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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0. 9. 01:15

지리산 ‘그후’ 60년

 

[중앙일보] 입력 2010.06.25 00:03 / 수정 2010.06.25 02:56

#1950년 6월 소년은 짚벼늘(낟가리) 안에서 숨을 죽였다. 낮 동안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은 그곳에서, 소년은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을 수 없었다. 어슴푸레, 어둠이 촘촘해질 무렵 산에서 입산자들이 내려왔다. 소년의 가슴은 방망이질쳤다. 아버지가 마당으로 끌려나왔다. “여보게, 여보게….” 아버지는 그 사람들에게 하소연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았다. 몸이 들썩였다. 무거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소년의 짚벼늘이 들춰졌다. 차가운 총부리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소년은 쓰러진 아버지의 발목을 부여잡고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의 힘없이 늘어진 발은 한 차례 파르르 떨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냉기를 품었을 것 같은 그 총부리. 60년 전, 그 일을 겪은 작은아버지는 지금도 그 오싹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 한반도 남쪽 뭍의 최고봉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굽어봤다. 산은 60년 전의 혼란을 그 너른 품에서 갈무리했을까.
#2010년 6월 청년은 할아버지를 한 번도 뵙지 못했다. 60년 전,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아비규환의 한복판에서 할아버지는 세상을 등졌다. 부챗살처럼 뻗친 지리산의 먼 갈래에서…. 당시의 낮과 밤은 그 밝기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세상이었다. 날이 밝을 땐 군경이, 어둠이 깔리면 빨치산이 고을을 지배했다. 하지만 낮이든 밤이든 ‘사람들’이 느끼는 분위기는 같았다. 공포였다. 생각이 다르다고,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양쪽에서 뭇매를 당한 상잔시대, 가슴 아픈 역사다. 민족의 영산(靈山), 민중의 터전, 빨치산 성지, 해방구, 비극의 현장, 수복지, 국립공원 1호 …. 수많은 수식어처럼 굴곡의 역사로 주름 잡힌 산, 지리산을 청년은 꺼렸다. 어쩌다 인연이 닿을 만하면 무엇인가 발목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맞이했던 마지막 여름의 60년 뒤, 기자가 된 청년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나이가 돼서야 지리산에 들었다. 그 입산자들이 터를 잡았던 루트를 취재하기 위하여….  

 
글=김홍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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