 것이다.

 

우리는 문학적 상상력, 역사적 해석력, 철학적 비판력이 인문학의 기능임을 알 수 있다. 이 인문학적 기능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역사적 오판을, 불공정한 사회적 인습과 제도를 개선해왔던 것이다.

 

 

자유와 치유의 학으로서의 인문학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보다 공정한 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노력한 한국연구재단에 감사하며 격려와 경의를 표한다.

 

한국연구재단 웹진 2012년 10월호 논단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